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당 하나만 주의해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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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스타트업 대표님들 중에 물을 꼭 챙겨 드시는 분들이 계시다. 심지어 어떤 대표님은 2L짜리 물통을 항상 들고 다니시기도 하셨다. 아침에 2L를 채워 나와서 자기 전까지 그 통을 비운다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굉장히 의식적으로 수분 섭취를 신경 쓰셨다. 하루에 2L의 물을 챙겨 마셔야 한다면서 그래야 피부도 좋아지고 장 건강도 좋아지고, 일하면서 몸이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 의미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실제로 피부가 광이 날 정도로 좋으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루에 2L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의학 미신 중 하나다.
그 미신은 ‘하루에 8잔의 물을 마셔라’라는 문장으로도 우리 주변에 스며들어 있다. 사실 그 대표님 말고도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이런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믿음의 근원은 잘못된 기사 보도에 있다. 1945년 미국의 국립 식품영향위원회에서 하루에 성인 여자는 약 2L, 성인 남자는 2.5L 정도의 물을 섭취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는데 여러 미디어에서 이 지침을 ‘제한적으로’ 인용하면서 잘못된 지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 몸에서 땀이나 소변 등등으로 인해 배출되는 수분이 그 정도나 되기 때문에 ‘그만큼’의 물을 열심히 섭취해 주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지침의 뒷부분에 ‘하지만 우리 몸에 필요한 수분은 대부분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들을 통해 충분히 몸에 공급된다’는 문장이 있음에도 이 부분은 생략된 채 ‘하루에 2L의 물을 마셔라’라고만 전달된 것이다. 1974년에 출간된 <Nutrition for Good Health>에서도 하루에 6-8잔의 물을 마시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들로 그 수분량을 대부분 채울 수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해당 기사를 쓴 저널의 기자는 해당 기사의 사실 관계가 잘못되었다며 정정 보도를 내기도 했지만 이미 너무나 빠르게 일상적인 지식(또는 믿음)으로 퍼진 탓에 2018년에 뉴욕 타임스에서는 ‘No, You do not have to drink 8 glasses of water a day’(없다. 하루에 8잔의 물을 마실 필요가 정말 없다.)’라는 제목으로 또 한 번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BBC에서도, 널리 알려진 강력한 의학 미신 중 하나로 ‘하루 2L의 물 섭취’를 언급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식이 된 잘못된 지식을 그대로 믿으며, 기대하는 효과도 없을 ‘추가적인’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한 때, 이러한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500ml짜리 물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에 4번 꼬박꼬박 챙겨 마시던 때가 있었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물을 챙겨서 마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루 종일 은연중에 마셔야 하는 물을 의식하는 데에 에너지가 쓰이기도 하고, 실제로 입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도 쉽지 않다. 일에만 온전히 집중해도 바쁘고 에너지가 부족할 창업가가 이렇게 에너지를 쓰는 것은 낭비다.(더 나아가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몸 안의 혈액이 묽어져 두통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몸에 수분이 적으면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수분은 신체의 6-70%나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서 조금만 부족해도 몸의 여러 부분에서 부작용이 생긴다. 장 기능이 저해되기도 하고, 만성 피로감도 찾아오게 된다. 생산성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평소보다 1%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이 나고,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수분이 부족할 때 생기는 증상이지, 더 많이 섭취한다고 해서 피부가 좋아지고, 장 기능이 좋아지고, 피로감이 사라지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많이 마신다고 해서 부족할 때 문제가 생기는 요소들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피부가 좋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고 답변하는 때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과 피부의 관계에 관한 실험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몇몇 연구에서도 수분 섭취를 추가적으로 한다고 해서 피부 주름이나 매끈함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피부 탄력과 관련해서 차이가 나긴 했지만 이 역시도 수분이 부족한 경우에 드러난 결과일 뿐, 하루에 8컵의 물을 더 마신다고 해서 더 탱탱한 피부가 되지는 않는다.(그 연예인들은 그냥 원래 피부가 좋거나 비싼 피부 케어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만 섭취하고 물은 하나도 안 마셔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운동을 하거나, 날씨가 덥고 습한 지역이나 기후에 살거나, 장 기능에 특히 문제가 있다거나 하면 의식적으로 평소보다는 조금 더 물을 마실 필요는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분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만성 피로감이 찾아오기 때문에 수분이 부족하지 않게 신경 쓸 필요는 있다. 생산성에 +는 아니지만 -의 효과를 주는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얼마나 마셔야 할까? 이 역시도 사람 마다도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모든 의사들의 답은 결국 ‘목이 마를 때 마셔라’로 귀결된다. 우리 몸은 수분에 굉장히 민감해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마시도록 몸에 신호를 주는 체계가 잘 잡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식사할 때마다 한 컵의 물을 같이 마시는 정도로 챙기고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2L짜리 (마치 아령과 같은 느낌의) 물통을 챙겨 다니시는 그 대표님이 이 책을 보신다면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라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