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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ul 25. 2022

회사원이라는 모험 : 회사와 퇴사에 관한 50개의 단어

단어 9: 말(발)

개발을 잘하든 말을 잘하든 둘 중 하나는 해야 되는데 너는 뭐냐? 둘 다 안돼.


다행인지 개발이 유일한 살 길은 아니었다. 위 문장이 시사하듯이 말(로서 통칭되는 의사소통 기술) 역시 IT 컨설턴트의 주요 스킬셋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물론 저 문장은 동시에 내가 말에서도 실패했음을 의미하지만.


개발 vs. 말(발이 더 자연스럽다. 특히 장인 같이 일하는 개발자가 발화자일 때 특유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깃든다. 그 발화자의 전제는 ‘관리자들에게 착취당하는 개발자상’일 수 있다). IT업계(내지는 우리 회사)에서 통용되는 흔한 이분법의 하나다. 개발 vs. 관리처럼 말이다. 이는 철학이나 사회학에서 수백, 수십년 간 이어져온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구조와 개인, 보편과 특수에 비견할만한 대립이다. 그만큼 만연한 동시에 가상적인 대립이라고 하고 싶다.


IT는 종국에 한땀한땀의 코딩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한땀이 완성되기까지 디자이너, 재단사, 미싱사 손을 거쳐야 하는데, 각 역할을 대개 다른 사람이 수행한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여기에 오더 넣은 고객이나 판매/경영자는 아직 언급도 안한 것이다. 다양한 플레이어가 다양한 관점과 때로는 충돌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재단사나 미싱사가 제아무리 오뜨 꾸뛰르의 아뜰리에라고 해도 이건 된다, 안된다에 대해 디자이너나 판매자가 납득할 수 없이 말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제작 가능성을 가늠할 기술적 지식 없이 오더를 받고 디자인하는 사람은 실물의 옷이 엉망이거나 나올 수 없음을 알게 될지니. (기술적이고 사업적인) 의사소통은 기술과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고, 이제 나는 돌아보며 말할 수 있다.


첫 문장의 ‘말’이 말발이나 사술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의미로 ‘말’과 언어를 비하하지 않는다. 말은, 특히 업무적인 말은 정보가 그득하지만 정제되고 고도로 코드화된 의사소통 단위라고, 역시 돌아보는 입장에서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코딩을 독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말로서 자기가 원하는 것과 의사표시를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문에 말하기 전에는 메일을 쓸 때처럼 신중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신중해야 하는가는 기본적인 것 같지만, 역시 실무에서 익힐 일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첫 문장은 입사 7개월 차인가, 첫 사수가 저녁 회식자리에서 내게 한 말이다. 내 인생 통틀어 순간 분노지수 최대치를 친 순간이다. 몇 번 안되는 저녁 회식에서 불필요한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될 터였지만 여기 대적할 상대는 없었다. 돌아보면 이때 감정이 모욕감보다는 분노라는 게 늘 신비하다. 다시 자문해봐도 모욕감보다는 분노다.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내 개발 실력은 내 기술분야 개발언어에서도 영 신통치 않았다. 팀에서 특별히 시간과 인력을 들여 신입사원들에게 솔루션 교육을 시행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뭘하는지 몰랐다. 교육을 맡은 선배들의 의욕과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 같은데 내겐 역부족이었다. 그런 상태로 실무에 투입되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 내겐 사수가 있었다(이걸 운이 좋다고 말하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그 사수가 한 계절이 지나기 전에 저런 평가를 내린 것이다.


처음 일을 배우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다.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배우라고 해보라. 어떤 귀중한 영업비밀을 문서로 전달해주어도 소용이 없다(물론 이때   의미있어질 날이 오지만 그건 아직 계절이  바퀴나  다음 일이다). 의지 없는 사원의 사수 역할이 쉽지 않았겠지만 내가 그정도로 가망없지는 않았을  같다는 목소리는 지금도  안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탁월하게 좋은 신입사원이 아니었더래도 말이다. 왜냐하면 탁월하게 좋은 신입사원은 정규분포의 오른쪽 좁은 면적에 해당할 것이 확률적으로(그리고 경험적으로) 자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은 그저그런 보통의 신입사원이다. 보통이 안되는 신입사원 역시 확률적으로 예측 불가능할  없다. 대기업의 선발이  정도 실패 확률을 감안하는 체계라고 믿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보통의 신입사원은 사원으로 트레이닝 된다. 그런 견지에서 나는 다음의 질문들을 하게 된다.


내 사수는 정말 날 가르칠 생각이 있었을까? 말이 수사가 아닌 업무의 영역에 있을 때에 신입사원이 잘할 수 있는 말이 그렇게 다양할까? 그렇다면 나는 진의를 물어봤어야 하는 걸까? 어떤 의미로 말을 못한다고 하신 건지요? 라고.


다행히 분노의 순간은 나나 내 사수를 쓰러뜨리지 않고 무사히 지나갔다. 다만 이후 10년 간 내가 흥미없음과 무능이라는 두 개 축으로 회사원으로서 나 자신을 스스로 축소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이 평가는 지속적이고 폭발적으로 작동했다. 어찌나 힘이 센 말인지, 이 글을 쓰는 데 다른 글의 20배는 시간이 걸렸다. 좀처럼 써지지 않았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기를 여러 날. 뒤숭숭한 꿈도 몇 차례 다녀갔다고 고백한다. 이 일을 떠올리는 게 아직 내게 불편한 일이었던 것이다. 부끄럽고 분하지만 아직 이 말은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쓰는 동안 불편함이 나를 계속 찾아올 것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쓰는 일은 단지 쓰는 데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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