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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l 06. 2021

#25 모차르트의 그림자 : 단조들(1)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3번 트랙이 끝나기 무섭게 미니 컴포넌트를 향해 돌진한다. 한 마디만 들어도 끝장이다. 아니, 첫 음이 공기에 진동을 일으키는 순간 내 심장을 향한 총알은 이미 발사된 것이나 다름 없다. 절박한 심정으로 스킵이나 멈춤 버튼을 향한다. 십대의 내가 모차르트 컴필레션 음반을 듣는 광경이다. 내게 모차르트와 클래식에 대한 사랑을 심어준 결정적 음반. 이 세상 것이 아닌 쾌활함을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낸 천재는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음악도 만들어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곡이다. 감히 이름을 부를 수도 떠올릴 수도 없는 악몽 같은 음악. 모차르트 장조의 밝기가 대기권 높이라면 단조의 어둠은 핵에 닿을 깊이다. 수적인 열세를 만회하려는 듯 모차르트 단조가 드리우는 어둠은 깊고 짙다. 밝은 장조가 드리운 그림자처럼.


어제 재택을 맞아 방안에는 공기처럼 명연주 명음반이 흐르고 있었다. 화상회의 때문에 라디오 볼륨이 낮았지만 나는 이 곡을 식별해냈다. 볼륨이 높았으면 털끝이 섰을 것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이라는 소개를 얼핏 듣긴 했지만 늘 곡목을 외우는 건 아니니까. 경고 표지판 같은 건 없었다. 앞에서 의심스러울 것 없는 장조가 흘러갔단 말이다. 다행히 일이 내 주의를 돌려 위기(?)를 모면했다. 이를 계기로 처음 이 곡과 진지하게 마주해보기로 했다. 그래, 공포와 무서움을 재평가 해보자.


내가 기억하는 이 곡은 절망과 처참함, 무기력감으로 요약된다. 피아노가 여는 첫 음 C 샵부터 기운이 빠진다. 중력이 1.9배 정도는 더 크게 작용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무거워진다. 들으면 들을수록 힘은 점점 더 빠져나가고 중력의 요구대로 이미 바닥에 누인 몸은 일으킬 도리 없이 무기력해지는 것만 같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들을 수만 있다면 방아쇠도 못 당기게 할 위력적인 무기력감이 점점 더 몸을 덮쳐온다. 비가 오는 날 진흙탕에 발이 빠진 기분 같기도 하다. 곡이 끝날 때까지 진흙탕을 걸어야 한다. 폭우는 아니지만 지리한 비는 속도를 줄이지도 높이지도 않고 계속 내린다. 우산도 쓰고 비옷도 입었으며 장화도 신었지만 소용이 없다. 그런 종류의 처참함과 절망이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이 곡의 느낌이다.


오랜만에 옛 앨범을 열어보니 1974년 마리아-호앙 피레스의 연주다. 용기를 내 들어본다. 기억만큼 끔찍하지는 않다. 물론 이 끔찍함은 끔찍하게 나쁜 음악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 기분이 도리 없어진다는 의미에서의 끔찍함이다. 처음으로 곡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다. 2악장은 슬프지만 아름답다는 평이 있다. 음, 슬프긴 하지만 아름다웠던가? 시칠리아 풍 리듬이라는 설명이 눈에 든다. 이거였구나. 듣고보니 그럴 법 하다. 아름다운 시실리안느들은 나긋하면서 구슬픈 느낌을 풍긴다. 그게 리듬 때문인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이해(또는 오해)가 두려움을 완화시켜준다.


사실 옛 앨범을 다시 듣기에 앞서 명연주 명음반에서 소개한 게자 안다의 녹음을 들어보았다. 두려움으로 얼어붙지 않았으니 반복해서 들어본다. 마침내 나를 압도하던 슬픔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움이 보인다. 진흙탕을 만드는 비는 교묘한 반음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슬픔의 실체가 조금이나마 보이는 듯 하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비다. 피아노가 주도하던 비오는 진흙탕 구간 뒤에 잠시 해가 나는 듯한 중간부분이 처음으로 들렸다. 목관악기와 함께 하는 이 구간이 슬픔을 만회한다. 특히 바순(아니면 클라리넷일까?)이 연주하는 부분은 슬픔에 대한 작지만 진실된 위로 같다. 잠시 희망을 말하는 걸까? 그 후에 슬픔 혹은 긴장을 해소하는 피아노 선율이 아름답다. 곧 플룻이 슬픔을 되돌려 놓지만. 이제 이 아름다움은 저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을 연상시킨다. 그럼으로써 이곡은 마침내 '슬픈'이 아닌 '슬프지만 아름다운'으로 재정의 된다. 내 견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변화하는 것이라서 다행이다. 변화는 슬픔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두려움을 이해로 승화시킨다.


한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생각하던 나는 피아노 소나타의 그 많던 음표들이 어디로 갔는지 의아해졌다. 선생님이 쉴 틈 없다고 흉보던 바로 그 점이 모차르트의 매력이며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만 봐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분명하다. 2악장은 느린 악장이어서일까? 어쩌면 모차르트 음악 세계의 변화를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따져볼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쾌활함이 우아함으로 변화한 걸까? 아니, 쾌활함에 우아함을 더한 걸까? 질문이 많아진다. 내 안의 모차르트라는 우주는 이제 비로소 체계적으로 팽창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음악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Géza Anda(piano), Camerata Academica des Salzburger Mozarteums : 유튜브에서 듣기

Maria João Pires(piano), Gulbenkian Orchestra : 유튜브에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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