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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Feb 16. 2024

나의 로마, 그녀의 히말라야

나는 티베트불교의 팔길상(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문양) 중 한 개인 ‘끝없는 인연의 고리’ 문양을 좋아한다. 네팔을 여행한다는 것은 꼭 무엇인가 연관된 것들이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네팔에 오는 여행객들을 보면 그들은 어떤 인연일지 생각해본다. 그 내면의 인연과 관계의 고리들이 네팔 사람들에게도 여행객들에게도 서로 좋은 에너지로 발현하길 바라본다.

- 서윤미, ‘나의 히말라야에게’ 중에서


나는 지난 6년 간 세 번 로마에 다녀왔다. 초등학교 때 전교생이 우체국 통장에 매달인지 매주인지 적금을 부었는데 내 통장에 이름을 붙여야 했다면 그건 ’로마행‘이었을 것이다. 열 한살 무렵에는 이미 로마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가보지도 않는 폼페이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열 세살 땐가는 로마에 대한 여행 책자를 역전 앞 서점에 주문해서 구입했던 기억도 난다. 그 책을 나는 오랫동안 애지중지했다.

참 궁금한 일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무엇이 나로하여금 다른 어느 곳보다 이 나라, 이 도시를 사랑하게 한 걸까? 가보지도 않은 도시를 그리워하게 한 걸까?


EBS 세계테마기행 아름다운 시절 네팔 편에 완전히 빠져있다. 여행작가 서윤미 씨의 여행기가 어쩐지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여행기는 처음 본다. 외부인이면서도 외부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7년이나 네팔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 덕분일까? 그래서 나는 그녀가 출간한 네팔 관련 서적 두 권을 다 구입했다. 수수하지만 진실되고 자기 생각을 쓰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녀의 TV 여행기가 나를 반복적으로 이끄는 것도 네팔이라는 타자를 대하는 그녀의 이런 태도, 그러니까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그를 아끼는 것이 분명한 태도가 내 내면의 어떤 부분과 조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로마에서 보낸 날은 보름 남짓. 나는 여전히 로마가 그립다.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에서 나는  폐허가 아니라 존재를 본다. 존재의 유한함보다는 존속, 끝내 시간을 견뎌내었음을 본다. 그래서 나는 무상함을 느끼기보다는 경탄한다. 내게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이 도시는 고대 위에 바로크가 레이어 되어 있다는 사실, 시간이 지층처럼 겹을 이룬다는 사실은 실제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내 사랑은 한층 더 깊어졌다. 아무 성당에서나 카라바조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이 도시. 유구한 시간과 이야기가 지구상 그 어느 도시보다도 풍성하게 남아있는 이 도시를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자꾸만 네팔로 향하는 서윤미 작가의 마음을 알 것도 같은가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인연이 있는 것도 같다. 어쩌면 네팔과 나 사이에도 어떤 인연이,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병풍처럼 겹겹이 펼쳐진 히말라야에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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