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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4. 2021

3주. 프로젝트 A(1983)

2019. 07. 21. by 감자

당신이 보내 준 두 편의 글을 보며 인간은(나는?) 참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의 카톡 대화를 다시 보니 ‘베네치아’에 잘 있냐는 나의 질문에 ‘피렌체’에 있다고 정정해 주는 당신의 대답이 정말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는 당신의 휴가지는 베네치아 뿐이라는 생각이 굳게 못 박혀 있었으니, 그나마 조금의 변명이라고 해 보자면 나는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차이점을 방탄소년단과 BTS의 차이점보다도 모르므로, 이와 같은 오류는 무식의 소치일 뿐 아집의 산물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피렌체’에서 한국의 일을 해야 했다니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별 일 아니라고 갈무리할 수 있는 당신의 배포에 다시금 감탄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일요일의 ‘영화’는 일 년 만에 끝이 나겠으나 그다음 시리즈에 대해서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밝힌다. 일요일의 ‘식사’ 라거나, 토요일의 ‘음악’이라거나 평일의 ‘책’이라거나……. 무어든지 즐거울 것이다.


‘코파카바나’의 ‘바부’ 이후에 올 인물이 ‘프로젝트 A’의 ‘마여룡’이라니, 이런 롤러코스터가 있는가 싶을 것이다. 물론 염두에 두지 않고는 있지만, 혹여나 이 글이 출판물로 만들어질 날이 있다면, 편집자분께서 초장부터 글 흐름이 중구난방이라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나는 그 편집자분을 설득할 충분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성룡, 그러니까 재키 찬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남성성의 핵심 같은 인물이다. 그러니 두 여성 영화 다음으로 나오기에는 이보다 더 적절한 인물이 있겠는가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프로젝트 A’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장면들이 ‘폴리스 스토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있는 장면이라면 성룡과 원표가 깜깜한 밤 적진으로 침투하며 피아식별을 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요상한 암호를 정하는 것이니, 그게 ‘프로젝트 스토리’나 ‘폴리스 A’에 나왔다고 해도 별 의심이 들지 않았을 테다.


사실 그게 무슨 영화이든 상관없다. 어떤 영화이건 간에 성룡은 무식할 정도로 온몸을 사용해서 뛰고 도망치고 쫓는다. 유치한 오해를 하고 동료와 다툰다. 그리고 모든 순간에서 그는 그 모든 게 즐겁다는 듯 상쾌한 미소를 짓는다. 얼굴에 땀과 검댕이 그득하여 엉망진창임에도 불구하고 늘 씨익, 흰 이를 드러내고는 웃어버리는 것이다.


그 절대적인 낙천성은 절체절명의 순간 육체의 한계까지 치달아 간신히 생명을 보존하는 순간에도 터져 나온다. 아드레날린이 펑펑 터지고 숨이 턱턱 막히면서 간신히 고비를 넘겼을 때, 폼 잡고 멋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온 얼굴을 다해 웃는 성룡은 높은 정글짐이나 늑목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던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건강하고 해맑은 소년의 이미지로 치환되어 각인된다. 단순하고, 몸을 움직여 기쁨을 얻고, 눈에 보이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결국에는 성공하는 인간. 내가 가진 다양한 인간에 대한 이미지들 중 이러한 ‘건강한 소년’ 상은 가장 바람직한 인물상의 꼭대기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제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인 나를 좀 허탈하게 만든다.


왜 그런 인간은 남자여야 하는 것일까? 왜 나는 그런 밝은 인간을 남성으로 설정해 둔 것일까? 모든 사람에게는 강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 그런데도 그런 태양 같은 에너지를 상상할 때에는 여성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조금 켕기는 기분이 든다. 나는 살아오면서 남자였으면 하고 바란 적이 꽤 있었다. 밝고 건강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여성으로서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남성 선망은 인류의 뿌리 깊은 콤플렉스라고 한다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분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성룡을 떠올리면 또 다른 연상되는 분위기가 있다. 성룡 영화는 내가 국민학생 시절(초등학생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명절날 TV를 틀면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였다. 한국의 많은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안의 명절은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불편한 다툼들을 감내해야 하는 시기였으므로 나는 늘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명절을 보내었다. 어른들끼리 한바탕 욕설이나 주먹다짐이 오가고 난 뒤 시간이 흐르고 그 모든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간 곳 없이 집안에 고여 흐지부지되면 친척이라는 이름의 낯선 사람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입을 꾹 다물고 조그마한 TV를 보았는데, 그때 우리를 웃게 하는 것은 단연 성룡이었다. 그가 눈이 돌아갈 만큼 말도 안 되는 액션을 선보이며 왕주먹코에 코피를 매달고 씨익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제껏 있었던 어른들의 다툼 정도는 애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처참한 명절날에 조금의 웃음이라도 준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겠다.


어릴 때의 나는 성룡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내가 성룡이 아님에 분노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성룡이 되고 싶어 했던 옛날 일을 떠올리니 좀 웃기고 부끄럽다. 하지만 데굴데굴 바닥까지 굴러 떨어져도 일단은 한 번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고 싶었던 성룡이라면, 앞으로도 노력해 봄직한 일이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쿵푸를 배울 수야 없겠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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