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가 그리는 예술의 미래
팀랩(Teamlab)은 일본에서 출발한 미디어 아트 그룹으로, 도쿄는 물론 유럽 싱가포르 상하이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홈페이지 소개에 의하면 이들은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CG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웹디자이너, 에디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디지털 세계의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이미 재밌다. 과거에 예술가란 고흐의 노란 방처럼, 바라만 봐도 미쳐버릴 것 같은 골방에 틀어박혀 인간 감정의 밑바닥을 파고들어 가 피를 토하듯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릴 때 구상은 스토리작가에게 맡기고, 스케치는 본인이 하고, 색칠 작업은 유화 전문가에게 맡긴 후, 마지막 터치만 직접 감독했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들고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반면에 팀랩을 구성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우리 디지털 시대의 예술을 만들어보자'라고 미션을 정하고, 그 미션을 공유할 수 있을만한 전문가를 리크루팅 한 후에, 차근차근 협업하여 공동작업을 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예술은 골방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시작되는 공동 프로젝트일 것이다.
이전 시대의 예술은 확실히 고흐의 노란 방에서 연상되는 자기수련의 이미지가 강했으니, 팀랩이 주창하는 새로운 예술의 모습이 조금 세속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생소한 게 사실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우리 시대의 예술은 어떤 모습이라는 걸까?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 맥락으로, 지난 6월21일에 팀랩이 도쿄 오다이바 모리빌딩에 오픈한 1만 제곱미터 면적의 거대한 상설 전시인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 전시회에 다녀와봤다. 오픈 3개월째를 맞는 최근까지도 워낙 인기가 많아서 한 달도 전에 예매를 해 뒀음에도 인파를 헤치고 겨우겨우 구경해야 했지만, 그래도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었던 건 물론, 꼭 한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전시였다.
어쨌든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 설명과 후기를 찾아봐도 도대체 뭘 말하려는 전시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미디어 아트? 디지털 시대의 예술? 인스타에 태그된 사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 아닐까?
인스타바에(インスタ映え, '인스타빨'을 받는다는 뜻)한 전시인 게 확실하지만, 그래도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미디어 기술이 날로 발전하여 3D 영상과 곡면 디스플레이, 나아가 SF에만 등장하는 줄 알았던 홀로그램마저 꽤나 우리 일상에 가까이 다가온 오늘날, 지금 이 시점에 누릴 수 있는 미디어 아트는 어떤 형태인지를, 최신 기술과 발랄한 상상력 그리고 어마어마한 자본의 힘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관람이, 2층은 체험이 위주라고 느껴졌다. 관람순서가 정해져있지 않고 전시장 지도도 따로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직 감각에 의존해서 숨겨진 방들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찾는 여건은 아주 열악하다. 벽이나 바닥, 조형물을 스크린으로 삼아 프로젝터로 영상을 비추는 형식이라 대부분 공간이 어두컴컴하다.
어둠을 헤치고 작은 화살표를 발견해, 더듬더듬 따라간 끝에 사람 몇 명 없는 전시장에 도달했을 때의 흥분감이 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틈을 타서 혼자 사진도 찍고 멍하니 서서 감상도 해 본다.
예를 들어, 나비를 주제로 하는 방이 있다.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빈 방이 있어 뭐야? 하고 지나쳤다. 문득 벽쪽에 시선이 닿았는데 설명판이 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나비가 나타난다고 한다. 다들 뭐가 그리 바빴는지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법이 없으니 나비가 없었던 것. 다시 돌아가서 서 보았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 없어 설명이 잘못됐다 하던 차에 내 발 언저리로 나비가 날아든다. 나 참 참을성이 없구나.
내가 불러 낸 나비를 보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다들 나비를 부른다고 발을 쾅쾅 구르기나 한다. 바보들. 그러면 나비가 도망가는데. 설명판을 보고 온 몇몇 사람들이 나처럼 가만히 서 있기로 하고, 그렇게 10분 정도 지나니 사방이 색색깔의 나비들로 가득 찼다. 내가 불러 낸 나비들이라고 생각하니, 날개를 움직이는 모습조차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가 우연히 설명판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나는 물론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나비 전시는 못 보고 돌아가는 것이다.
さまよい、探索し、発見する!
Wonder, Explore, and Discover!
헤매어라, 탐험하라, 그리고 발견하라!
전시 티켓을 확인한 후 우리를 전시회장에 들여보내기 전 '헤매어라, 탐험하라, 그리고 발견하라!'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거 참 오글거리는 소리로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버터플라이 하우스>에서의 발견을 경험하고 나니 어떤 뜻인지 이해가 된다.
고대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으니 발을 담그는 순간 담그기 전의 강물과는 다른 강물이 되고 만다.
보더리스의 작품들도 어느 하나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보니 매 순간이 다르고, 잠시 다른방에 갔다가 돌아오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되어있다. 처음에 여기 좀 시시한데, 하고 지나쳤던 방에 길을 헤매느라 다시 들어갔다가 너무 멋져서 한참 구경하고 나오거나 한 일이 많았다.
사실 이 전시는 혼자서 조용히 감상하는 것보다는, 친구나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시끌벅적 감탄사를 나눠가며 즐기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애초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OK이기 때문에 색색깔 아름다운 꿈 속 같은 공간에서 티켓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만큼 인생샷을 잔뜩 찍어갈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 보면 혼자라서 서운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그 그림을 작품의 일부로 벽면에 띄워준다거나, 키 몇 센티미터 이하의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정글짐이라든가. 가족끼리 놀러왔을 때 즐기기 좋은 공간들이 잘 갖춰져 있다. 다만 실내가 워낙 어두컴컴해서 지나가다가 키 작은 어린애들과 부딪히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됐다. 일본 사람들은 조심성이 많아서 괜찮은걸까,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2층에는 티 하우스도 있다. 그런데 평범한 카페인 줄 알고 지나치기에는 참 아깝다.
입구에서 한참 줄을 서 찻잎을 손에 넣고서 노렌(のれん, 일본에서 식당 등 가게 문 앞에 걸어놓는 천)을 걷으면 마치 마녀의 소굴 같은 컴컴한 공간이 나타난다. 스태프에게 찻잎을 건네면 커다란 사발에 차를 담아온다.
이 차에는, 꽃이 핀다.
찻잔에서 씨앗이 움찔하더니 커다란 꽃잎으로 피어나고, 여러 색깔의 꽃잎이 찻잔 위에서 겹쳐가며 무늬를 이루다가, 이내 꽃잎이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고, 흩날리는 꽃잎이 내 주변에 둘러싸인다. 보더리스 전시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모티프를 잘 살려 정적이면서도 동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꽃 구경에 정신이 팔려 차 맛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 '마법'이 어디까지 적용이 되나 시험해보느라고 찻잔을 여기 놓았다 저기 놓았다 해 보며 추측해본 것인데, 아무래도 내 찻잔에 센서가 달려있어, 천장의 프로젝터에서 찻잔 위치에 맞춰 꽃 이미지를 투사해주는 것 같다. 차 한 잔도 그냥 마시게 해 주지 않는구나. 재미있다.
여담으로 보더리스 전시가 개최되는 모리빌딩은 오다이바를 상징하는 대관람차 바로 옆에 있으니까 전시 보러 간 김에 오다이바를 돌아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기관사 없이 모노레일을 달리는 유리카모메 타는 걸 좋아하고, 뭐든지 새거고 널찍널찍한 오다이바 풍경이 어딘지 미래도시 같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오다이바와 딱 결이 맞는 전시 같다.
미래 시대의 예술에게 던지는 질문. 너무 거창한가.
앞으로 몇년쯤 지나 보더리스 전시에 쓰인 기술도 한 물 간 게 되어버리면 이 전시가 던지는 문제의식도 금세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첨단이란 말은 늘 좀 쓸쓸하다. 금방 과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 시대의 미디어 아트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