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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morning Oct 03. 2015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에게

첫 번째 편지

연락도 없이 며칠 동안 사라졌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조금 바빴다며 웃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둘이 만날 때 자꾸 누굴 부르려 하고 마지못해 대꾸를 하고 딴생각에 마냥 잠겨 있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늦은 밤중에 보고 싶다 전화 와서 달려 나가면 그냥 나의 품에 안겨 한참 울면서 끝내 아무 말이 없다가 참 미안하다고 늘 고맙다는 그건 어쩌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김동률 -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세상엔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더라. 기침, 가난 그리고 사랑.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더 눈에 띄는 거라고도 하더라.  꽁꽁 숨기려다 오히려 더 내 사랑을  주책없이 네게 엎질러버리던 나와, 숨길 마음이 애초에 없었던 너였더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수백 가지 증거들이 있었을 텐데도 애써 다 무시하고 너도 나를 몰래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심증 하나로 버티고 있었더라. 내가 그렇게 미련한 사람이었더라.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진심이 실려서 자꾸  무거워지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네 말들이 다 같은 무게로 와 닿았어. 네가 웃으며 잘도 하던 그 보고 싶다는 말은, 있잖아, 나에겐 , 너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꾹꾹 눌러담기를 여러 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서성이기를 여러 번, 그래도 그 마음이 다 눌러지지 않아 도저히 못 견디겠을 때, 이러다간 도저히 사람이 살 수가 없을 것 같을 때 겨우 한 번 객혈하듯이 힘겹게 토해내던 그런 말이었어.  그렇게 너에겐 한없이 쉬운 일들이 나에겐 너무 어려워져 가는 거더라, 너를 혼자 사랑하는 일이란... 네 침묵이 상처가 되고, 네 웃음도 상처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의 모든 것이 내겐 상처가 되고 있더라.  깜깜하던 내 마음에 등불 켠 것처럼 환해지는게 사랑인 줄만 알았는데 나를 끌고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그런 것이기도 하더라.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 오늘도 너에게 응답받지 못한 내 사랑의 귀퉁이를 조금 접었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네 앞에 정신없이 펼쳐놓은 이 사랑은 나만이, 차곡차곡 접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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