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고모는 왜 혼자 살아?

고모일기, 21/09/19~22

by 만정

루이는 여름이 지나면서 훌쩍 자랐다. 새 줄기를 뻗고 새 이파리를 내미는 우리집 금전수와 오로라처럼. 올 상반기만해도 다섯 살 같은 여섯 살이었는데 요즘 만나면 일곱 살 같이 느껴진다. 비단 팔다리가 길어지고 몸통이 제법 사람 같아지는 신체적 성장 때문만이 아니다. 점점 더 좋아지는 기억력, 나날이 풍부해지는 어휘력, 가끔 묻는 말에 침묵으로 답하는 그만의 개성 혹은 자아 덕분에 때때로 이 익숙한 사람이 낯설어진다.


멈출 수 없어.


이번 추석에 새롭게 나타난 주목 할만한 변화는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다. 루이는 처음으로 멈출 수 없는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 전 일요일, 우리는 뮤지엄 산에서 만났는데 루이는 앞으로 달려나갈 뿐이었다. 그림을 전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걸음을 맞춰 그림을 보자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소리도 쳤다. 루이는 더 어린 나이에도 소리 지르지 말라는 말을 알아듣고 좀처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소리치기를 멈추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발 맞춰 걷자는 말에도 내 손을 잡고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뛰거나 멈출 뿐 걷는다는 개념을 잊은 사람 같았다. 가만히 있어야만 할 때는 누가 오래 멈춰있나 게임도 해봤다. 이겨야 하는 사람이므로 이때만큼은 20초 쯤 멈춰 있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나: 루이, 잠시 멈출 수 없을까?

루이: 그런데 나 멈출 수가 없어.


완전히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저 사람의 작은 신체 안에서 뭔가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생성되고 연결되는 일이 반복될 몸과 신경과 정신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건 아닐까? 이 우주적 격변의 긴 흐름 안에서 일시적인 불균형은 필연적인 것만 같다.


그의 변화에 발맞추어 그를 대하는 내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아기에서 유아가 될 때처럼 어린이로 거듭나는 그를 위해 나도 유아에서 어린이로 바껴야 할 때일 것이다. 우리가 이 시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길 기도한다.


고모는 왜 혼자 살아?


얼마 전부터 루이의 질문은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감동 같은 어휘부터 신, 역사 같은 개념에 이르기까지 점점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받게 되었다. “고모는 왜 혼자 살아?” 이번 추석 연휴 받은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루이 아범은 결혼 안하는 누나에게 조카가 일침을 날린 것으로 생각하는 듯 했지만 나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척 중요한 질문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그럼 고모는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해?


그는 이제 ‘세계’를 알아가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나와 내 가족 너머 말이다(물론 나도 가족이기는 하지만). 세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다수가 정답은 아님을, 소수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나는 좋은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루이는 침묵으로 답했지만 다음엔 대화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조카와 함께 하는 두 번째 어린 시절


루이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세계를 관찰하고 알아가는 일곱 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살짝 아쉽다. 내가 늙기 때문이 아니라, 루이와 함께 찾아온 나의 두 번째 아이 시절이 머지 않았다는 자각 때문이다. 조카를 둔 기쁨 중 하나는 그의 연령에 맞추어 내가 다시 한번 어린이를 산다는 것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를 ‘놀아준’ 적이 없다. 같이 놀았을 뿐이다. 그와 똑같이 아이가 되어 뛰고 점프하고 말장난 하는 것은 내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어른 노릇 하느라 잊었던 놀이에 빠지면 해방감이 느껴졌다. 이제 루이가 자라남에 따라 나도 점차 사회화되고 분별있는 어린이, 청소년으로 자라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철없는 고모로 금새 조카를 실망시키겠지.


안 그래도 좀 다른 종류의 아쉬움(아마도 너무 귀여운 그를 언제까지고 보고 싶다는)을 품은 우리 아빠가 루이에게 말했다고 한다.


난 루이가 안 자랐으면 좋겠어.


이 말을 들은 신통방통 루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렇게 말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그런데 나는 학교도 가고 싶고, 대학교도 가고 싶은데, 자라지 않으면 갈 수가 없을텐데…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우리는, 루이와 나와 아빠는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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