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 연보랏빛 겨울

by 만정

로사 로이 Rosa Loy 의 ‘추측’. 어린 시절, 조부모 댁에서 보낸 겨울의 추억을 그린 작품. 전통적인 독일식 집과 눈 내린 언덕에서 썰매를 끄는 개. 작가는 저런 곳에서 썰매를 타며 겨울을 보냈을까? (다른 작품들을 고려했을 때) 작가 자신의 자아 중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는 포슬포슬한 흰 개. 그 목과 몸통을 팔다리로 꼭 끌어안고 온 몸의 가능한 넓은 면적을 개에 붙이고 앉은 소녀. 할머니 댁에는 소녀가 자신처럼 사랑한 우아한 개가 있었던걸까? 미스터리는 썰매에 얹어진 검은 플라스틱 쓰레기 봉지가 맡고 있다. 확실한 에피소드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시절 누구나 마음에 품었던 두려움과 공포, 그 불편한 감각이 담겨 있다는 봉지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나이 든 어린이들의 깊숙한 어딘가를 끊임없이 건드린다.


올 겨울, 우리집 거실에 붙어 날 지켜준 그림이다. 내 시선은 집과 눈밭과 개와 소녀, 썰매와 검은 봉지를 지나 왼쪽 구석 얼음이 낀 연보랏빛 강가에 오래 머물렀다. 나를 사로잡은 건 이상하게도 이 보라색 얼음이었다. 강의 푸른 빛과 따뜻하고 포근한(차가운 대신) 눈 사이의 신비로운 순간이다.


벌써 완연한 봄 같은 비가 내리는 삼월의 첫날, 비로소 겨울 내 바라보던 그림에 대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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