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 공예와 예술 사이

시에나 특별전 (내셔널 갤러리, 런던)

by 만정

착오였다, May를 March로 읽은 건. 믿음에 눈이 멀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놀랄 일은 아니다. 슬프게도 나는 왕왕 이런 일을 겪는다.

내셔널 갤러리 재배치 오픈은 5월 10일이었다. 3월 10일이 아닌. 어쩐지 지난주까지도 세인스버리 윙이 한창 공사판이 더라니. 어제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본 바, 그나마 걸려있던 라파엘 초상화 한 점마저도 ‘Not on display‘ 상태로 바뀐 게 이상하다 싶었다. 25년 3월 11일 현재 기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다빈치, 티치아노, 라파엘이 단 한 점도 전시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나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도. 그러나 지난번 닫혔던 방이 열렸다. 미술관이 자랑하는 ‘휘슬재킷’을 정중앙에 두고 토마스 게인스버러, 조슈아 레이놀즈 등 영국 그림으로 채운 큰 방이 무척 아름답다. 5월 새 단장 후 14-16세기 방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그런고로 5월 10일 이후 이곳을 방문할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이 정도로 방을 비우기 전에 몇 점이라도 더 본 게 그나마 다행이다.


3월 10일 시작하는 시에나 특별전에 대한 엄청난 광고에 낚인 것도 사실이다. 기왕 런던에 들르는 참에 까짓 거 보자 싶었다. 히샴 마타르의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읽으며 안 그래도 다음(아니면 그다음)에는 시에나를 방문할 생각이었다. 세계 각지 미술관에 흩어진 시에나 화가 작품들을 한 군데서 본다는 기획 자체도 흥미로웠다. 루브르 소장품을 소개하는 책에서 시에나 화가들이 프랑스 미술에 미친 영향을 읽기도 했으므로, 가격 문제를 제외하면 오히려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말이 22파운드지, 지금 미쳐있는 환율을 감안하면 4만 원이 넘는 전시였을 것이다. 그래도 무료로 네 번이나 본 미술관인데 기부도 아니고 이 정도 돈은 쓸 수 있지 않냐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지하 카페테리아에 앉아 2시 15분 예약 시간을 기다리는데 특별전 입장객이 끝없이 밀려들어갔다. 입장객은 놀라울 정도로 노인들이었다. 노인들 뿐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노인들이었다. 시에나 중세 미술품이 대체 런던 노년층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렇게 비싼 전시에 오는 노인들, 저렇게 잘 차려입은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릴 때부터 이 미술관을 자주 방문했던 사람들일까? 런던 내 미술사학계 원로들이라도 몰려든 걸까? 저 연령대 런던 거주 어르신들이라면 누구나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추억 한둘쯤 갖고 있어서 이 토스카나 도시 이름에서 향수라도 느끼는 걸까?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당혹스러운 질문이 떠올랐다. 이 서구 노인들 파티에 동양인 중년 여자는 어쩌다 끼어들게 된 것인가? 나는 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가? 왜 좇고 있는 것인가?

다소 혼란스러운 질문들과 함께 전시장에 들어선 나는 곧 냄새에 압도당했다. 우리 할머니에게서 맡은 적 없는 매캐한 냄새. 텁텁한 냄새와 느끼한 냄새가 짙게 풍겨 숨을 참았다. 유럽에 몇 번이나 방문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서양 사람들 냄새와도 달랐다. 내게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분명히 날 것이었다. 동양인에게 난다는 마늘 냄새든 오래 여행한 사람에게 나는 지친 냄새든. 나는 주변 사람들 표정을 은연중에 살폈다. 상설전시실과 달리 좁고 폐쇄적인 이 공간을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휠체어와 지팡이를 피해 좁은 방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관람객들은 유심히 천천히 작품을 살폈다. 전시실 중앙, 조각난 두치오 마에스타 열 점 정도를 일렬로 전시한 구간에는 좀처럼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귀한 작품인 줄 알면서도 나는 줄이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걸으며 멀찍이서 건너다볼 뿐이었다. 도무지 그 줄에 합류할 기분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호기심을 여전히 간직하는 건 좋은 일이지.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금빛 성배와 화려하게 장식된 휴대용 딥티크 앞에서 그들은 공고하게 버텼다. 전시물 가까이 코를 박고 욕심껏 보고 있는 모양새에 나는 그만 심술이 났다. 그들이 탐욕스러운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흉을 조금 보았다.

단 한 명, 매력적인 관람객이 있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멀찍이서 보거나 가운데에서 잠시 보다 곧 자리를 내주는 할머니였다. 하얗게 센 곱슬 커트머리가 단정하고 잘 차려입데다 자세가 바르며 몸이 아직 건강하고 유연해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저런 관람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관람객으로서의 내 모습을 그녀에게 투사했다. 내게서 풍기는 냄새가 호기심인지 욕심인지는 스스로 감지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런 사유인 것 같다, 이 전시에 대한 사진이 거의 없는 것은. 애석하다. 사진은 단 두 장.

하나는 니콜로 디 부오나코르소의 ‘성모 마리아 결혼(1380년경 제작, 내셔널 갤러리 소장)’이다. 이 작품 설명에는 신랑 조셉이 맨발로 딛고 있는 카펫 이야기가 절반이다. 단순화된 새와 큰 동물 문양이 있는 아나톨리아식 카펫은 이후 150년 동안 시에나 화가들에 의해 재현된단다.

사진을 찍은 이유는 그렇지만 카펫이 아니다. 나는 그림 최상단의 새 때문에 이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이건 제비잖아? 게다가, 건물에는 제비집이 있잖아? 비둘기도 아니고 제비가? 14세기말 시에나에는 제비가 살았나? 지금도 서식하는 걸까? 제비(추정) 아래 나무도 특이하긴 매 한 가지다. 열대스럽기도 하거니와 풍성한 나뭇잎에서 땅 쪽으로 금색 폭죽이라도 터지는 것 같다. 다소 이국적인 풍경이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런 성모 이야기는 처음이야! 맞게 봤는지 그다지 확신은 없다. 확실한 건 이런 그림은 갖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화려하게 조각하고 금박을 입혔을 액자를 포함해서. 토우나 토기처럼. 종교가 없는 내게 성스러움의 이같이 비싸고 화려한 표현은 오히려 예술과 공예 그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집 벽이나 테이블 장식으로 쓰고 싶은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그 끝판왕은 놀랍게도 윌튼 딥티크였다. 놀라운 이유는 첫째, 시에나 화가 작품이 아니라는 것, 둘째, 원래 내셔널 갤러리의 유명 소장품으로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람객 역시 이 그림을 상설 전시장에서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딱한 관객은 그림이 여기 있게 될 줄도 모른 채 특별전을 며칠 앞두고 이곳을 찾았다. 작가가 ‘영국 또는 프랑스 화가(?)’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딥티크는 시에나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게는 설득력이 다소 부족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와 별개로, 이렇게까지 갖고 싶게 생긴 물건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중세 미술은 보다 즉물적이고 즉각적인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장식적인 특성 때문일까? 기본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일단 호감을 갖게 한다. 화려할 뿐 아니라 귀엽고 사랑스럽다. 성모 마리아와 같이 귀한 파랑 염료 옷을 입은 천사들의 날개 모양이 그렇고, 어깨동무를 하고 팔짱을 낀 천사들의 개성 넘치는 자세가 그렇다. 특히 리처드 2세 이 놈, 어디 잘하나 두고 보라지.라는 듯 팔짱 낀 천사를 보며 나는 한참 혼자 웃었다. 아마도 그는 짝다리를 짚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기 예수의 오른발을 잡고 있는 성모의 손에 시선이 머문다. 그렇지. 걷는 기능이라고는 아직 전혀 없는 게 분명한 모양새의 작은 발들은 깨물어줄 수도 있을 정도로 사랑스럽지. 그러나 이 같은 애정이 예수에게 적절한 것일까? 인간 아기를 대하는 평범한 인간 엄마 같은 애정과 친밀함이 예수에게 가당키나 한가. 교리적으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인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교회도 못 본 척해버린 걸까? 눈이 조금 흐려진걸까?

사실 가뜩이나 번쩍이는 금빛이 유리장 안에 든 채로 위로부터 강한 조명을 받고 있어서 그림을 제대로 보긴 했는지 나 자신도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나 우리,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이 그림에 홀린 듯 모여들었다. 그들과 나, 우리는 한참을 이 딥티크 앞에 떠날 줄 모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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