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보약이 맞다. 정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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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게 개운한 잠을 잔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창업 후 8년여의 시간 동안 내게 잠은 늘 부족하고 아련한 대상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것은 개나 줘야 했다. 게다가 사업을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심지어 목표를 달성해도 또 그 다음 목표를 위한 숨 막히는 과업이 쉴 틈 없이 찾아오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유난히 그 무게감이 버겁고 힘든 날이면 늦은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워서도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혀 무척이나 오랜 시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보통은 주말에도 일을 끊을 수가 없지만, 피로감이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주말에는 마음먹고 늦잠을 자보기도 했지만, 일어난 직후에는 개운함을 살짝 느끼다가도 오후만 되면 벌써 다시 피곤함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평일 중의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서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은 열에 일곱은 있는 흔한 일이었고, 또 사실이기도 했다.
만성 중증 피로감이 이어지는 삶을 힘들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창업가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고, 또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더 많이 일하고 더 잠을 적게 잘 수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매체 인터뷰 등에서 ‘주로 몇 시에 일어나느냐’는 질문에 평소 기상 시간보다 1시간 더 이른 시간으로 답한 적도 있다. 다른 회사의 대표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누군가 평균적인 시간보다 늦은 기상 시간을 말하면 게으르다거나, 설렁설렁 일하는 이미지로 겹쳐 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하지 못한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은 비단 나만의 개인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선진국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3명 중 2명은 세계 보건기구와 미국 국립 수면 재단이 규정한 하룻밤 권장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은 ‘수면 시간이 적은 나라’ 1,2위를 항상 다투고 있다.(2012년 OECD 조사에서는 1분 차이로 숙적 일본을 꺾고 한국이 1위에 올랐다.) 또 다른 자료를 보면, 권고 수면 시간을 8시간이 아닌 7시간으로 기준을 삼았음에도, 7시간 미만으로 수면을 취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조사한 결과, 영국이 39%, 미국이 65%, 일본이 66%로, 두 명중 한 명 꼴로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면 부족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지만, 수면 부족으로 인해 뇌와 신체에 야기되는 수많은 병적인 현상들은 이미 더 이상 이견이 없을 정도로 검증되었다. 해당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기네스북은 더 이상 수면 시간 단축 세계 기록을 기록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정도다. 게다가 수면 부족은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자동차 사고 건수에 있어서, 음주와 약물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건수를 다 합쳐도 졸음운전에 못 미친다는 사실에서 수면 부족은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이르니, 세계 보건기구(WHO)가 수면 부족을 선진국 전체의 유행병이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중에서도 수면 부족으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력, 사리 분별, 학습 능력, 스트레스 조절, 팀워크 능력, 건강 관리 등에 있어 지장이 생겨 본인과 회사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창업가들에게는 먼 미래의 암이나 당뇨병과 같은 문제보다도 더 피부로 느껴지는 위협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학습, 기억 등과 관련된 뇌세포들이 파괴되었고 관련 뇌 부위가 물리적으로도 쪼그라들었다. 몸이 지치는 속도 역시 10-30퍼센트 정도 더 빨라졌다. 더욱이, 수면 부족이 너무나 오래 일상화되면 몸이 생산성이 저하가 된 상태를 기준점으로 인식하게 되어 지금의 생산성이 ‘이미 상당히 저하된 생산성의 상태’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더 심각한 사실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평일에 잠을 적게 자도 주말에 몰아자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수면은 절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에게 10일 동안 6시간을 수면하게 하고 3일간 마음껏 자게 하는 실험의 결과, 이런 식으로는 규칙적으로 매일 8시간씩 자던 때의 수행 능력까지 회복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수면은 부족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족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야 정상화된다. 비유적으로는 잠에 진 빚에는 이자가 붙는다고 하여, ‘수면 부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수면 시간보다 40분 정도 부족하게 자는 사람의 경우, 이 수면 부채를 다 갚기 위해서는 약 3-4주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기간 동안 매일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지 못할 때까지 자야만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수면 부채로 인한 피로감이 사라지는 것일 뿐, 뒤에서 언급될, 수면 부채로 인해 파생되는 면역력 문제 등은 회복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미국의 기업 및 정부 조직들 중에는 수면 부족의 위험성과 생산성 저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치를 취한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구글과 같은 몇몇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낮잠 허용 정책을 가지고 있거나, 낮잠을 편히 잘 수 있는 기기나 전용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 비행사들의 수면 문제로 인해 컨디션이 떨어져 조작 실수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30만 달러를 들여 전용 전구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번 장에서는 잠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개인의 생산성의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이러한 매커니즘을 바탕으로, 제거해야 하거나 개선해야 하는 수면 습관들, 그리고 더 나은 수면을 위한 방법들을 제시할 예정이다. 매일매일 보내고 있는 스스로의 수면 시간, 또는 수면에 대한 본인의 생각들과 대비해 살펴본다면 더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