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안되면 기록하라.
"당신을 좋아해요.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요?
같이 점심을 먹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출근이 신나는 회계사가 됐어요.
회계사한테 그런 일은 안 일어나요.
다른 회계사들한테 확인해 봤어요."
영화 보다가. 귀여운 대사라 메모.
무슨 영화인지를 메모하지 않은 것이 함정.
얼마 전부터 의식적으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내 일상에 반비례하여 내 기억력이라는 것은 점점 형편 없어진다는 사실을 비로소 힘들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어릴 땐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잘 기억하는 내가 싫었다.
한 번 이름을 들으면
한 번 물건의 위치를 기억하면
한 번 누가 하는 말을 들으면.
불쑥 말해서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게 싫었다.
요즘은 기억 못하는 내가 낯설다.
뻔히 얼마 전에 이야기했던 사람도 기억 못하고
내가 했던 말도 상대가 했던 말도 기억 못하는 내가 낯설다.
업무에 시달리고 바쁜 일상에 허덕이고 감당해야 할 것들, 고로 기억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나는 것들이 늘어나게 된 탓이기도 하겠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을 무관심하게 흘리기 시작했다는 증거도 되겠지.
그러니 내게 메모하는 습관, 기록하는 습관은 그나마 나의 일상들이 무의미하게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둑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