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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4. 2021

2주. 코파카바나(2010)

2019. 07. 13. by 만정

당신이 ‘여자, 정혜’로 이 기획의 첫 장을 여는 동안, 공교롭게도 나는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다른 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다-혹은 완전히 다른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당신이 정한 마감인 7월의 첫 주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저녁시간이었기 때문에 당신이 보내올 글을 고대하는 한편 내 차례에 쓸 영화 몇 편을 만지작거리는 참이었다.


나는 제법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13살 때부터 19살 때까지, 고전부터 B급 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봤다. 주로 TV에서 방영되는 영화들을 봤기 때문에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었고, 영화와 친교 사이에 관계가 형성될 여지도 없었다. 나는 주말 밤 자주 자정을 넘겨가며 불 꺼진 거실에서 혼자 영화를 봤다. 언젠가 당신이 말했듯, 그렇게 영화를 보고도 영화계에서 일할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그건 대개 ‘TV’를 통해서였으니까, TV가 없는 기숙사 생활을 했던 대학 때의 나는 영화를 그다지 보지 않는 사람이었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함께 본 몇 편 안될 영화 목록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것은 당신과 함께 하는 게 영화 그 자체보다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흐릿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돌아보면 ‘여자, 정혜’를 봤을 때에도 나는 대체로 멀뚱멀뚱한 십 대 소년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무겁고 찝찝한데, 그 이유는 절대 알았을 리 없다. 곁에서 함께 본 사람이 놀라운 감수성으로 그 결을 세세히 느끼는 동안 말이다. 역시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나는 내 미래에 대해서도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곁에 있는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는 가망 없는 미래를 굳게 믿었다.


당신이 떠난 후에도 나는 영화를 보았고 자주 집에서 보았다. ‘코파카바나’도 그 중 하나다. ‘여자, 정혜’의 정혜가 당신과 함께 만난, 우리가 좀 아는 사람이라면, ‘코파카바나’의 주인공 바부는 내가 소개하고 싶었던 다소 신기한 사람이다.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중년 여성 바부는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화려한 옷차림과 칠면조 꼬리 같은 눈 화장! 경제적인 여유가 없지만 직업도 없다(으응?). 지금은 프랑스에 살지만, 평생 마음 내키는 대로 세계를 떠돌며 살았음을 곧 알게 된다.


대학에 다니는 딸은 한때 낄낄거리며 엄마의 즐거운 인생에 합석했지만 이제는 바부가 탐탁지 않은 눈치이다. 엄마와 반대로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는 딸은 바부를 별나고 철없는 인간으로 한심하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한다.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만큼. 딸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충격으로 바부는 대충(!) 직장을 구한다.


그러니까 그 ‘대충(!)’이라는 건 이런 식이다. 벨기에까지 가서 뜬금없이 콘도 회원권 영업에 뛰어든다. 취업의 필수요소인 자동차는 친구에게 빌리면 된다. 그 친구는 한때 바부를 지적이고 재미있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어쩐지 이제는 바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또 그렇게 별 생각도 없이 취업했어? 뭐, 또 곧 그만둘 테지.”


친구 생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벨기에 휴양도시의 겨울이 쓸쓸하거나 말거나, 새로운 동료들이 호의적이거나 말거나. 바부는 현지인들과의 우연한 저녁식사와 그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행운을 받아들인다. 뜻밖에 남자를 만나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영업인이 된다. 일은 이상할 정도로 술술 풀린다. 게다가 그녀는 재밌고 매력적이며 따뜻한 사람이다. 어느 날 밤 추위에 떨고 있던 젊은 노숙 커플을 콘도의 빈 방에서 재워주기도 하는 그런 다정한 사람 말이다(그렇다고 만만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과자점 취업 인터뷰에서 수틀린 후 그녀가 선사하는 액션 신이 그 증거이다). 세계는 그런 그녀를 합당하게 대우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력과 따뜻한 마음씨에 말미암아, 바부의 인생그래프가 (예기치 않게) 최고점에 도달한 순간, 운은 방향을 바꾸고 그녀는 해고된다.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마치 삶처럼. 그간의 수당과 퇴직금을 챙겨 카지노에  그녀는 룰렛 한판에 모든 돈을 걸고 행운은 다시 그녀의 손을 들어준다(으응?). 바부는  예기치 않은 돈으로 딸에게 멋진 결혼선물을 선사하고 화해하며, 코파카바나에 가려던 꿈을 몹시 그녀답게-, 황당하지만 매력적으로- 실현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바부의 삶이 우리의 삶처럼 영화 밖에서도 계속된다면 운과 불운은 교차하고 반복될 것이다. 진짜 끝이 올 때까지(그러니까 아마 죽을 때까지). 우리 모두에게 그렇듯 말이다. 그러나 바부가 인생의 기복에 그다지 영향을 받을  같지는 않다. 영화 전체가  바부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퀀스인 셈인데, 여기서 그런 암시나 징후는 찾을  없다. 그녀도 우리처럼 바람이 있다. 그리고  바람을 모두 이룰  있는 존재도 아니다, 우리처럼.  역시 슬픔과 기쁨, 가벼운 우울과 실망을 느끼는 인간이다. 아주 보통의 인간. 그러나 결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범하다. 그녀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초능력이다.


룰렛에서 돈을 따는 건 딸과의 화해나 경제적인 문제 해소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한 싸구려 장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하나의 문이 닫혔다고 해서 인생,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소도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돈을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어처구니없이 -혹은 멋지게- 쓰는지 보면 바부는 그 돈을 전부 잃었다고 해서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데에 설득된다. 다가올 즐거움도 끝이 있을 테고 어쩌면 불운의 시기가 찾아오겠지만, 그녀라면 어떻게든 잘 살아나가겠지, 라는 안도감은 유별 나보이던 바부의 민트색 눈 화장처럼 마음에 밝은 빛을 남긴다.


내가 느낀 이 모든 놀라움은 그녀가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매사에 전전긍긍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일희일비는 나로서는, ‘뜬금없이’, ‘우연히’, ‘뜻밖에’, ‘운과 불운’으로 표현되는, 통제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삶을 그런대로 받아들이는 인물로부터 마치 인생의 비밀을 엿본 것 같았다. 전화위복만 되어도 좋겠지만 아마도 새옹지마일 삶에서 임기응변까지는 안 되더라도 두려움으로 얼어붙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잃을 것이 없는 사람처럼 가볍게, 쉽게, 신나게, 어처구니없게 혹은 매력적으로. 그리고 당신에게도 이 민트의 기운이 전달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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