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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y 25. 2021

#14 다정한 아이돌 : 요요마

요요마 - 베토벤 4중주 (feat.세서미 스트리트)

마음씨 좋은. 선의의. 열린 마음의. 관대한. 인정 많은. 친절한.


그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수사들이다. 내 어휘사전에서 꺼내길 망설이는 단어, ‘순수한’도 그에게 라면 허용하고 싶어진다. 20세기 후반 태어난 많은 첼리스트들이 자신의 아이돌로 꼽는 첼리스트, 요요마 이야기다.


위의 형용사들이 인격 수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계기가 음악이 아닌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음악가에게 미안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요요마라는 사람에게 반해 (약간) 팬이  경우다. 음악적으로 그는 어차피  인정이 필요할  없는 살아있는 거장이다.


1955년 생. 일곱 살 때 케네디 센터 연주를 데뷔로 치면 그의 무대 경력은 60년에 이른다. 당연히 신동으로 명성을 떨쳤고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아이작 스턴과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며 프로페셔널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1시간 동안 그의 40여 년 음악 여정을 보면서 대체 몇 번의 생을 살아낸 것인가 혀를 내둘렀다. 시대음악을 포함한 클래식은 물론, 대중음악, 미국 포크 음악, 중국 전통음악, 아르헨티나 탱고 등 국가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이런 작업이 의미 있을 것 같은데, 저와 같이 해보시겠어요? 라고 예의 바르게 제안했으리라. 나는 클래식 외의 음악적 시도에 관심이 없지만, 이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 그 육화된 형태가 요요마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목을  것은 그가 육화된 재능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중동지역 긴장 완화에 음악이 역할을   있으리라 생각하던 요요마가 바렌보임을 만나 마침내  뜻을 실현하는 대목이 그렇다. 결국 나는, 음악과 인간과 세계를 향한 한없이 열린 마음(클래식에만 헌신하는 연주자가 대부분이고 나는 그것이 편협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전혀) 선의, 인류애 같은 미덕으로  사람이 이루어져 있을지 모른다는 매우 조심스러운 가설을 세우게 된다.  선의 음악을 통해  사람  사람과 소통할  있다는 비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이상의 근간을 이룬다.


프로그램에 소개된 요요마의 다양한 음악 작업 중에서 나는 마크 모리스 무용단과 함께 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을 특히 좋아했다. 이제는 더 이상 설명이 불필요한 이 명곡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역시 대의 아닌가!) 6개 모음곡을 영상화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중 3번은 계단에서 떨어지는 주제의 안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안무는 춤곡에 맞춘 춤이라기보다는 곡의 구조나 형식, 움직임과 리듬, 높낮이와 느낌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바흐 시대의 춤곡은 이미 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 그 자신을 위해 존재했다. 춤곡이 온전한 음악적 형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엔 춤이 음악을 따랐으리라. 내가 3번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연주를 시각화 한 안무가 재미있고 인상적이라 자주 찾았었다. 흥미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그의 연주활동은 어린이 TV 프로그램 출연이었다. 이를 자랑으로 여긴다는 말을 나는 그의 다른 말처럼 액면 그대로 믿는다. 세서미 스트리트, 미스터 로저스 등에 수차례 출연했으며 이때마다 어린이 관객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연주하는 요요마의 모습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엘모에게 드보르작  소절을 선보이며 현악기에 대해 설명하고, 그가 바이올린 스케일을 완수할  있도록 열심으로 돕는다. 어린이( 그에 닿기 위한 매개인 인형)라고 얕보지 않고  작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진심 것이다(쓰기 꺼리는 단어이지만 적확한 표현이다). 미스터 로저스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3 부레를 연주하는 유난히 젊은 요요마의 해사한 얼굴은 진지하기까지 하다. 이웃 아저씨의 기타와 함께 Tree, Tree, Tree 연주할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났던  같기도 하다.


https://youtu.be/89sFEuEuTYM

세서미 스트리트, 헝커들과의 4중주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영상은 (간혹 순위가 바뀌지만) 세서미 스트리트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와 함께한 베토벤 4중주이다. 이름하여,  헝커와 딩어 그리고 첼로를 위한 베토벤 4중주. 루드비히  베토벤이 아닌 머리 베토벤의 곡이란다. 그는 여기서 인형탈을 뒤집어쓴 캐릭터들과 협연한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유명인사에겐 지나치게 조촐해 보이는 무대에서, 코와 정수리를 누르면 금관악기나 벨소리 같은 것이 나는 헝커들과 눈을 맞추며 연주하는 모습에 매번 나는 그만 감동하고 만다. 모든 합주가 그렇듯 마지막 순간에는  연주자가 집중해 서로를 바라본다. 동시에 정확하게 끝내기 위한 고기능성 포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합주의 가장 찌릿한 순간  하나가 아니던가.  순간을 살려내다니.  명의 첼리스트와  인형이 합을 맞추는 1 사이 나는 심지어 약간의 긴장감을 느낀다.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4중주다.  영상을 보면 기운이 난다.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세상이 3센티쯤  살만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을, 그러니까 그 음악적 재능인 자기 자신을 다른 인간들에게 아름답고 좋은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 아저씨의 음반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건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선의와 진심만으로 견디기 어려운 인간의 삶을 분명 경험했을 이제 약간 늙은 이 아저씨가 어떻게 아직까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지 가끔 생각하곤 한다. 어려움을 겪은 끝에도 곱고 맑고 아름답고 싶다. 바로 이 넉넉한 아저씨처럼. 나의 다정한 아이돌 아저씨가 공연장에서 나와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꿈을 꾸고 싶다. 그런 무방비 상태의 선의로 가득한 밤이 모두에게 내려앉길 기도해본다.




참고자료

Classic Yo-Yo Ma (Documentary of 2010 about Yo-Yo Ma) : 유튜브에서 보기

마크 모리스와 함께 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부분 : 유튜브에서 보기

세서미 스트리트, 엘모의 피들 레슨 : 유튜브에서 보기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부레, 미스터 로저스 중에서 : 유튜브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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