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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y 04. 2021

#10 쓸쓸함이 아름답게 노래될 때

Arvo Part - My Heart’s in the Highlands

나: 하, 지겹다- 늘 이게 시작이에요.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쓸쓸해지고 의욕이 없어져요.

의사 선생님: 그럼, 그럴 때가 있지.

나: ...? 다들 그래요?

선생님: 그럼~ 고등학교 때 공부하다보면 그렇잖아. 그런 게 없었어?

나: (동그래진 눈) 네! 전 없었어요, 회사 들어오기 전까지요. 그래서 제가 회사 다니는 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때까지 이렇게 재미없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선생님: (잠시 침묵) ... 자기가 운이 좋았구나.


내가 흥분해서(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인생이 재미없는 게 의학적으로 정상이라니...)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을 전하자, 전화기 너머 감자가 되려 흥분했다.


감자: 내가 신인류를 친구로 두고 있었어!

나: 그래? 당신도 재미없고 쓸쓸해질 때가 있었어?

감자: 응, 초등학교 때! 학습지 선생님 오기 전날. 스물일곱까지 그런 적이 없었다니, 와, 당신은 역시 대단해!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감자다. 그녀는 어떻게 인생의 재미없는 부분을 그 어린 나이부터 견뎌낸 걸까?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운이 좋았다. 요약하자면, 나의 욕구는 대체로 사회의 요구에 부합했다. 내가 원하는 것에 사회적으로 좋은 보상이 따랐다. 지금껏 딱 한번,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을 바랐는데, 나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르보 파르트 Arvo Part의 ‘내 마음은 하일랜드에 있어요 My Heart’s in the Highlands’는 영화 ‘그레이트 뷰티’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젭은 어려서 쓴 단 한 권의 소설로 명성을 얻은 이후, 작가가 아닌 사교계 왕으로서의 삶을 산다. 관객은 노년에 접어든 그가 화려한 날들을 살아온 한편 그의 마음은 가장 속된 이 현실에서 늘 한 발짝 떨어져 어딘가 다른 곳을(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순수함을 찾아) 헤매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 마음의 풍경을 관객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로마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영화니까.


이 노래는 18세기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를 가사로 한다. 시의 화자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일랜드는 아니다. 야생 사슴을 쫒던 숲, 우렁찬 급류가 흐르는 땅, 눈 덮인 산, 푸른 계곡을 발 아래 둔 골짜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용맹하고 아름다운 땅을 그는 오직 마음속에서만 배회할 수 있다. 그의 마음은 그곳에 있다. 그는 그곳에 있을 수 없다.


나는 자기가 존재해야 할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할 때 사람이 쓸쓸해진다는 것을 회사에서 배웠다. 난 거기 있었지만 거기 없었다. 내 자리에 앉아서도 마음은 유령처럼 다른 곳을 맴돌았다. 내 하일랜드에서는 천장이 높은 서가 가득 꽂힌 책들에서 묵은 종이 냄새가 났다. 나는 처음으로 쓸쓸해졌다.


이 노래의 모든 가사가 단 한 개 음으로 이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먼 곳을 향하는 눈동자에 움직임이 없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노래와 대조적으로 큰 낙차를 연주하는 오르간은,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앉아 끝없이 무너져내리기를 반복하는 내면에 대한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임을 나는 온전히 이해한다.


이 노래를 마음속으로 자주 부르던 시기에 모차르트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는 모차르트 음악에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이해할 필요 조차 없던 음악들이 (말 그대로) 전혀 들리지 않던 당혹감이 생생하다. 모차르트야말로 지금, 여기에 가장 충실한 음악인 걸까? 재미있는 가설이라며 혼자 잠시 웃는다.


쓸쓸함은 아름답지 않았다. 나는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 자신감과 우아함을 잃었고 너무 자주 사과했다. 비루했던 현실과 달리, 쓸쓸한 감정에 대한 극사실적인 묘사로서의 이 노래는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쓸쓸한 정경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현실과 유리된 채 닿을 수 없는 먼 곳을 그리워하는 높고 먼 응시 같은 노래 덕분에, 쓸쓸함이 고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쓸쓸함을 미화하고 그 아름다운 쓸쓸함에 공감하게 한다. 자기 분열적인 내면을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해도 되는 걸까? 쓸쓸함을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노래하지 않았으면, 그래서 쓸쓸한 내 마음까지 아름다워 보이도록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더 빨리 인생의 재미난 트랙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을까? 돌이킬 수도 없는 생각을 하며 괜히 음악을 탓한다. 아니다.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이렇게까지 깊이 공감하고 음미할 기회를 놓쳤을 거라고 생각을 바꾼다. 이 참전용사 뱃지를 앞으로 자주 꺼내볼 일이 없는 예쁜 상자에 담아 깊숙한 서랍에 보관할 채비를 서두른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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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음악 

그레이트 뷰티 :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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