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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4. 2021

5주. 미씽: 사라진 여자(2016)

2019. 08. 03. by 감자

오늘따라 도통 글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자체가 번잡스러운 날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가, 영화에 대한 레퍼토리가 벌써 떨어진 건가, 넋 놓고 생각하다가 오늘 날짜를 보고 깨달았다. 아, 월급 직전이구나. 겁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었으나 여전히 월급생활자인 나는 매달 5일을 기준으로 마음이 이지러지고 다시 차오른다. 지금 나의 마음이 어두운 이유는 수백 가지였으나 그 모든 이유는 하나의 근원에서 존재했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유물론적인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러니 마르크스가 위대한 사상가로 정평이 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헤겔 따위 다 엿이나 먹으라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hp가 평소의 절반으로 깎인다. 매일 걷던 길을 걷는 것임에도 돈이 없으면 이상하게 돌멩이를 잘못 밟고 발목이 꺾이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인간의 수호성령은 통장 속 잔액에 따라 그 능력을 발휘한다. 잔액이 0이면 수호성령은 자취를 감추고, 이 광막한 세상에 홀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인간은 가련할 수밖에 없다.


존재의 가냘픔에 떨며 폰뱅킹을 몇 번이고 확인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미씽: 사라진 여자’였다. 이 영화에는 아무런 연고 없이 불쑥 존재했다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스르륵 사라지는 ‘한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한매는 이혼하고 혼자 갓 난 딸 다은이를 키우는 지선의 집에 육아 도우미로 들어온다. 조선족이지만 조용하고 성실한 한매에게 지선은 육아와 살림을 많이 의지한다. 하지만 한매는 어느 날 지선의 딸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지선은 반미치광이가 되어 한매를 찾아 헤매다가 한매의 지독한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한매는 불행한 여자였다. 그 불행은 전형성을 가진다. 중국인인 한매는 어린 나이에 매매혼으로 한국에 와 말이 통하지 않는 시골 가부장 가족에서 끔찍한 고통을 받는다. 한매가 낳은 딸은 선천적으로 간이 나빴고 갓난쟁이임에도 큰 수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매의 남편과 시부모는 한매가 낳은 아이가 아들이 아니기에 수술비를 대지 않으려 한다. 한매는 딸을 살리기 위해 집을 탈출하고 수술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판다. 매춘을 할 뿐만 아니라 장기도 팔기에 ‘몸을 판다’는 표현은 너무나 적확하다. 갖은 고생 후 수술비를 마련하지만 한매의 딸은 수술을 받지 못한다. 이유는 지선과 관계가 되어 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언급을 자제하겠다(라지만 중요한 얘기는 거의 다 했다).


한매의 불행은 돈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노래도 잘하고 성격도 싹싹하고 얼굴도 매력적이고(공효진이니까!) 몸매도 좋은(공효진이니까!2) 한매의 불행은 오직 돈이 없다는 것, 그것에서만 비롯된다. 돈이 있었다면 한국으로 팔려서 결혼 오지 않았을 것이고, 돈이 있었다면 딸의 수술비를 빨리 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돈이 있었다면 제시간에 딸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매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불행은 많은 부분 돈이 없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가난한 사람이 불행한 것은 전형적이지만, 불행의 모양은 그렇지 않다. 원인은 같더라도 그 모든 불행은 제각각의 고통을 가져오고 그 형태 역시 가지각색이다.


지독하게 돈이 없었던 시절은 내게도 있었다. 몇 달치 건강보험료가 밀려서 보험 적용이 되지 않던 때였다. 야금야금 예금을 털어서 생활비를 대기를 몇 달째, 결국 잔고가 바닥을 보이는 날이 온 것이다. 그 날은 너무나 더운 여름이었다. 우리 가족은 유령 같은 얼굴로 절망에 빠져 더러운 땀을 흘리면서 집에 늘어붙어 있었다. 절망의 이유는 물론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우리 가족이 가진 모든 현금은 예금이며 보험금이며 돼지 저금통이며 뭐든 간에 다 긁어모아서 6만 원이 조금 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가족은 현금 전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해운대에 가서 6만 원어치 점심을 사 먹었다. 메뉴는 파스타였는데, 왜 그걸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전에 가족 외식을 할 때는 물망에 올려 본 적도 없는 메뉴였는데 말이다. 아무튼 우리 가족의 모든 현금을 투자한 비싸고 예쁜 파스타는 완성된 지 30분도 되지 않아 뱃속으로 몽땅 사라졌고, 우리는 다시 염천으로 내쫓기듯 나와야 했다.


돈이 없었기에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집은 너무나 더웠다.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럽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돈이 없는 자는 그 어디에도 출입이 허가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길가에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 창문으로 내리쬐는 잔혹한 햇살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나는 카카오 서비스에서 설빙 빙수 하나를 핸드폰 소액결제로 구매했다.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을 최대한 유예하기 위해서. 그 달고 끈적거리던 망고빙수의 맛은 내게 가난이 가져온 지독한 불안과 불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았다.


만약 그때 가족이 없었다면 나는 그 공포를 좀 더 긴박하게, 피부가 한 꺼풀 벗겨진 것 같은 절박함으로 느꼈을 것이다. 가족이 있었기에 충격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서 ‘한매’를 생각하면 그가 느꼈을 허무가 어림잡아진다. 돈이 없는데 가족도 없는 사람. 사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유령이 될 수밖에 없다. 한매가 사라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돈이 없고 가족도 없는데 유령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성인(聖人)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매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가해자로 존재했을 지선을 돌아보면, 한매에게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술에 취하고 피로에 절어 집에 들어온 지선이, 다은이를 안고 있는 한매에게 다가가 모든 긴장이 풀린 얼굴로 “한매애~”하고 어리광을 부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만약 한매가 지선을 용서했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작은 가족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가정을, 해 보는 것이다. 왜 늘 가장 약한 사람이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하느냐는 분노가 곧 뒤따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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