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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Apr 22. 2021

#05 우리의 이데아가 공명할 때 : 장-기엔 케라스

장-기엔 케라스 - 하이든 첼로 협주곡

최고가 되는 것보다는 개인적인 나만의 것을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 내가 어떤 작품에 갖고 있는 애정과  음악이 나에게 선사하는 감정들에 대해 작품과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면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으리라. 누군가의 이데아는 나의 이데아와 맞닿아 공명할 것이고,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이데아가 서로 맞닿는 순간, 음악은 위대하고 높은 무엇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영혼을 강력히 드러내는 것보다 그것으로 족하다.

- 장 기엔 케라스, ‘객석’ 인터뷰 중


클래식의 묘미는 같은 곡이 끊임없이 새롭게 연주되는 데 있지 않을까? 2-300년 전 유럽 대륙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백인 남성들이 만든 음악을 그들의 지휘나 연주로 들어본 21세기 인간은 아무도 없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악보가 있지만, 악보가 소리는 아니다. 오래된 음악일수록, 그러니까 낭만주의보다는 바로크 음악에서 악보와 소리 사이의 간극은 더 커진다. 그 간극 덕분에 '해석의 여지'가 생겨난다. 연주자마다 곡을 달리 해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연주자가 같은 곡에 완전히 다른 녹음을 남기기도 한다(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그렇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연주의 다양성은 불가피하다. 악기와 연주자 본연의 음색 때문이다. 사람 목소리가 다르듯 악기/연주자도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다.


한 곡을 놓고 여러 연주를 듣다보면 유독 끌리는 연주자를 만나기도 한다. 내겐 첼리스트 장-기엔 케라스 Jean-Guihen Queyras가 그런 사람이다. 1963년 캐나다 출생. 어린 시절 알제리를 거쳐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의 디스코그라피와 연주 활동은 종적/횡적으로 광범위해서, 시간적으로는 바로크에서 현대, 연주 형태로는 독주, 협연, 실내악을 아우른다. 내가 가진 7장의 앨범에도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


그와 나, 우리는 '하이든 첼로 협주곡'에서 맞닿았다. 하이든의 이 걸작을 레코딩하지 않은 유명 첼리스트가 있던가? 힘이 넘치는 거장 로스트로포비치, 희안할 정도로 스탠다드한(?) 턱시도 차림의 젊은 미샤 마이스키, 명민한 천재 장한나... 1번 C장조만 비교해봐도 빠르기, 음색 등이 제각각이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해석이든 타고난 소리든, 연주자는 자기만의 인장을 남긴다.


케라스의 하이든은 따스한 음색과 조화로움이 좋은 연주다. 원래도 포용력 있는 그의 음색은(너그러운 요요 마의 소리를 좋아했다는데, 그랬을 법 하다) 시대악기로 연주된 덕분인지 한껏 열린 마음으로 오케스트라와 교류한다. 여기서 현악기 음색에 대한 내 취향/선호가 드러난다. 스틸현에 바짝 밀착해 나는 진하고 찰진 소리보다, 음량이 작더라도 울림이 느껴지는 소리가 내겐 더 자연스럽고 듣기 좋다. 물론 작품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바로크나 고전음악에는 일반적으로 그렇다(규모 있는 오케스트라를 상대해야 하는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생각보다 이런 스타일의 하이든 연주는 최근까지 일반적이지 않았다. 섬세한 세공이 돋보이는 2번과 비교할 때, 1번은 (특히 1악장과 3악장에서) 호쾌함과 경쾌함이 두드러지는데, 음량과 소리 무게가 가벼워 '적당히' 호쾌하고 '적당히' 경쾌한 이 녹음이 설득력 있었다. 하이든을 배울 때 내 전범은 바로 이 녹음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케라스 특유의 조화로움에 대한 지향이었다. 그는 혼자 돋보일 생각이 없는 독주자 같다. 마치 수석 첼로주자인 것처럼 오케스트라와 톤을 맞추려 시종 노력한다. 뛰어난 솔로지만 매우 겸손하고 유능해, 자기 소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오케스트라에 귀 기울이고 지휘자와 눈빛을 주고 받으며 합을 맞추는 데 주의를 기울였을 거라고, 나는 녹음 장면을 상상하며 흐뭇해하곤 한다.


조화에 대한 민감함은 내 주요 음악활동 경력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인 데 기인할 것이다. 옆 사람과 다른 파트의 소리를 듣고, 전체에 녹아드는 소리를 내는 훈련을 나는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다. 그리고 열네 살 여름, 첫 합주 이후로 50개 악기가 만들어내는 울림의 감동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그건 결코 잊혀지지 않는 감각이다.


나는 그 어떤 솔로이스트보다 케라스에게서 이 조화로움의 느낌을 자주 강하게 받는다. 그와 나, 우리는 여기서 크게 공명한다. 우리는 순간이나마 위대하고 높은 어딘가에 도달한다. 예술은, 한 인간이 한 순간 발산하는 이 빛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타인의 영혼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하아. 이런 인생이라면, 한번 살아볼만하지 않은가.


한편, 내가 가장 자주 들은 앨범은 브리튼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길게 언급하지 못하는 건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현대음악도 이해할 날을, 그래서 이 녹음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를 공연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2017년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와 슈만 피아노 3중주 사이클을 하던 때였다. 이 글 전체를 케라스에 대한 사랑 고백에 할애했지만, 나는 이자벨 파우스트의 지적인 연주를 좋아하고 그녀의 스피릿(어깨를 드러내지 않는 거의 유일한 여성 연주자다)을 지지한다(사실 그들이 속한 레이블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라는 세계를 사랑한다. 마블 유니버스 팬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그런 그녀를 처음 만나는 날이라 기대했는데 컨디션 난조가 느껴져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덕분에 공연장에서 감동 받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기도 했다. 연주 내내 케라스와 멜니코프의 눈빛에서 그녀를 향한 격려와 배려가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이 그룹의 케미, 혹은 연대에 감동받고 말았다.


자기 영혼을 강력하게 드러낼 생각도, 최고가 될 욕심도 없다는 이 훌륭하고 겸손한 사람은 음악을 넘어 내게 귀감이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쓰는 내 마음가짐은 서두에 인용한 그의 말에 빚지고 있다. 그런 그를 무대에서 다시 만날 날을, 우리가 한 공간에서 공명할 수 있을 날을 고대해본다.




인터뷰

장 기엔 케라스 인터뷰, '불멸의 이상을 향해', 월간 객석 2013년 11월호 : 읽기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

장 기엔 케라스 : 유튜브에서 듣기

장한나 : 유튜브에서 듣기

미샤 마이스키 : 유튜브에서 듣기

로스트로포비치 : 유튜브에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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