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정 Jun 20. 2021

#19 눈부신 바로크 바이올리니즘(1) : 비발디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과 사계

언젠가 감자는 말했다. 인생, 단언하는 게 아니라고. 밀슈타인과 모리니의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에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인 지 한 달. 글 제목을 수정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에 빠졌다. 두 주 전 예감은 예언이 되었으니,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Giuliano Carmignola 라는 바로크 바이올리니즘의 광맥을 발견한 것이다. ‘최고’의 비교급은 무엇일까? 나는 또 한 번 최상급 찬사를 경솔하게 남발하기로 가볍게 결정한다.


이 정도 수선을 떨 만한 사건이다. 3주째 카르미뇰라만 듣고 있으니 말이다. 명연주 명음반 소개로 만난 후기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2002)에서 타오른 불길은 순식간에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2014)과 사계(1992 녹음)로 옮겨 붙었다. 지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내 모든 기회는 오로지 세 음반에 봉헌된다. 바야흐로 바로크 바이올린 협주곡의 여름이다. 여름 자외선처럼 뜨거운 관심은 이탈리아 바로크와 바흐뿐 아니라 프랑스 바로크까지 뻗어 갈 기세다. 마침내 진정한 바로크의 문이 열리려는지도 모른다. 바흐와 비발디 기악곡을 넘어서는 바로크 음악 일반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시대 말이다.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면 카르미뇰라는 서막을 장식한 연주자로 기억될 것이다.


후기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2002)


후기 비발디 협주곡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단조 협주곡에서 무해한 폭풍우를 발견했었다. 이후 내 귀를 낚아챈 건 화창한 날의 베네치아 같은 장조들이다. 특히 F장조 RV 296의 1악장이 그렇다. 단조인 앞의 두 트랙과 대조되어 더욱 빛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음악에서 베네치아가 느껴진다는 데 음악적 근거를 댈 수는 없다. 비발디가 베네치아 사람이니 비발디에서 베네치아를 떠올리는 것은 단순한 연상작용일 수도 있다. 사실관계보다 중요한 건 기억이다. 6월의 눈부신 베네치아라는 기억(기억과 사실은 범주가 다르다. 기억은 연약하고 불완전해서 자주 각색된 인상으로 남고 구체적 사실은 증발한다). 그 눈부심의 얼마쯤은 리알토 다리나 탄식의 다리, 산 마르코 광장과 페기 구겐하임의 하얀 대리석에 기인할 것이다. 그렇지만 주된 이유는 물이다. 본섬을 가르는 운하와 그 끝에 펼쳐지는 아드리아해 말이다.


물은 도시의 외부인 동시에 일부이다. 태양은 운하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에 반사된다. 물 위에서 반짝이는 빛은 선글라스를 찾게 하지만 성가시다고만은 할 수 없다. 유일무이한 환상의 도시를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빛나게 하는 장신구이기 때문이다. 비유할 보석을 고르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베네치아의 눈부심은 금처럼 번쩍이지 않는다. 무겁거나 고귀하거나 영원하지도 않다. 금보다는 은이나 유리가 발하는 빛에 가깝다. 하얗고 투명하다. 무엇보다 경쾌하다. 빛조차 도시의 존재 조건을 따르는 걸까? 단단한 지반이 아닌 석호를 딛고 있는 베네치아에서는 건물도 가벼워야 한다. 이 경쾌한 빛은 금세 부서진다. 베네치아를 눈부시게 밝히는 것은 부서지는 짧은 물결의 연속이다.


카르미뇰라의 바이올린을 들으면 베네치아의 빛나는 물결이 보이는 듯 하다. 물론 좋은 현악기에서는 빛나는 광선 같은 소리가 난다. 음역이 높은 바이올린이 내는 빛은 유난히 화려하다. 카르미뇰라와 협주단체들(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마르카의 유쾌한 음악)의 비발디 시대악기 연주에서 내가 느낀 특별함은 그 빛이 가볍고 경쾌하며 무엇보다 정확한 시간 동안만 지속된다는 데 있다. 두 음반 모두 엄청난 속주임에도 밀리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 연주가 내게 거슬림이 없는 건 빠른 동시에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음표의 지속시간은 악보에 명시된다. 16분 음표, 8분 음표, 4분 음표…. 반면 음표의 무게를 나타내는 기보법을 나는 모른다. 전문 연주자/지휘자들에게는 여기에 관한 영업비밀 같은 게 있을까? 내가 말하는 음표의 무게란 하나의 음은 언제부터 사라져야 하는가의 문제와 같다. 음은 시작되고 지속되고 사라진다. 사라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음은 적당한 시점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문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다음 음이 밀어낼 때까지 고집스럽게 자리를 고수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럼 하나의 음은 적당한 시간동안 사라져갈 수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연주자/지휘자는 악보의 한음 한음이 지속할 시간을 결정한다.


나는 테크닉을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나를 놀라게 한 건 카르미뇰라의 이 결정 또는 해석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듣기에 카르미뇰라의 속주는 이음줄과 레가토를 잊지 않는다. 모든 음은 자신이 존재해야 할 시간과 사라지기 시작해야 할 시간을 경우에 맞게 지킨다, 또는 카르미뇰라와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비발디 해석은 나와 일치한다. 내가 비발디를 연주했다면 이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속도와 음이 지속되는 길이에 대한 결정이 이렇게 빛나면서도 담백하고 유기적인 녹음을 남겼으리라. 낭만적이지도 느끼하지도 번쩍거리지도 않는 이 해석이 나는 마음에 든다.


사계(1992)


비발디 사계가 이렇게까지 신선할 수 있었다니. 이제야 알게 되어 유감이다. 그 오랜시간 동안 진부하게 치부했던 데 대해 비발디에게 사과해 마땅하다. 진부함은 명성의 그림자다. 명성이 높을수록 어두운 그림자가 지곤 한다. 심할 경우, 모나리자처럼 스스로의 명성에 익사해버릴 수도 있다. ‘1일 1클래식 1기쁨’의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사계 봄을 꼽았다. 동의한다. 덕분에 내겐 가장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클래식이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막스 리히터가 재해석한 봄이 21세기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그나마 가장 신선한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감자 말대로 인생, 단언하는 게 아니었다.


첫 소절만으로 모든 것이 바꼈다. 그 순간 나는 이전에 들었던 모든 사계를 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계의 봄 1악장 마저 심폐소생을 받은 것처럼 가볍고 신선하다. 이 익숙하고도 완전히 새로운 소리에 사로잡히면 순식간에 12조각의 사계가 흘러간다. 소규모 시대악기 편성은 너무나 유의미해서 카르미뇰라의 독주 바이올린 뒤에 얇은 양귀비 잎사귀처럼 다른 악기의 겹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현악기 위주의 소규모 실내악 편성에서 쳄발로가 어떻게 합주악기로서 기능하는가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건반을 누를 때 현을 타격하는 오늘날의 피아노와 달리 현을 뜯는 이 건반악기는 다른 악기들을 위협하는 일 없이 자기 몫을 한다. 쳄발로는 찰랑이는 물결 소리를 더한다. 아니 빛의 소리인가? 한편 전체적인 음량의 다이나믹은 계산된 티를 내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연주에는 작은 결점조차 없다는 CD 표지 코멘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확한 속주가 주는 쾌감은 빠른 악장들에서 극대화된다. 겨울 1악장의 매서운 겨울 바람에 매혹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물론 나는 그만큼 여름 3악장과 1악장을 아낀다. 가을 3악장에서도 신비한 경험을 했는데 추수의 느끼한 기쁨보다 풍요에 춤추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한편 느린 악장이 협주곡의 일관된 톤과 속도에 맞추어 빠르게 흐르는 건 아쉽기도 하다.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고 싶은 촌스러운 마음 때문이겠지. 겨울 2악장에서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어쩐지 기대감을 피워올리는 긍정적인 피치카토와 눈 위를 사뿐히 밟는 카르미뇰라의 바이올린을 들으면 아쉬움 조차 잊게 된다. 특히 겨울의 트릴이 정말 아름답다.


나와 잘 맞는 음악을 발견하는 것은 입에 맞는 음식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적지 않은 기쁨과 흥분을 동반한다. 음식도 음악도 거슬림이 없다는 건 내게 최고의 찬사다. 아무런 불평 거리가 없으며 마치 나 자신이 만든 음식/음악 같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좋은 경험이 쌓인 곡/음식은 대범한 시도를 가능케 한다. 카르미뇰라가 터준 길 위에서 다른 연주(자)들을 시도해볼 작정이다. 올해 가장 신나는 모험 중 하나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전에, 카르미뇰라의 놀라운 바흐 연주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개봉박두!



음악

비발디, Concerto in F Major for Violin, RV 296, Giuliano Carmignola(Violin) : 유튜브에서 듣기

비발디, 사계, 봄 1악장 : 유튜브에서 듣기

Recomposed by Max Richter, 비발디, 사계, 봄 1악장 : 유튜브에서 듣기


매거진의 이전글 #18 초여름밤의 로망,발트뷔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