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식스에 가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
내가 서울에서 제일 좋아했던 공간 중 하나, 합정 메세나폴리스 맞은편 건물에 있는 교보문고 합정점이다.
서점이라는 게 으레 쇼핑몰 안의 한 구획을 통째로 뗴어서 만들게 마련인데, 이 곳은 특이하게 '예움'과 '키움'이라는 두 개의 작은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각 구획을 이동하려면 복도 한 면 정도는 걸어야 한다. 이 중 '키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교보문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예움'이 특별하다. 예술과 디자인,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 그래픽 노블 등 다른 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가득 진열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메세나폴리스 자체에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데다가, 일반서적을 확 줄이고 예술과 디자인 관련 서적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이 과연 잘 먹힐까 걱정은 좀 됐다. 그래도 갈 때마다 즐거워지는 공간이었다. 원서 종류도 많아서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다양한 언어로 된 책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있다. 세상에는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 저 책 만지다 보면 시간이 참 놀랍게 갔다.
부디 이 곳이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라며 합정 인근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어 들르곤 했고, 나오는 길에는 당연한 것처럼 동화책 몇 권 정도 손에 들고 있었다.
이 교보문고 합정점 오픈과 정말 유사한 시기에, 유사한 컨셉의 서점이 도쿄 긴자 한복판에도 오픈을 했다. 긴자식스의 츠타야서점이다.
도쿄에 놀러오는 친구들이 어디선가 긴자식스 이야기를 듣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하는데, 음. 시간이 어지간히 있는 게 아니라면, 솔직히 좀 말리고 싶다. 쇼핑몰 내부 인테리어가 참 예쁘고 쇼핑 예산을 넉넉히 준비해가지고 왔다면 물론 둘러볼 만 하겠으나, 전체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브랜드들이 입주해 있고 먹을거리도 마찬가지로 가격대가 꽤 된다. 대부분의 반응은 '막상 가 보니 살 게 없더라'였다.
그런 긴자식스지만, 6층의 츠타야서점만은 추천한다. 츠타야 다이칸야마 본점이 츠타야의 본래 컨셉을 잘 구현하고 있고,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장서들을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잘 분류해놓고 있어 구경할 만 하다면, 긴자식스 지점은 훨씬 규모가 작지만 아주 명확한 매력포인트를 가진 우아한 공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긴자식스 지점의 소개문구를 옮겨본다.
츠타야서점 긴자식스 지점은 책을 연결점으로 삼아 예술과 일본문화를 연결하는, '예술이 있는 삶'을 제안합니다. 예술을 감상하고, 예술에 대한 책을 넘겨보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범접하기 어려운 가격대 브랜드들을 구경하다 지친 상태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서자 마자 츠타야서점 특유의 은은하고 세련된 색감이 반겨준다. 여느 지점과 마찬가지로 서점과의 경계가 모호한 멋진 스타벅스가 있어서, 북카페처럼 일부 서적과 잡지를 가져다 읽을 수 있다. 사실 내게 잡지는 사서 읽자면 애매하고, 그래도 표지를 보면 내용이 궁금하기도 한 애매한 읽을거리라 이런 곳에 오면 으레 잡지책을 꺼내읽곤 한다.
굳이 교보문고 합정과 츠타야서점 긴자식스 지점을 비교하자면 눈에 띄는 점은 공간의 배치다. 츠타야서점은 (다른 지점도 비슷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서점의 공간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교보문고는 어느 지점이나 대충 비슷하게 생겼다.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있고, 각 섹션은 벽면진열대(잘 안 팔리는 책)와 중앙진열대(잘 팔리는, 또는 잘 팔려야 하는 책)로 구성된다. 중앙진열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벽면진열대와 중앙진열대 사이에는 상당한 여유공간이 있다. 각 섹션의 공간이 거의 동일한 모양으로 복제되어 전체 서점을 구성한다. 콘텐츠 면에서는 참 특별하게 느껴지는 합정점인데, 안타깝게도 공간 면에서는 기존 교보문고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반면 츠타야서점은 벽면진열대와 중앙진열대가 일정 비율로 공간을 나눠먹지 않는다. 뭐 당연히 중앙진열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교보문고처럼 벽면-중앙-벽면-중앙 으로 이어지는 일률적인 구성이 아니고, 다채롭게 꾸며진 공간 속 하나의 구성요소로 녹아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미로같다.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와닿는 구성이 아니다.
높낮이가 다른 책꽃이를 가로세로 촘촘하게 배열을 했고, 각 책꽂이는 모양이 똑같으니까 처음에는 이 곳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히는데만도 시간이 좀 걸렸다. 나름 어느 길로 잘 빠져나가면 디자인 문구류 코너나 광장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스타벅스도 있고. 그러니까 아주 단순한 구조는 아니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제목만 듣고 늘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책이 있는데, <꿈꾸는 책들의 도시>다. 이 곳을 헤매고 있자면 그 책 제목이 생각난다.
위 사진의 좁은 문처럼 생긴 공간을 걸어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방에 발을 들일 때,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급격히 공간이 바뀌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벽면진열대라면 모든 책이 등을 보이며 한 방향으로 꽂혀있어야 할 것 같은데, 조금 더 주목해줬으면 좋겠는 책들은 표지가 보이도록 돌려놓거나 했다. 물론 이게 가능한 이유는, 츠타야서점의 경우 출판사별로 또는 가나다별로 배치한 게 아니라 각각의 책꽂이마다 나름의 테마로 엮여있기 때문이겠다.
한편 중앙에는 광장이 있는데, 주말이 되면 브랜드 홍보 행사를 나오기도 하고 책 발매 기념으로 작가를 초청해 토크쇼를 하는 등 여러 이벤트를 하니 어쩌면 의외의 만남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책이라는 게, 문자 '언어'로 소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라면 이 곳이 별로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만 해도 일본어로 읽는 게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이 곳에서 일본어를 더 잘했더라면, 생각하곤 한다.
그래도 서점 자체를 좋아한다면, 또 예술 자체를 좋아한다면 언어를 떠나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서점 한켠에는 여러 디자인 제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주석으로 된 텀블러라든가, 위 사진처럼 특이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벽시계라든가, 일본의 전통이 묻어나는 나무젓가락이나 부채류 등. 오미야게로 가볍게 집어들기에는 하나같이 가격대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비싼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고 이유를 찾아가며 구경하는 재미는 있다.
서울의 교보문고 합정점을 좋아했던 분이라면 도쿄에서는 꼭 한 번쯤 츠타야서점 긴자식스 지점에 오셔서, 필자와 함께 그 서점의 뭔가 특별한 점을 발견해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