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 관한 (이상한) 단상
투자 :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정성을 쏟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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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고 싶지 않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의 가장 쉽고도 어리석은 핑계. 나는 올해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많은 기회를 놓쳤다. 언제나처럼 대부분의 아쉬움은 내가 버린 선택지 위에 있다.
2_
난 이기적이다. 오늘도 나는 그 사실을 열심히 숨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극단적인 이기심과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구별해야 한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이기심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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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투자는 이익을 위한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라는 단어에 손해라는 말이 쉬이 연상되는 것은, 모든 투자가 이익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많은 투자가 손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쉽게, 실패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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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하지 않았는데 차인 기분이에요." 학창 시절, 어떤 후배가 내게 말했다. 나는 반대로 고백을 받지 않았지만 거절한 기분이었기에, 그의 표현이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벌써 그 대화를 잊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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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 투자 방법을 아시나요?" 몇 해 전, 아트페어에서 한 도슨트가 말했다. "바로 좋아하는 그림을 사는 거예요." 돈이 될 것 같은 작품이 아니라, 소장하고 싶은 것을 고르라는 조언. 그러나 그날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이 작가를 꼭 눈여겨보셔야 해요"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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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가 좋았다. 주식이라는 것을 해볼까, 생각하는 나의 귓가에 불현듯 도슨트의 목소리가 스쳤다. "좋아하는 그림을 사세요." 그렇게 모나미를 샀다. 한동안 조금 올랐다. 더 샀다. 어느 순간 조금 떨어졌다. 더 많이 샀다. 이후 꾸준히 떨어졌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냥 계속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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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는 내 마음을 모를 텐데. 고백하지 않았는데 차인 기분. 모나미를 잊고 살기로 했다. 내일 갑자기 망할 회사같진 않으니, 언젠가 올라오겠지. 애초에 모나미로 한몫을 챙길 마음은 없었다. 모나미, 이름처럼 나와 친구라도 되기 위해선 꼭 회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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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재팬 물결이 거세지던 어느 날. 오랜만에 모나미의 안부를 확인하려고 주식 앱을 켰다. 며칠 새 나의 평균매입가에 근접할 정도로 폭등한 모나미.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검색해보니,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반사이익으로 매출이 5배나 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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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실시간으로 모나미의 주가를 확인하다가,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모두 팔아치웠다. 얼마 뒤, 궁금한 마음에 다시 차트를 열어보니 내가 팔았던 가격에서 다시 2배 뛰어오른 모나미. 나를 차버린 모나미한테 갑자기 모바일청첩장을 받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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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널 만나지 않았다면, 혹시 우리 헤어지지 않았다면. 가장 의미 없는 가설은 흘러간 기회와 선택에 대한 것이다. 그때 우리가 만나고 헤어졌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다른 하루를 산다. 손실을 남긴 투자라도 쉽게, 실패라고 부르면 안 된다. 무언가 남긴 것은 실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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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의 맹장 터진 이야기를 읽더니, 자기애가 깊은 사람 같다 말했다. 아마도 올해 내가 들은 최고의 위로가 아닐까 싶다. 아등바등 매일을 살다가 속절없이 장기를 잃어버린 나의 일기에서 사랑을 읽다니. 적어도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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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고 싶지 않다. 아마 새해에도 그러한 마음에 많은 기회를 놓칠 것이다. 그래도 몇 번의 기회는 잡고 싶다. 멍청한 투자로 큰 손실을 낳을지언정, 올해보다는 아쉬움을 덜 남기고 싶다. 조금 더 나은 투자를 위해 나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