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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Aug 02. 2021

#29 라모에게 경의를 : 피아니스트 김규연

KBS 음악실, ‘Hommage à Rameau’

처음 지옥을 불구덩이로 은유한 건 누구였을까? 종교적 상상이 예견으로 느껴져 섬뜩해진다. 인류 멸망이 지옥이라면 그 형상은 추위에 떠는 얼음나라가  아니라 불과 열기로 타들어가는 불구덩이일 것이라 확신하게 되는 요즘이다. 탈선해버린 2021년 여름 더위를 표현하기에 ‘염천’(사실 이것도 불타는 하늘이지만)은 너무 정상적이어서 달콤한 향수가 느껴진다.


작년 이맘 때는 끝도 없이 비가 내렸다. 56일간 매일 비가 내린 기록적인 장마였다.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라모를 만난 것은 장마 49일째였다. 주선자는 KBS 음악실 ‘살롱 드 피아노’. 유튜브 라이브로 본 김규연도 라모도 초면이었지만 그녀의 라모는 설득력이 있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을 기억한다.


바흐, 헨델과 함께 후기 바로크를 대표한다는 작곡가 라모. 이날 방송에서는 ‘클라브생을 위한 새로운 모음곡’ 중 여섯 곡을 소개한다. 김규연의 훌륭한 연주와 바로크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내는 설명 덕분에 내겐 방송 전체가 소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대목은 3곡 사라방드 연주. 깊고 여유 있게 내뱉는 날숨의 호흡과 그 나긋한 리듬. 김규연의 이런 해석에 나는 완전히 설득당했으며 매료되었다.


돌아보면 발레의 화려함은 물리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다. 용어와 테크닉들은 거의 잊었지만 발등을 펴 다리를 최대한 연장하는 포앵은 높은 중 가장 낮은 위치일 것이다. 포앵은 턴, 아라베스크 등 아름다운 동작들의 기본자세다. 주떼나 그랑 주떼는 점프이니 더 높다. 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면 그녀는 가장 높은 지점에 오른다. 높이는 감탄을 자아내기 쉬운 요소이다. 아마도 쉽게 허용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 발레 선생님은 도약의 호흡을 들숨으로 가르쳤다. 올라서고 높아지기 위해 들이마시는 숨에는 긴장감이 묻어난다(긴장해서는 도약할 수 없겠지만). 반면 이 사라방드는 이완의 날숨, 플리에를 연상시킨다(물론 모든 플리에가 날숨으로 수행될 리는 없지만). 무릎을 굽혀 높이를 최대한 낮추는 그랑 플리에, 이 곡에서 나는 그 우아한 아름다움을 음미한다. 도약을 위한 일시적 낮음이 아닌 낮음을 위한 일시적 도약을 배치한 리듬과 선율. 이 사라방드에서 느껴지는 보기 드문 차분함과 우아함은 여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이 느낌은 늘 영화 ‘여름의 조각들’로 이어진다. 라모 사라방드를 듣고 나는 거의 확신에 차서 영화 오프닝곡을 두세 번 다시 듣기까지 했다. 실제로 들어보면 전혀 다른 음악이라 놀랐다. 바로크 음악도, 심지어 하프시코드로 연주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첼로의 무겁고 느리고 깊은 호흡이 라모의 사라방드를 연상시키는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아니면 내가 설명하지 못하는 프랑스적 원리가 작동하는 걸까?


김규연의 라이브 연주는 스튜디오의 피아노로 이루어졌다. 연주자는 습기의 영향으로 악기가 완전한 상태는 아니라면서, 그 때문에(혹은 자신이 과다 섭취한 카페인 때문에) 찰랑대는 느낌이 오히려 하프시코드 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한다. 이 코멘트 덕분인지 내 귀에도 하프시코드 특유의 사각. 사각. 눈 밟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타건과 동시에 즉각 본래 음가를 내는 게 아니라 사. 각. 또는 뽀. 드득하며 앞쪽에 여운을 두고 두세 단계에 거쳐 비로소 제 음가에 이르는 것 같은 클라비어의 소리 말이다. 그 사사삭, 부서지는 소리. 블랑딘 라누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라모 앨범에서는 오히려  이런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아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브의 불완전한 악기(또는 연주자) 컨디션이 만들어낸 찰랑거림이라는 우연은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는 그 불완전한 피아노로 연주되는 찰랑대는 사라방드를 사랑한다.


이날 김규연은 연주 사이사이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문법을 설명했다. 방송이 허용하는 시간과 깊이에 맞춘 몇 가지에 불과했지만 바로크 음악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라고 생각한다. 접근성이 낮은 대외비적 지식을 공개하는 데다, 각 문법의 용례를 보여준 덕분이다. 특히 노트 이네갈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노트 이네갈은 프랑스식 장식음의 하나로서 순서대로 진행되는 같은 길이의 짧은 음표들을 불균등한 길이로 연주하는 방법을 뜻한다고 한다.


나는 노트 이네갈 Notes inégales이라는 방법에 매료되었다. 부점 비슷하게 첫 음을 길고 다음 음을 짧게 연주하는 이 방법이 주는 효과는 신경 안 쓴 듯 쓰는 프랑스식 스타일링을 닮았다. 같은 길이 음을 일부러 불균등하게 만들어 자연스러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이다. 게다가 이 인위적인 자연스러움은 자연스럽다! 한 청취자 소감처럼 냇가를 흐르는 시냇물 같은 자연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것, 어쩌면 내가 하프시코드의 사각거림이라고 생각하는 출렁임을 연출한 것이 이 방법인지 모르겠다. 흠, 독일의 시냇물이라면 이네갈을 허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퀄하고 규칙적이어야 할 것이므로(반쯤 농담이다).


어제오늘은 불타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여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은 무지하고 무절제한 인간종으로 인해 점차 짧아질 것이므로. 불타는 하늘에서 내린 비가 축복처럼 여겨지는 조금 차분해진 여름날, 라모를 다시 듣는다.



음악

KBS 음악실, ‘Hommage a Rameau’, pf. 김규연 : 유튜브에서 보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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