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르는 사회에서 터부시 되어 온 영역을 대중으로 하여금 안전하게 행할 수 있는 가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 없이 안전하게 호기심을 충족시킨다고 할 때, 범죄사건과 사회로부터 일탈된 인물 군상들을 다루는 스릴러 영화의 인기는 억압되었던 욕망, 분출구를 찾지 못했던 분노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빛나 <스릴러 영화의 내러티브를 통한 한국인의 현실인식 고찰>에서 발췌
내가 요즘 왜 이렇게 전에는 1분도 버티기 힘들어했던 공포, 스릴러 영화를 홀린 듯 보고 싶어 하는지 나 자신도 스스로가 이해가 안돼서 찾아보았더니 뭔가 일리 있는 주장이다.
분노와 스트레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쌓이고 있었던 건가... 어쨌든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를 보고
그의 프리퀄에 해당한다는 미드 '베이츠 모텔'을 보고 있다.
가만 보면 스릴러에서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품은 비운의 인물이 항상 등장한다.
그들의 꼬이고 꼬인 인생은 결국 새로운 시작은커녕
더 깊고 깊은 늪으로 발을 잡아끄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죄를 짓고 그 죄를 덮기 위해 더 큰 죄를 짓고...
이게 마지막이야, 하지만 꼭 마지막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사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하얀 도화지 같던 시절로의 회귀 혹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의 새 출발은
사실 우리가 불평하면서 꾸역꾸역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 다름 아니다.
"이제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가 스릴러 주인공들의 자기 위안이라면
"이제 내 인생에도 뭔가 일어날 거야. 그럴 때가 되었어."
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자기 위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