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지도교수가 그제 꿈에 나왔다. 졸업한 지 15년이 넘었고 마지막으로 실제 만난 건 7년 전, 꿈에서 본 지도 5년은 됐다. 그런데 이렇게 무방비 상태일 때 그렇게까지 선명하고 생생하게 나타나다니.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다 번뜩 생각이 났다. 아, 어제 꿈에 그가 나왔잖아? 자각한 순간 첫 감정은 어이없다와 열받는다 사이 어디쯤 위치했다.
지도교수보다는 자주 꿈에 등장하는 학교는 내 꿈속 버전으로 재구성되어 재현되는 그 공간이었다. 그런데 지도교수 방이 이상하다. 관짝처럼 좁았다. 너무 말도 안 돼서 다른 교수 방을 슬쩍 봤는데 정상적인 넓이였다. 아니 왜 이런 벽장 같은 방에 계시지? 게다가 이 아저씨,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다 어랍쇼, 나를 보며 자기 몸이 아프다는 말만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늘 그렇듯 좋은 옷을 멋지게 입고 있었다. 내가 아는 일반인 중 가장 옷을 좋아하는 남자답게.
내 꿈은 개꿈이 분명하지만 혹시나 싶어 네이버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두려운 마음으로. 그와 관련된 최신 부고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의 부친상이었다. 대신 신간 소식이 있었다. 올해 5월에 비트겐슈타인 규칙 따르기에 대한 책을 발간했다는 블로그 글이었다.
자기 새책 사라고 꿈에 나왔나봐.
안도하면서 동시에 열이 받는다. 이런 일로 내 숙면을 방해하다니. 게다가 나는 외면하지 못하고 주문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내 안에 지속하고 있음을 깨닫고마는 것이다. 동시에 그가 또 얼마나 성실하고 훌륭하게 책을 썼을지 궁금해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도. 문장과 문장, 구와 구, 단어와 단어 사이의 논리적 흐름이 여전히 아름다울지 기대하면서. 내게 분석의 아름다움을 최초로 알려준 그 솜씨가 여전할지 궁금해하면서.
그를 학자로서 무척 존경했다. 나도 그처럼 지식사회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꾸준히 세계적인 저널에 글을 싣고 또 몇 년에 한 번은 영어로 책을 내며 업계에서 세계적으로 활발히 교류하는 일과 삶을 바랐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십오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인문사회학계에서 그 정도의 연구 업적은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그는 정말 성실하고 자기 일을 좋아하는 학자였다고 나는 그를 기억한다. 나는 그를 학자로서 신뢰했다.
그런 분위기를 지향하는 그의 지도학생들, 내 박사 선배들과 석사 동료들과 함께 그런 활동을 오래 지속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꿈꿨다. 그때 그룹이 그렇게 처참하게 박살 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내 ‘석사’ 지도교수로 수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박사도 했을 테니까.
십오 년이 지나서야 그때 그 붕괴를 내 언어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일부일 뿐이지만. 오늘은 더 멀리 나가기를 멈추고 그의 책을 주문한다. 아직도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엔터테이닝일지 겨울 내 확인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