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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l 22. 2021

#28 벤자민 나무와 동생과 모차르트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2악장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같이 산 건 16년이다. 막상 숫자를 확인하니 그렇게 긴 시간 같아 보이지 않는다. 아주 오래 같이 살아서 당연히 가까운 사이 같았는데. 같이 놀고 먹고 자고 웃고 싸우던 시간들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내가 태어난 지 2년 2개월 후 태어나 그 후 30년 동안 '우리 가족'이라고 불릴 4인 체제를 완성한 인물. 내 동생 말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20대 중반이 되도록 나만의 거품 bubble 안에서 지낼 수 있었다. 동생이 '막내' '아들'로서 집안의 사랑을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받았으리라는 사실을 인지한 건 불과 3~4년 새 일이다. 여지와 암시가 충분했음에도 나는 동생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대단히 의지하면서 성장했다.


동생과 나는 엄마와 아빠만큼 다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충동적인 아빠를 닮은 나는 내성적이지만 온화한 성정의 엄마를 닮은 동생을 좋아했다. 아빠가 엄마를 좋아하고 의지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동생은 나와 달리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람이다. 동생이 만든 레고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감탄했던가. 아직도 부러움의 감정이 생생하다. 나는 좀 더 경직되고 뻗뻗하고 융퉁성 없는 쪽이다. 까무잡잡한 나와 달리 하얗고 보드라운 피부에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다섯 살의 바가지 머리 동생은 귀여운 어린이였다. 그때의 그를 생각하면 엄마가 키우던 작은 벤자민 나무가 떠오른다. 짙은 초록의 물결 같이 생긴 작은 이파리들을 단 부드럽고 여린 나무 말이다. 그런 그가 떠오르면 나는 아직도 망설임 없이 귀여워한다.


동생은 자의식이 뚜렷해지면서 나를 한심하고 철없는 누나로 여기기 시작했다(엄마도 동생이 나보듯 아빠를 볼 줄 알았다면 결혼생활이 조금이나마 쉬웠을 텐데). 나는 대체로 그런 상태를 즐겼다. 동생을 보호하고 챙겨주는 누나가 아니라, 동생이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누나가 됨으로써 전형적인 역할을 전복하는 데 그때도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동생은 그런 나를 답답하고 하찮게(동시에 측은하게) 여긴다는 표현을 숨기지 않아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올케가 등장하면서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멍청이'로 부르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다(올케 앞에서도 몇 번인가는 그렇게 불러서 서로 멋쩍어야 했다).


우리가 모차르트를 함께 들은 건 언제쯤이었을까? 귀여운 동생이 슬슬 나를 한심해하기 시작한 즈음이었을까? 아니면 아직은 투닥거리지만 나를 누나 취급해주던 때였던가? 한 달에 만원, 용돈을 받으면 자유상가 2층에 있는 레코드점을 들락거렸다. 엄마가 아닌 동생과 단둘이 방문한 적도 꽤 있었다. 한두 달에 한 장씩 CD를 샀는데, 모차르트를 들으면 똑똑해진다는 설 때문에 모차르트 컴필레이션들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음반, 'Relax with Mozart'가 우리 집에 온 것은 그 무렵이다.


그렇다고 꼭 좋아할 필요는 없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서곡 '1812'처럼 안 들을 수도 있었는데. 이 앨범을 우리는 사랑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한 건 3번 트랙,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2악장이었다.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1악장은 너무 호들갑스럽다. 사랑스럽고 기품 있는 건 음반에 실린 2악장이다. 모든 프레이즈가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아, 나는 이 곡을 내 동생처럼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했구나. 내 동생은 꼭 이 곡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구나. 쓰고 보니 두 문장이 같은 뜻으로 읽힌다. 우리가 이 음악을 같이 듣고 같이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음악이 꼭 내 동생 같아서 나는 이 음악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와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거로구나. 쓴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머릿속에 부유하던 생각이라는 유령은 글자라는 실체를 입고 또렷해져서 마침내 실루엣을 드러내는데, 그게 생각보다 새롭다. 쓰면 발견하게 된다. 그게 나 자신이라도.


쓰면서 오랜만에 음반을 재생해두었다. 싫어지는 건 아닐까, 실망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모든 연주가 최고는 아니지만 십 대의 나를 사로잡았던 매력은 아직도 건재했다. 옛 습관대로 4번은 스킵했다. 최애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에 이은 교향곡 29번도, 피아노 협주곡 20번도 사랑스럽긴 매 한 가지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십 대였구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엔) 자라서도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삼십 대가 되었구나. 나라는 인간의 일관성이 지겨움보다는 안도감을 준다.


나는 자라서 억압해둔 화를 스스로에게 내는 엄마 같은 여자 어른이 되었고 동생은 밖으로 화 낼 줄도 아는 아빠같은 남자 어른이 되었다. 동생은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고 나는 나만의 거품을 고수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수완 좋은 어른이 된 동생은 어딘지 다른 세계에서 나이 들어가는 누나를 걱정하곤 하는 눈치이지만 서로의 삶에 깊게 관여하기에는 각자의 삶이 바쁘다. 가끔은 잘 아는 사람 같고 대개는 낯선 사람인 동생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 좀 더 자주 연락하는 친밀한 사이가 되지 못한다는 나만의 아쉬움을 그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슬쩍 가린다.


올해 그의 생일에는 벤자민 나무를 그려 생일 카드로 주었다. 가끔 화내는 모습으로 나를 당혹케 하는 성인 남자, 아들에게 엄격한 모습도 보이는 아버지인 동생에게서 그러나 나는 귀여운 어린이를 보곤 한다. 이제 우리가 같이 살지도, 모차르트를 같이 듣지도 않지만, 16년을 같이 살았던 가족으로서 내가 누리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동생의 귀여움을 기억하는 일은. 그리고 그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자신이 아직 간직하고 있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린 벤자민 나무를. 벤자민 나무 같은 그를 생각하는 작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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