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당 하나만 주의해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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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스타트업의 대표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창업을 하고 한동안은 무급으로 일했다. 50만 원 정도 되는 돈이나마 처음으로 월급으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창업을 시작하고 거의 4년 차가 되었을 무렵이었다.(늦어도 많이 늦었다.) 그때까지 나의 삶은 시간제 단기 일자리-아르바이트가 지탱해 주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도 선택지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보통의 업무 시간인 오전과 오후는 업무 관련한 미팅이나 발표 등이 있을 수 있어, 주로 새벽이나 이른 아침, 저녁, 주말에 하는 일자리여야 했다. 콘서트나 축제 같은 행사에서 음식을 파는 가판이나, 호텔 뷔페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서빙하는 일도 일당으로 했다. 의전이나 치전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원의 교실 한가운데서 온라인으로 올라갈 영상을 촬영하는 촬영 기사 일을 하기도 했는데, 알바를 하러 갈 때마다 다른 내 또래의 대학생들은 의사가 되기 위해 이렇게 공부하고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기도 해서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녹화를 하러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 알바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녹즙 배달 알바였다. 야채나 과일들을 짜서 만든 녹즙 주스를 매일 새벽마다 배달 지역의 지점에 가서 받아서 배달을 하는 일이었는데, 배달부들에게는 중고 자전거가 이동 수단으로 주어졌다. 내가 배달을 맡았던 지역은 봉천동이었다. 서울대입구역에서부터 서울대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길의 골목들을 돌며 배달을 했는데, 배달하는 개수만큼 돈을 더 받을 수 있어서 영업 사원의 역할도 같이 하곤 했다. 그럴 때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건 장에 좋고, 저건 위에 좋고, 이걸 마시면 간이 좋아진다는 등의, 지점에서 알려준 메뉴얼대로 제품 소개를 했다. 특히 내가 배달하는 지역에는 대형 구두 브랜드의 공장이 있었는데, 굉장히 약품 냄새가 강한 환경이다 보니 들어갈 때마다 힘들기도 했지만 영업 성과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구두를 만드시는 분들도 스스로 이 환경이 결코 건강에 좋지 않겠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건강을 챙기려는 니즈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분들께 참 죄송하다. 사실 착즙 주스는 건강에 있어 의미 있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일본의 당뇨병 전문의 마키타 젠지에 따르면, 생화학의 관점에서 인간이 입에 넣어서는 안 될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예가 캔커피와 주스라고 말한다. 바로 앞 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캔커피 못지않게 주스에도 당이 많고 흡수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마시는 순간 혈당이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든다. 그로 인해 생산성이 확연히 떨어지게 되는 매커니즘은 앞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런 주스’와는 다르다고 인식된 주스가 있었으니, 클렌징 주스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과일/야채 주스는 제시카 알바, 기네스 펠트로, 미란다 커와 같은 할리우드 셀럽들이 마신다고 알려지면서, 해독 주스, 디톡스 주스, 클렌징 주스 등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주스는 설탕 등이 많이 들어 있어서 건강에 좋지 않지만, 클렌징 주스는 100% 과일과 야채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건강에 좋고, 몸의 독소를 빼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설탕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에는 설탕과 같은 당이 있는가 하면, 과당이라고 해서 과일에 들어있는 과당도 존재한다. 어떤 종류의 당인가에 상관없이 효과는 대동소이하다. 원래 과일에 있던 당에 설탕까지 더했던 것에서 설탕을 뺏으니 그래도 좋은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기존의 주스는 진짜 과일을 넣는 것이 아니라 과일 맛을 내는 인공 화학물 같은 것을 넣는 방식이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2018년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판 중인 해독 주스, 클렌징 주스 17종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일반 오렌지 주스에 비해 해독 주스, 클렌징 주스가 평균 당 함량이 무려 2-30%나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열대 기후의 나라들에 여행을 가보면, 길거리에서 바로 오렌지를 짜서 주스를 만들어주는 가판상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값도 싸고 신선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 컵의 주스를 만들기 위해 커다란 오렌지를 여러 개를 짜서 만들기에 그만큼 높은 당분과 열량을 자랑한다. 같은 양이라도 갈아서 먹게 될 경우 그냥 씹어 먹을 때보다 당 지수가 몇 배나 더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당근의 경우 생 당근은 당 지수가 16인데 비해, 당근즙의 당 지수는 60에 육박한다. 과일에는 과당 말고도 몸에 필요한 다양한 영양소가 있어서 일정량을 섭취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씹어서 먹으면 한 개로 충분할 것을 굳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마셔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의사들도 한결같이, 굳이 마신다면 작은 컵으로 한 컵 정도(110g)는 적당하지만 그 이상 마시는 것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과일을 그대로 착즙을 하든, 갈든, 삶든 별반 다르지 않다. 과일과 채소를 삶고 익혀서 갈아 마시는 경우에는 생 채소에 비해 몇 배는 높은 흡수율을 보여서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당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독의 효과라도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의학계의 검증된 대답이다. 아주 미세하게 작용하기는 하지만 극도로 미세하기에, 해독이라고 말할 만큼 영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은콩 먹으면 탈모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가 체내의 중금속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것도 실상은 중금속 등에 오염된 음식물을 해조류와 같이 먹었을 때 해당 중금속이 신체에 흡수되는 흡수율을 줄여준다는 것일 뿐, 이미 체내에 축적되고 흡수된 독성 물질을 빼낼 수 있는 효과를 가진 음식은 없다. 그럼에도 많은 회사들이 설탕 무첨가라는 이름으로(설탕 없이 액상 과당을 넣어도 설탕 무첨가라고 마케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반 주스보다 1.5배에서 3배까지 비싼 프리미엄을 얹어서 팔아왔다.(더 살찌고, 더 생산성이 떨어지고, 해독도 안되는데!)
조금씩 정확한 정보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2004년부터 해서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해독 주스 가게들과 주스바들은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가게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는 여전히 설탕을 넣은 주스, 설탕을 넣지 않았지만 액상 과당을 넣은 주스, 과당이 많은 주스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당신이 당신의 창업에 영혼을 걸고 임하고 있다면, 그런 주스는 가급적 마시지 말자. 사업에 영혼은 갈아 넣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주스를 갈아 마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는 것에 비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