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나는 일곱 살, 고모는 네 살

고모일기, 22/01/10

by 만정

일곱 살 형님

마침내 일곱 살 형님이 되신 루이를 만났다. 놀랍게도 혼자 밥을 먹었다(두둥!). 언빌리버블! 한달 전만 해도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일곱 살 된 지 열흘 만에 정말 한 그릇 밥을 혼자 퍼먹었다. 일곱 살 형님은 다르다며, 엄마와 나는 진심으로 경탄했다. 이제 나는 루이와 둘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나는 밥 먹이는 게 정말 두려웠다. 내 밥도 간신히 먹는 서른 아홉살이기 때문이다).


고추와 같이 볶아 매운 맛이 나는 멸치도 잘 먹는다길래 오빠라고 불렀더니 진심으로 좋아한다. 맙소사. 게다가 자긴 일곱 살, 나는 무려 네 살이란다. 세상에. 이젠 남동생(지 애비)과 여동생(나)이 있다며 신나했다. 나야 오빠가 둘(동생과 조카)이라서 좋긴 한데, 동생을 왜 좋아하는지 이해는 안된다.


‘누나’에게 전화 걸면 돼

엄마가 오셔서 오늘 저녁은 루이네 집에서 보내기로 했는데, 하필 퇴근이 늦어졌다. 만난 지 한 시간 반 동안 밥 먹고 좀 뛰고 좀 놀았더니 헤어질 시간이었다. 이별을 고하자 아쉽다며 루이 얼굴이 일그러진다.


사실 루이는 지난 토요일, 애비 전화기로 내게 친히 전화를 거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보고 싶으면 전화하라고 헤어질 때 내가 늘 말하긴 했었다. 그런데 실제 그 전화를 받는 게 이렇게 놀랍고 기쁜 일일 줄이야. 게다가 루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누나’로 전화 걸면 된다고 말해 모두를 웃겼다. 그리고 18분 동안 영상 통화로 내게 레이저를 발사하고 햄스터 볼을 던져서 얼굴에 혹을 잔뜩 만든 후, 보고 싶다고, 놀러 오면 안되겠냐 물었다. 루이네 주말 일정이 있던 터라 그럴 순 없었다. 너무 서운해서 시무룩한 얼굴로 끝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더니, 일요일 저녁에 다시 전화 걸어왔다. 이번엔 월요일에 만나자는 말을 듣더니 사탕 먹는다며 쿨하게 전화를 끊었더랬다. 약속을 확인하고 안심한 거라고 엄마가 해석해줬다.


그렇게 보고 싶어했는데 한 시간 반이라니. 좀 짧긴 했다. 눈물을 찔끔 짜내며 내 품에 축 늘어진 몸을 안아줬더니 고모랑 같이 가고 싶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고모는 혼자 살잖아.


루이 아범에 대해 우리가 두고 두고 하는 얘기 중엔 이런 게 있다. 그 친구가 루이만 할 때였나? 우리 아빠 열세 살 때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 혼자되신 할머니는 4남매를 길러내셨고, 장남인 우리 아빠가 결혼한 후엔 우리 가족으로 사셨다. 루이 아범은 엄마를 끔찍이 좋아했는데, 나중에 자기는 엄마랑 자고 자기 색시는 할머니랑 자게 할거라 했다는 얘기다. 올케 앞에서 말하면서 가끔 동생을 골려주는데, 요즘 이 얘길 꺼내면 모르는 척 한다.


혼자 사는 고모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말을 듣는 기분이 묘하다. 혼자 사는 게 때로 외로운 건 사실이다. 어린 조카가 그런 고모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도 귀엽다. 아이들은 쓸쓸한 데 마음을 쓰는 어린 동물들 같은 데가 있기도 하니까. 또 루이는 공감을 잘 하고 동정심과 연민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루이에게 내가 안된 모습을 보였던가? 돌아보게 된다. 안쓰러워 보이고 싶지 않다. 특히 루이에게는. 혼자여도 즐겁고 신나고 씩씩하게 사는 인간상으로 루이가 나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나라는 에피소드가 루이에게 그렇게 남았으면 좋겠다.


루이답지 않게 헤어지는 걸 어려워 한 날이었다. 루이는 고모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또 눈물을 찔끔했다. 그럼 보여달라고 했더니, 보여줄 게 없다며 또 슬퍼했다. 세상에. 루이야, 아무 것도 안 보여줘도 돼.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 거야. 괜찮아. 괜찮아. 내 안에 남은 아이가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별일도 아닌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던 별 걱정을 다 하는 아이가. 물론 규민이는 나와는 또 다른 아이이지만 아이의 마음이라는 게 오랜만에 느껴졌다. 한때 아이였던 기억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작고 애틋했다.


결국 내일 퇴근하고 오겠다고 새끼 손가락을 걸고서야 루이 표정이 풀렸다. 날 위해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루이는 조카가 없을텐데. 조카가 없으면 이런 근사한 기분을 알 수 없을텐데. 그건 좀 유감스럽다.


소중한 밤을 건너, 다시 보러 가겠다! 너, 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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