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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6. 2021

29주. 미안해요, 리키(2019)

2020. 01. 19. by 감자

듀나의 영화평에서 이 영화의 원제 'Sorry, we missed you'를 '미안해요, 리키'같은 말랑말랑한 제목으로 번안한 건 거의 기만에 가깝다는 식의 문장을 접하고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어 졌다. 일요일 오전, 부지런하게 움직여 영화관에 가 앉아서 영화의 첫 시작을 보는 순간, 듀나의 그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사실상의 경고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경험자의 경고를 어긴 자가 대개 그렇듯 나는 두 시간 내내 들이밀어지는 노동 계급의 실질적인 고통에 괴로워야 했다. 이건 너무나 리얼한 삶 그 자체라서 굳이 영화라는 매체로 바꿀 필요가 있을지 의아했던 것도 잠시, 나는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몰입에 빠져 리키의 고통스럽지만 평범한 삶 속으로 던져졌다.


상사와의 트러블로 계속된 이직을 겪은 리키는 몸 쓰는 일이라면 말 그대로 안 해 본 일이 없다. 이제는 그만 자신의 사업을 갖고 싶지만 자본이 없어서 방법을 찾던 중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일할 수 있다는 택배업계를 알게 되고 호기롭게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라는 달콤한 꼬임과는 달리 ‘택배 노동자’는 자신의 판단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리키는 물류지점의 강도 높은 스케줄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또한 택배의 위치를 일일이 고객에게 전송하는 작은 태블릿 스캐너(영화에서는 '총'이라는 은어로 불린다)에 꼼짝없이 매여 있다. 2분도 쉴 수 없이 분초를 다투며 긴장상태로 일을 해야 하는데, 노동시간이 무려 하루에 14시간에 일주일 중 엿새를 꼬박 일한다(이건 나랑 똑같은데?).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밴을 빌리거나 자기 밴을 사용해야 하는데, 밴을 대여하면 하루 170 파운드의 수입 중 65 파운드를 사용료로 내야 한다. 리키는 빨리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계약금 천 파운드를 치르고 새 밴을 구입하는데, 이미 집을 얻기 위해 대출을 최대치로 받고 있었던 탓에 간병사 아내의 차를 팔아 계약금을 구하게 된다. 이 모든 결정은 리키라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이름 붙지만 개인의 앞에 서서 선택을 재촉하는 존재는 자본과 합리성으로 뭉친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영화 안에서 자비 없는 매니저의 얼굴로 등장하지만 관객은 알고 있다, 그 매니저 역시 시스템이 맡긴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물론 그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하는 것을 보니 저 자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남기기는 한다.


시스템 안에 속박 된 리키의 삶은 고통으로 점철된다. 택배 수령지에 있는 개에게 엉덩이를 물리는 것은 사소한 촌극이고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서 페트병에 소변을 누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인 리키의 성질을 긁는 뉴캐슬 팬을 고객으로 만나는 것은 차라리 유쾌한 순간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리키는 촌각을 다투는 단순한 업무에 치여 기계처럼 일하지만 진정한 고통은 리키가 사람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가족 안에서 벌어진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 세브는 아버지 리키와 주변인들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계층적 미래를 엿본다. 세브는 성실함을 강조하는 아버지를 비웃으며 일탈을 계속한다. 열심히 살면 아버지처럼 되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죠? 세브는 잔인한 질문으로 리키를 분노하게 하지만 그런 세브가 하는 골몰하는 일 역시 유치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다. 세브는 자신의 분노를 점점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학교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세브의 일탈을 포용해 줄 수 없다. 학교에서 정학을 받은 세브는 집에서 홈스쿨링을 해야 하나 리키의 집에는 세브가 홈스쿨링 수업을 듣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도 없다. 리키의 아내인 애비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의 간병인으로 일하며 고객들에게 ’딸‘처럼 다가가는 것을 철칙으로 삼지만, 그녀의 다정함은 빽빽한 스케줄대로 고객들의 집으로 계속 옮겨가야 하는 일의 특성상 다음 고객들의 불만을 사게 하고 그녀의 근무시간을 계속해서 늘리는 요인이 된다. 심지어 그녀는 아이들을 챙기는 양육자의 역할도 소화해야 한다. 애비가 아무리 참을성이 많고 친절하다 한들 그녀 역시 소모되는 인간이고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24시간뿐이다. 늘 자정이 가까운 시간 쓰러지듯 곯아떨어지는 애비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이 가정의 막내인 라이자는 야무지고 사랑스럽지만 가족의 위기를 접하며 점점 고통에 잠식된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앞 내용을 읽어 보니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 내용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글을 쓰기 때문에 기억이 생생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영화는 자기 스스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관객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며 문제 해결 방법까지 마련하고 있기에 다른 말을 첨언할 필요가 없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구겨지고 점점 더러워지는 리키의 택배조끼나, 깨진 채로 방치된 세브의 치아 같은 디테일들은 리키를 먼 영국에서 창조된 인물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실제 인물로 느끼게 한다.


자본주의의 '효율성'이라는 가치는 개인을 극한으로 착취해 나간다. 영화는 그 사실을 자극적이라고 할 만큼 리얼하게 드러낸다. 최소한의 단체 없이 개인이 혼자서 자본과 시스템을 상대하는 것은 필연적인 패배를 의미하고, 노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기업의 책임과 비용을 줄이는 특수 고용 형태의 일자리는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변하기가 너무나 쉽다는 점을 계속해서 역설한다. 이 영화를 보고 '그러니까 자기가 선택을 잘 했어야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리키의 모든 갈등이 극에 치달아 심장이 떨릴 정도로 절망적이고 공포스러운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버린다. 너무 무섭고 슬프고 어떠한 당의도 주지 않은  이대로 끝나는 영화에 약간의 분노까지 느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엔딩 크레딧마저 1분도  되어 마무리 되고 말았다. 밝아진 영화관에서 온통 젖은 얼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혹해하며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렸는데, 거기에는 부동산 이야기를 하며 빠른 자본 축적 없이는 어두운 미래 뿐이라는 비스트의 메시지가 있었고, 나는 더욱 혼란스러운 채로 영화관을 나서야 했다.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는 택배 기사가 수령인이 수령지에 없을 때 놓고 가는 안내 카드의 문구였다. 나는 그 문구가 이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시스템 밖으로 튕겨나간 개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무서운 문구다. 정말, ‘미안해요, 리키’같은 서정적인 제목은 기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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