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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6. 2021

27주. 나이브스 아웃(2019)

2020. 01. 12. by 만정

언젠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1974)’에 대해 쓸 생각이었다. 나는 추리물의 팬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고전적인 추리소설이 영화화된 형태를 꽤 즐겼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괴짜 탐정과 화려한 출연진으로 구성된 용의자들, 결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원인, 그 뒤에 자리한 기구한 사연. 이런 고전적 추리 영화의 구성요소들 중에서도 내게 특히 호소력 있는 것은, 살인사건이면서도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 하나 없이 깨끗하고 깔끔하게 개념적으로 연출된다는 점이다. 잔인한 장면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에게는, 그 덕분에 마음 놓고 즐길만한 안전한 환경이 갖춰진다(물론 영화에서 ‘연출된’ 것과 달리, 제대로 상상하자면 말만 들어도 끔찍한 일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그리고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다는 합리성이 나를 안심시킨다. 심지어는 우발적인 사건조차.


뜻밖에 이런 고전적인 영화를 대놓고 재현한 신작을 보게 되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위에 언급한 아가사 크리스티적인 추리 영화의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이야기의 구조부터 그렇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아버지가 숨진  발견된다. 자살인  자살 아닌 자살 같은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과 함께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 죽은 작가의 저택에 파견된다. 저택에는 작가가 죽기 전날 함께 있던 가족과 간호사 마르타가 모이고, 탐정 블랑은 이들을 하나씩 탐문하면서 (영화  탐정 블랑의 용어를 쓰자면) "도넛 구멍을 찾아나간다." 다시 말해, 죽음의 진실을 밝혀나간다.


당연히 블랑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포와로를 닮았다. 탐정의 이름이 왠지 프랑스 느낌을 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블랑을 연기한 다니엘 크레이그에 대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이미지는 007이다. 그냥 007도 아니고 역대 007 중 가장 심각한 007. 그런 그가, 심지어 액션스타의 몸에 어쩌면 섹시할지도 모를 얼굴을 하고 포와로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한다. 물론 포와로처럼 ‘이 멍청이들아, 그게 아니지. 내 말을 들어보렴.’ 하는 식의 지적인 우월감은 영화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지만, 우스꽝스러움에 있어서는 한층 섬세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포와로를 압도할 지경이다. 문제를 푸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용의자들은 물론 동료 경찰들마저 반복적으로 그의 능력을 의심하게 하는 허당미를 풍기고, 때로 무시당한다. 포와로가 외모와 지적 능력 사이의 부조화로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이라면, 블랑의 외모와 행위의 간극으로부터 발생하는 인지적 부조화는 영화 내내 적지 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또한 자신이 쌓아온 진지하고 고독하고 심각한 이미지를 전복하는 이 역할을 다니엘 크레이그가 즐기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왠지 웃음 짓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고전 추리 영화의 형식에 충실하게 ‘말’을 따라간다. 회상 장면이 재현되기도 하지만, 많은 사건과 그 이유, 그리고 궁극적인 진실은 결국 등장인물의 대사로서 설명된다. 나에게는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인데,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은 대사를 넘어선다는-혹은 넘어서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장르를 즐기는 데 있어서만큼은 이 내적 갈등을 마음 한편에 조용히 밀어두는 편이다. 추리라는 것, 즉 현상과 현상을 인과적인 관계로 묶어내는 이 작업은 결국 논리의 일이며, 아마도 논리를 말로 표현하는 쾌감을 내가 유독 크게 느끼기 때문에 부여하는 면죄부일 것이다.


고전 추리 영화의 형식에 뚜렷한 정치적 관점으로 영화만의 고유함을 취한다. 영화는 트럼프적인 보수성향과 이민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죽은 작가의 간호사로 일했던 마르타는 남미에서  이민자이다. 마르타는 현대차를 탄다. 놀고먹으면서 작가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손자가 벤츠를 탄다는 것과 분명 의도적인 대조를 이룬다. 가족들은 마르타를 바로 옆에 두고도 트럼프의  이민정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되도 않는 소리를 한다. 물론 마르타가 불쾌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가족들은 그녀를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작가가 모든 유산을 그녀에게 상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태도를 바꾼다. ‘미국인가족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자기  이방인이 차지했다는  분노한다.  분노 위에서 숨겨져 있던 민낯과 추악함이 표출된다. 영화는 이것을 표현하는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가운데에서도 마르타는 선하고, 명민하며, 놀라울 정도로 용기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극의 구조를 떠나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의 탄생이라고 생각한다.


추리물의 특성상, 오늘은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애써보았다. 그러자니 이야기가 너무 파편화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 조각들이 충분히 흥미로워, 영화까지 길을 이어주었으면 싶은 마음도 있다. 즐길만한 영화이며, 그 끝에 닿게 될 기구한 사연은 아릿한 슬픔과 함께 따뜻함을 전할 것이다. 이 역시, ‘나이브스 아웃’이 내가 좋아하는 요소 혹은 클리셰에 마지막까지 충실했다는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아래 문구로 끝맺고자 한다.


My House

My Rules

My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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