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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umal Aug 11. 2020

아침 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의 출근길

7시 13분에 알람이 맞춰져 있다. 10분은 좀 이른 것 같고 15분은 너무 늦은 것 같아 13분이다.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가서 꿀 한 스푼을 먹는다. 기관지와 위에 좋다고 하여 빈속에 때려 넣는다. 그리고 화장실에 간다. 머리를 감는 건 참 귀찮은 일이다. 샴푸는 두피에 좋다는 걸 애용하는데 주기적으로 바꾼다. 좋은 것에도 면역력이란 게 생기는지 금세 효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젖은 머리는 수건으로 말리다가 드라이기를 이용한다. 겨울에는 괜찮은데 여름철엔 곤욕스럽다. 때로는 선풍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곱슬머리인 경우 선풍기로 말리면 난리가 난다더라. 나는 곱슬은 아니고 직모라서, 역시나 난리가 난다. 머리카락은 참 예민하다(재수 없지만 빠지진 말아주라).


머리를 말리고 나서 밤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나 휴대폰을 확인한다. 날씨도 체크하지만 크게 믿진 않는다. 기상청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믿을 건 나 자신과 운명뿐.


이후 아침 식사를 한다. 부모님에게 빌붙어 사는 중이라 어머니가 아침밥을 챙겨 주신다. 그렇다고 거하게 먹진 않는다. 나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 있는 반찬에 밥만 떠서 먹는다. 엄마는 늘 “반찬 더 줄까?”라고 묻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몇 년간 지속된 대화 패턴으로 엄마의 물음이 빈말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출근 복장은 단출하다. 대개 청바지에 티셔츠. 첫 출근 후 며칠은 좀 차려입는 척을 했으나 대표님께서 편하게 입으라 하셔서 정말 편하게 입기 시작했다. 엄마가 간혹 내게 “그러고 가냐”라고 물으시긴 하는데 아직도 그러고 간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진 걸어간다. 어릴 때는 아파트 광고에서 역세권이라는 말을 왜 그리 강조하는지 몰랐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됐다. 물론 더 큰 축복은 자차가 있는 이들이려나. 그러나 자차는커녕 면허도 없는 1인으로서 역세권의 축복에 탄복할 뿐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1호선을 탄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노선 중 가장 역사가 깊은 노선이다. ‘역사가 깊다’는 말은 ‘오래됐다’는 말을 있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오래됐다’는 말은 ‘낙후됐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역사가 깊지만 오래되어 낙후된 1호선을 타고 회사로 향한다. 그리고 건물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과 카페에 들른다. 초콜릿이나 과자를 사는 건 출근길의 소소한 재미다. 편의점에서는 몇천 원씩 자주 쓰는 편이다. 금요일 퇴근길에는 주말 동안 밖으로 안 나올 거를 대비해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기도 한다. 카드결제를 하면 휴대폰으로 문자가 오고, 그 문자가 가계부 앱과 연동된다. 문득 가계부를 살펴보다가 한 달 식비 중 50% 이상이 편의점과 카페에서 빠져나가고 있단 걸 깨달은 적이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그렇게 회사에 도착한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럴 텐데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이라 다행스럽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일과를 시작한다(PC카톡을 켠다). 출근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오는 편인데 보통 그 시간에 업무 준비를 한다(실시간 검색어를 훑는다). 출근길에 사 온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58분, 59분.


그리고 9시. 또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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