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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un 05. 2018

미술관, 도시의 정취를 담다.

요코하마를 꼭 닮아 침착하고 세련된 그 곳, 요코하마 미술관에 가다.


서양 뮤지션들이 아시아 투어를 오면 으레 서울 다음에 도쿄, 또는 도쿄 다음에 서울, 뭐 이런 식이다. 비행기로 2시간반이면 훌쩍 넘어갈 수 있는데다 시차도 없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세트로 묶을 수 있을만큼 비슷하게 보이는가보다.


얼마 전까지 잠실 소마 미술관에서 했던 <테이트 명작전 : 누드>가 요코하마 미술관으로 넘어왔다고 해 다녀왔다. 위치 선정이 묘하다. 요코하마 미술관은 소마 미술관과 어딘지 닮아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한 발짝 벗어나 한숨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적당한 규모에, 매번 매력있는 전시를 기획해 내는 실력파 미술관이라는 점 등.



시부야에서 지하철로 20분 남짓. 요코하마 미술관, 코스모 월드, 랜드마크 타워, 아카렌가 창고 등 요코하마 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이미지를 찾으려면 미나토미라이(みなとみらい) 역에 내리면 된다. 일본에 와서 알았다. 이 외우기 힘든 이름이 한자로는 미래 항구(港未来)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도쿄 도심에 비해 눈에띄게 널찍널찍 시원한 도시구획과 세련된 풍경이 조금 더 납득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역사 내에서 한참 이동한 끝에 마침내 유리문을 열고 나와 마주하는 요코하마 미술관. 부드러운 색감에, 엄밀한 대칭을 이루는 형태가 잘 어울린다.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 미술관 앞 광장에는 (역시 대칭을 이루며) 키 작은 분수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흠뻑 젖어서는 물장구 치는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내부는 사진 촬영을 못 하게 되어 있다.


전시 구성이 좋다. 누드라는 커다란 주제를 중심에 놓고, 시간 흐름에 따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준 높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로댕의 <키스>는 전시 포스터에 등장할 정도면 단연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 한데, 딱 전체 동선의 중간즈음에 배치가 되어서 환기 효과가 있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를수록 '큰' 작품을 감상할 때 조금 더 뭐랄까, '느낌이 팍 온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는 <키스>도 그랬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존재감이라든가, 때로는 정열적으로 때로는 애절하게 순간을 포착한 인체의 근육 묘사라든가. 오전 시간에 가서인지 주말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작품 주위를 빙빙 돌며 신나게 감상했다.




다만 오디오 가이드를 포함해서, 대부분 작품 소개가 일본어로만 표기되어 있어 읽느라 고생을 했다. 일본어가 아예 안 되는 경우라면 조금 곤란할 수도 있겠다. 영국의 테이트 재단과 협력했다면 분명 작품 소개 원문은 영어였을텐데 왜 병기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일부 대형 미술관을 제외하면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요코하마 미술관은 외관도 아름다웠지만 실내가 정말이지 우아하고 세련되었는데, 특정 지점을 제외하고는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바람에 이 한 장만 남아있다. 1층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다. 원체 천장이 높은데다 1층과 2층 사이를 허물어 버려 시야가 탁 트이고, 그러면서도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해 공간을 여러 갈래로 쪼개놓아 텅 빈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사방의 창문으로 햇빛이 밀려들어와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런 곳이다.





오는 7월14일부터 9월24일까지는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모네, 그 후 100년>이라는 제목으로 모네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어쩌다보니 그간 여러 미술관에서 모네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면서 모네 작품은 전시하는 방법에 따라 감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


여태까지 중에서는 파리 오랑쥬리와 나오시마의 지중 미술관에서 만났던 모네가 제일 감동적이었다. 두 장소 모두 직선보다는 곡선의 공간을 활용한 점과, 자연광을 잘 활용해서 자연의 인상에 흠뻑 빠져들 수 있게 해 준 점이 좋았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상설전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궁금하다. 요코하마를 꼭 닮아 침착하고 세련된 이 곳 요코하마 미술관이 생각하는 모네는 어떤 모습일까? 두 달 남짓 짧은 전시지만 잊지 않고 꼭 가볼 생각이다.


http://yokohama.art.museum/eng/exhibition/index/20180714-5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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