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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n 14. 2021

#18 초여름밤의 로망,발트뷔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발트뷔네 콘서트

베를린 근교 야외 공연장 발트뷔네. ‘숲 속의 무대’를 뜻하는 이곳에서는 1984년 이래 매년 6월 마지막 일요일 베를린 필의 정기공연이 펼쳐진다. 나치 독일 하에서 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경기장 복합시설의 일부라는 이 공연장 역사가 찝찝하기는 해도 내게는 여름의 로망이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올여름 휴가엔 이곳에서 여름밤의 음악회를 즐겼을 텐데. 나는 반복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걸 참기는 어렵겠다. 망할 코로나.


작년 여름, 우연히 베를린 필 앱 한 달 무료 사용 프로모션을 이용하면서 발트뷔네를 알게 되었다. 관객들은 격식 없는 티셔츠, 반바지 차림에 모자까지 쓰고 원형극장 바닥에 신문지나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눕다시피 한 자세로 야외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비가 스쳐도 아랑곳 않는 사람들. 더 많은 비가 내리면 색색의 일회용 비닐 우비를 입고서라도 관람을 멈추지 않는 관객들. 서서히 사위가 어두워져 투명한 남색의 여름밤이 찾아올 때까지 그들은 일요일의 모습으로 일요일다운 여유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적잖이 특별한 일요일이었으리라. 이후 내게 여름밤의 낭만은 이런 모습을 하게 되었다. 여행지로 고려해본 적 없던 베를린은 순식간에 잘츠부르크(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2020년인 작년에 100주년을 맞았다. 작년 여름휴가 계획 역시 망할 코로나 덕분에 좌절되었다)나 베로나(야외 공연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에 언젠가 갈 것이다)만큼 매력적인 도시로 급부상했다. 나는 기꺼이 숲 속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의 일부가 되고 싶어 졌다.


발트뷔네 관객들의 차림과 관람 자세는 내 로망의 중요한 요소이다. 12월 31일 밤 베토벤 합창을 보고 듣기 위해 비엔나의 공연장에 모인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로비 가득 멋들어진 코트를 맡겨놓고 역시나 멋들어진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악장이 끝나기 전에는 기침도 참는 사람들. 그 긴 시간 동안 넓지도 않은 자기 좌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도록 의자에 몸을 맞춘 것 같았다. 1센티라도 벗어나는 게 어마어마한 무례나 된다는 듯이. 그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엄마와 나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로마 오페라극장 관객들 역시 잘 차려입기는 마찬가지이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유럽 북부와 남부의 멋쟁이는 참으로 다르게 정의되나 보다. 실제 그랬는지는 따져볼 문제이지만 로마 관객들을 떠올리면 왠지 볼드한 누런 금목걸이나 팔찌, 반지가 반짝이는 것 같다. 주요 아리아가 끝날 때마다 브라보! 브라바! 하며 그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칠 때 그 금장신구들은 찰랑찰랑 경쾌한 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밀라논나처럼 말이다. 음, 이탈리아 사람들이니까. 여하간 화려하고 노출이 더 많은 로마의 관객들 역시 한껏 차려입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리라.


이에 비하면 발트뷔네 관객들은 야구장 관중에 가깝다. 독일인들이 야구를 그렇게 좋아할지 의문이지만. 그러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 작가가 되어야겠다, 고 결심했다는 야구장에서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방울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 때 마침 머리 위로 홈런 타구가 날아갔다고 했던가? 여름철 야구 야간경기의 풍경 역시 당당히 내 여름 로망의 한 페이지를 채운다. 그러니 로망의 다음 중요 요소는 여름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일 것이다. 여름밤이란 약간의 마법이 작동하는 시간이다. 뜨끈하고 긴 태양이 선물하는 느긋함과 관대함은 왠지 진지할 것 같은 베를린 필 단원들에게도 유머를 허한다. 그 유머는 로빈훗 같은 복장을 한 타악기 단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시민 아저씨에 따르면 독일인들 사이에는 농담을 하려면 사전에 서면신고를 해서 그 유머를 받아들일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농담이 있다던데, 과연 사전 고지된 복장이었을까? 지휘자들의 표정과 움직임도 유난히 밝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래도 턱시도를 입지마는.


베를린 필 앱을 사용했던 한 달 동안 몇 가지 공연을 뒤적거렸는데 2005년 콘서트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작년 7월 우리집에서 3주를 보낸 엄마를 즐겁게 한 콘텐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좋아했다. 실내 공연장을 벗어나 한가로운 여름밤의 소풍 같을 라이브를 보고 들으러 찾아온 사람들에게 선물할만한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의 기쁨과 여유로움은 몇 년이나 지나 한국에서 노트북으로 관람하는 나와 엄마에게도 전해졌다. 얼마나 완벽한 연주인지보다 얼마나 즐거운 공연인지가 중요할 이 한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맑아도 비가 내려도 연주자와 관객이 모두 웃을 수 있는 공연, 자기가 아는 아리아를 (작은 입모양으로) 따라 불러도 되는 느슨한 공연(그렇다, 관객이 따라 불렀다! 비욘세나 마이클 잭슨처럼!). 언젠가 나도 그 객석의 일부가 되길 오늘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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