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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y 10. 2022

엄마와 올케와 롤러코스터를

최고의 어른이날

에버랜드에 방문하는 건 이십년 만이었다. 중고등생 시절 일년에도 몇번씩 학교에서 단체로 다니던 곳이다. 갈 때마다 환상특급과 독수리요새, 후룸라이드를 탔다. 바이킹도 빼놓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마을 같은 건 내 취향이 아니었고 차라리 다람쥐통에 들어갔다.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사랑했다.


이 중 이십년 후에도 이름 그대로 남아있는 어트랙션이 아마존 익스프레스 밖에 없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벼르던 롤러코스터 이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비슷하지만 이름이 바뀐 것들도 있고 독수리요새처럼 사라진 것도 있었으며 티 익스프레스처럼 새로운 것도 있었다. 스마트 줄서기 시스템도 충격적이었다. 동생과 올케 아니었으면 오전에 아무것도 못탔을 것이다.


올해 엄마 생신이 어린이날인데다 어버이날이 주말이고 마침 에버랜드 이용권이 생긴 동생은 부모님에 나까지 용인 1박 2일 여행을 기획했다. 걱정을 많이 하던데,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어린이날이었다. 엄마 아빠한테는 제일 신나는 어버이날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진짜 어린이인 조카 루이만이 집에 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처음엔 롤링 엑스 트레인을 혼자 탔다. 제일 앞자리에 혼자 앉을 수 있어 기대가 부풀었다. 동생이 롤러코스터를 무서워하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데, 이미 안전장치가 갖춰진 인위적인 스릴을 즐기기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나를 거스르는 건 무서움이나 두려움이 아니다. 가속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이 요동치면서 피할 수 없는 육체적 불쾌함이다.


늘 그렇듯 소리는 지르지 않는다. 입이 귀에 걸려 시종 실실 웃고 있긴 하다. 눈은 대개 뜨고 모든 순간을 지켜본다. 서른 아홉살에 롤러코스터를 탄 나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기구에 앉아 바라보는 하늘과 푸른 나무숲의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했다. 이전에 몰랐던 즐거움이었다. 아, 그래. 에버랜드는 산중에 있으니 당연할 일이다. 그 하늘과 나무숲의 경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이라이트는 티 익스프레스였다. 우든 롤러코스터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니! 긴 대기줄을 따라 롤러코스터 아래를 지나는 동안 나무 레일을 달리는 트레인이 내는 독특한 소리를 감상했다. 엄마와 함께. 엄마도 거대한 나무 구조물과 기구가 달리는 소리, 간간이 들리는 비명을 즐겼다. 하지만 실제 본인이 롤러코스터를 탄 순간 만큼은 아니었다. 절대.


티 엑스프레스 만큼 운행시간이 길고 쉴틈 없는 롤러코스터는 처음이었다. 무척 신선했다. 높은 고도, 그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놀이동산의 전경, 70도가 넘는 경사각을 떨어지는 스릴, 속도, 떨어진 직후 우회전으로 몸을 통제할 수 없도록 설계된 코스 등으로써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탑승객들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우린 둘째 줄에 앉아 있었다. 트레인이 가속을 완전히 줄이고 차고지, 즉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순간 엄마가 말했다.


이렇게 재미있으니 사람들이 타러 오지.


이때처럼 신나고 즐거운 엄마의 표정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영원히 잊지 못할 표정이다.


엄마의 첫 롤러코스터이기도 한 김에 출구에서 파는 사진도 기념으로 샀는데 세상에. 급활강 순간인 사진 속에서도 엄마는 활짝 웃고 있다. 놀이기구 타는 동안 엄마는 당연히 어떤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보면 나이가 들어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갖게 된다. 정말이지 이 순간이야말로 이날 놀이동산에서의 클라이막스가 아니었을까.


이후 나는 90분을 기다려서 혼자 후룸라이드 비슷한 썬더폴스를 기어이 탔다. 놀이동산 한쪽 구석에 자리한 덕분에 나무가 유난히 많아서 무척 기쁘게 즐겼다. 루이는 내 엉덩이가 젖은 건으로 나를 한참 놀려먹었다.


같은 시각, 엄마와 올케는 롤링 엑스 트레인을 탔다. 기다리는 동안 올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님, 여기 기다리는 사람 중에 어머님이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아요.


엄마 왈,


그런 거 같네.


올케는 에버랜드를 나서면서 최고의 어린이날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동의했다. 놀이동산이 어른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떤 얼룩도 없는 완벽한 하루, 진귀한 하루, 가족과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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