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정 Feb 18. 2022

#37 썩 괜찮게 시적인

Adagio, 영화 ‘프랜치 디스패치’ 중에서

그는 은하계 외곽을 향하는 무적의 혜성이 아니다.
그보다는 젊어서 죽을 청년이다.


나는 여전히 ‘프렌치 디스패치’의 영향 하에 있다. 매일 저녁을 먹고 이 영화를 틀어둔다. 출퇴근길에는 삽입곡 ‘Adagio’를 끝없이 듣는다.


‘Adagio’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아니다. ‘Compte à rebours(1971)’라는 영화를 위해 조르쥬 들르뤼가 작곡한 곡을 삽입곡으로 사용한 듯 하다.


아다지오는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 반주로 이루어진 짧은 곡이다. 독주 바이올린 멜로디가 무척 아름다운데, 특히 피치카토 반주 위에서 노래할 때 내 마음은 요동친다. 아니, 그보다는 가벼운 통증을 느낀다. 이 아름다움에는 매우 알싸한 속쓰림을 동반하는 애절함이 있다. 뭔지 모를 슬픔을 예견하는 것이다. 더 기묘한 건 그 슬픔이 아름답다는 것. 비장하거나 처절한 슬픔은 아니다. 장조의 따스한 멜로디가 피치카토가 불어넣는 가벼움 위에서 마음을 들뜨게 한다. 가벼운 기대감과 긴장감 사이에는 그러나 미묘한 추락의 진행이 숨겨져 있다. 추락의 예감이 긴장감을 부여하고 슬픔을 예견하게 하는 걸까?


프렌치 디스패치의 다섯 개 챕터 가운데 내가 ‘선언문 개정’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문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크레멘츠는 “명료하고 간결하며” 담담하지만 냉정하지 않은 글을 쓰는 프로페셔널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른 어떤 작가들보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에 헌신적이다. 이것은 당연히 내 자아의 이상형이다.


시적인 축축함을 경계하고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필요하면 슬픔의 정조 역시 분명하게 전달하는 크레멘츠의 문체는 제피렐리의 부고를 전할  거의 나를 울린다(물론 마지막 문장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어리숙하고도 나이브하지만 변화와 혁명을 추구하는 생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낭만적 열정을 희극적으로 그리던 기사는 타워가 무너져 익사한 제피렐리의 죽음을 알리는 문장( 위의 인용구)에서 비극으로 추락한다(그러나 비극이라고 단정짓기는 왠지 망설여진다.  일까?).  역시 급격한 낙차를 글쓰기에서 즐겨 쓰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대목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Adagio는 사랑스러운 젊은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리는 담담하지만 충격적인 문장을 돋보이게 하는 음악이다. 희비극을 교차시키는 문장과 음악은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큰 타격을 안긴다. 이제 크레멘츠가 낭독하는 문장과 영화 속 시청각 이미지는 하나가 되어 내 머릿 속에서 재생된다. 아주 오랫동안 반복재생 될 구절이다.


아릿하게 아름다운 슬픔에 시간을 내어주는 낭비를 나는 당분간 충분히 즐길 것이다.



‘Adagio’, George Delerue : 듣기

매거진의 이전글 #36 화창한 겨울 오후의 D장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