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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l 21. 2018

매일 1만 보, 보행자의 천국에 산다는 것

어떤 도시에 사는지에 따라 더 많이 움직이게 될까?

최근에 잠시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보낸 5일 간 가족여행도 가고,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밀린 볼일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등 평소 일상에서보다 훨씬 많이 움직여야 했는데, 막상 스마트폰에 쌓인 활동 데이터는 참담했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하루 걸음수가 평균 6천보도 안 됐던 것이다. 참고로 나는 서울에서나 도쿄에서나 운전은 거의 하지 않고, 같은 뚜벅이로서 내가 도쿄에서 보낸 지난 몇 개월 간의 평균치는 9천5백보다.


생각해보면 똑같이 10분 거리라도, 도쿄에서는 걸어다닐 걸 서울에서는 버스나 택시를 타는 일이 잦다. 택시비가 훨씬 저렴하다는 것도 약간의 고려사항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서울에서는 그다지 걷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가 크다. 당장 거리에서 차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롯본기 뒷골목. 상하행 각 1차선뿐이다. 도쿄에는 생각보다 이런 길이 많다. 일부 중심가를 제외하면 2차선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잘 없다. 그만큼 소음도 매연도 적다


서울에 위 사진 같은 길이 얼마나 있던가? 요즘 힙하다는 망원동, 익선동 같은 골목길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도쿄 도심을 걷다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차로와 보도의 비율이 이 정도는 되어야 보행자가 걸을맛이 난다. 소음도 매연도 적고, 이런 길에서는 자동차가 그렇게 속력을 낼 수 있는것도 아니어서 보다 안전한 기분이 든다.


차로가 이렇게 적은데도 도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자동차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등록된 자동차 대수는 올해 5월 기준으로 약 310만대라고 한다. 도쿄23구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2016년 기준으로 약 160만대. 거의 절반 수준이다.


다이칸야마 인근. 보행자에게는 천국이지만, 이 길을 운전자로서 가려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보행자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경계해야 한다.


서울보다 도쿄에 자동차가 더 적은 데에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느낀 바로는 주차 문제가 큰 것 같다. 당장 서울에서는 입사하면 자동차부터 사는 게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도쿄 도심에 근무하는 직장인이 자동차로 출퇴근하기는 정말이지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에서야 대부분 직장 사옥에 지하5층까지 지하주차장을 내 놓아서 많은 직장에서 무료 또는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주차를 해결할 수 있다. 도쿄 도심의 직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 서울 도심의 주요 주거형태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설계 단계부터 주차장 공간 확보를 중요한 과제로 두어 거주민이라면 당연히 무료로 주차할 수 있게 되어있지만, 도쿄는 사정이 좀 다르다. 아파트와 유사한 주거형태인 맨션을 예로 들면, 하나 이상의 대규모 동을 꾸리는 경우가 많지 않고, 주차장 수 자체가 제한되어 있는데다가 (당연히) 유료다. 월 단위 주차장 임대료는 한국 돈으로 3~60만원까지 다양하지만, 어쨌든 직장과 자택에서 이중으로 주차비를 물면서 차로 출퇴근을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미나미에비스의 도로. 이래서는 지정속도(40km)를 안 지키고 싶어도 안 지킬 수가 없다.


최근에는 웬만한 스마트폰이라면 으레 활동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는 앱이 탑재가 되어서, 각 도시의 걸음수를 비교하기가 훨씬 쉬워진 것 같다. 2017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세계 각 도시의 걸음수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는데(링크), 아래 도표를 보면 어떤 도시에 사느냐가 한 개인의 하루 평균 걸음 수 - 나아가서는 평균 건강상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각 나라의 하루평균 걸음수를 비교한 도표. 푸른색에 가까울수록 더 많이 걷는다는 뜻이다. 지도를 확대해보면 한국은 초록색에 , 일본은 푸른색에 가깝다.


평소에 이 주제로 누군가와 대화할 일만 있으면 꼭 인용하곤 하는 뉴욕타임즈의 기사가 있다. <자카르타, 누구도 걷고싶어하지 않는 도시(Jakarta, the city where nobody wants to walk)>가 제목. 세계에서 제일 걷지 않기로 유명한 도시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저격(?)하는 내용인데, 물론 그 나라 문화도 어느정도는 영향이 있지만 그보다는 보행자가 걷기 편한 도시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자동차도 물론 많지만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인데, 오토바이가 보도를 침범하는 게 일상다반사라 보도를 걷는 게 그다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오토바이를 애용하는 동남아 다른 도시들도 피할 수 없는 문제겠지만, 자카르타가 특히 심한 것 같다.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안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각자 경제수준에 따라 오토바이든 자동차든, 하다못해 택시나 우버라도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자카르타는 전 세계에서 교통체증이 제일 심한 도시이기도 하다.


글쎄, 아주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다.


https://www.nytimes.com/2017/08/20/world/asia/jakarta-walking-study-sidewalks.html


이런 분석을 다 떠나서, 걸어서 도쿄를 구경하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경험이다. 계절마다 신경써서 종류를 바꿔가며 심어놓는 가로수와 정원, 걷다보면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되는 크고작은 공원, 대로변이든 골목길 한 구석이든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성심성의껏 손님을 맞아주는 각종 상업시설들.


사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거의 밖을 돌아다닐 엄두를 못 내고, 해가 져도 열대야로 푹푹 찌는 건 마찬가지여서 예전만큼 걸어다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다보니 괜히 더 걷고싶은 마음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도쿄에서 더 많이 걷기를, 보행자의 천국을 만끽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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