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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6. 2021

30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2020. 01. 26. by 만정

일요일 저녁을 먹기도 전 도착한 당신의 반가운 글에서 켄 로치라는 이름을 발견한 나는 얼어붙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듀나의 경고를 떠올리던 당신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본 켄 로치 영화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였는데, 영화가 재현하는 현실이 더없이 명료해서 첨언이 불필요하다는 당신 말을 나는 감히 정확히 이해한다고 말하겠다. 시스템이 만든 비극을 겪어내는 인물들을 직시해야 하는 고통은 몇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다. 반가움과 처절함이라는 나의 분열적인 소감을 짧게라도 밝혀두고 싶었다. “켄 로치와 더불어 영국 리얼리즘 영화의 희망을 짊어진 감독”이라는 마이크 리는 다룰 예정이지만, 켄 로치에 대해서라면 나는 차마 떠올리고 말하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주 월요일 이른 새벽, 그러니까 당신의 ‘캐롤’을 읽었을 때, 우리가 처음으로 같은 영화에서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캐롤’은 내 크리스마스 영화 후보 중 하나였다. 동시에 나는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나이브스 아웃’이 새해 첫 글로서 과연 적합했던가 하는 자문 때문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살인사건 추리물이라니. 물론 충분히 권할 만한 즐거운 영화이기는 하지만, 복된 한 해를 기원하는 당신의 사려 깊음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뒤늦게나마 반성의 마음을 담아, ‘캐롤’과 공통점을 가진 영화로 화답해보기로 했다. 물론 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한 당신의 코멘트를 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름. 고고학자. 바흐.


대체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과연, 나는 저 네 가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다 .


이 요소들은 영화의 중심을 비껴간다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1983년 이탈리아 북부 가족별장에서 또 한 번 지루할 여름이 가기만을 기다리던 열일곱 살 소년 엘리오의 예기치 못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려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게다가 그 첫사랑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아주 특별한 과정이라고, 그는 덧붙일 것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아직 두려움을 모르는 이 아름다운 젊은이는 자신 앞에 나타난 새로운 대상, 무례할 정도로 자신감 넘쳐 보이는 왕성한 젊은 미국인에게 신경 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엘리오의 눈과 감각은 자신도 모르는 새 올리버를 좇는다. 반면 올리버의 태도는 모호하고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엘리오를 유혹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고 한편으로는 그를 밀어내버리는 것만 같다. 아직은 사회적 금기일 뿐 아니라 불법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할 수 없는 이들은 간접적이고 은근한 말로 서로의 의중을 시험한다(행위는 명시적이고 적극적이다). 학생용 백팩을 멘 엘리오가 피아베 동상 앞에서 고백하는 롱테이크를 나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금기이거나 불법이거나 간에 두려움을 모르는 자의 용기는 결국 이 여름의 사랑을 이루고 만다. 두 연인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 마음을 전한다.


그렇다. 이것은 확실히,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첫사랑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영화에서 종종 주연은 ‘인물 수+1’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이 감독 최고작으로 꼽는 ‘아이 엠 러브’는, 틸다 스윈튼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왜곡하거나 숨기지 않은, 희귀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틸다 스윈튼을 위한, 그녀에 의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건 겨울의 밀라노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틸다 스윈튼의 아름다움만큼이나 겨울 밀라노의 아름다움을 너무도 잘 아는 한 감독이, 그것을 꼭 관객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영화라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이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마찬가지여서, 모든 로케이션은 아름다운 티모시 샬라메만큼이나 미모를 뽐낸다. 그러니 그의 영화에서 이탈리아가 부수적이라고 말하기는 왠지 섭섭하다.


그리고 여름. 이 영화의 원제 ‘그해, 여름 손님’은 사실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뻔하다. 그 첫사랑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열기로 들썩이는지를 말하는 데 '여름'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클리셰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여름'과 '이탈리아'가 '여름의 이탈리아'가 되는 순간의 마법을 나는 더없이 사랑한다. 이렇게까지 설명한 후라면, 고고학과 바흐는 우연히 나를 저격한 부수적인 요소라고 해도 불만은 없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관객인 나는 이미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떠들썩한 여름이 끝날 때 예정된 이별은 약속을 지키고, 올리버를 보낸 후 여전한 여름 햇살 아래 무너지는 엘리오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아렸다. 바로 이 시점에서 나는 영화사 상 가장 완벽한 아버지상을 만나게 된다. “사랑처럼 이 아픔도 온전히 느끼라”고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위로와 조언을 건넨다.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무감각해지다가 우리는 서른도 채 되지 않아 상대에게 보여줄 것도 줄 것도 전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부디 그렇게 되지는 말라고. 그 말 뒤에 쿠션처럼 자리한 사랑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여름이 지난 후 엘리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가 그다음 사랑도, 그리고 그다음 사랑도 용기 있게 해냈으리라고 상상하며 안도한다. 실패의 고통과 두려움을 영원히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약간은 지치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된 서른일곱의 우리.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을 펴고 한 걸음을 내딛고 싶어 졌다. 마치 한번도 겪어보지 않아 아직 두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소년처럼 말이다. 한번뿐인 생이 그저 나를 지나쳐가도록 두는 대신 모든 순간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 졌다. 그 순간이 무엇이든. 이제 막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처럼. 혹은 열일곱의 엘리오처럼. 그리고 당신 역시 그렇게 내일과 그 내일을 맞이하길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 아래에 엘리오 아버지처럼 폭신한 사랑의 쿠션을 돈독하게 깔아두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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