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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Mar 21. 2019

일본여행의 묘미, 당일치기(히가에리) 온천의 세계

비싼 돈 내고 료칸에 묵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당일치기 온천 이야기

어릴적부터 목욕탕 가는 걸 제일 싫어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창피했고, 수증기가 꽉 들어찬 공기를 들이마셔야 하는 것도, 뜨거운 물에 한참이나 몸을 담그고 있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일본에 온지 일 년, 친구들이 놀러 오면 꼭 온천에 가보자고 하니 하는수없이 나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비싼 돈 내고 료칸에 묵고픈 마음이 들지는 않아서 찾아 낸 타협책이 바로 당일치기(日帰り, 히가에리) 온천. 이번 포스팅에서는 도쿄 인근의 인기 온천 여행지, 당일치기 온천의 이용매너, 필자 나름대로의 이용노하우를 각각 소개해보려고 한다.


긴 여정을 거쳐 마침내 온천 입구에 도달하면 기분이 참 좋다. 긴장이 확 풀린다.





1. 도쿄 인근의 인기 온천 여행지


이동시간을 얼마로 잡는지에 따라 도쿄 인근에도 갈 만한 온천 여행지가 많지 있지만, 이번에는 당일치기 온천을 소개하기로 했으니 도쿄 도심에서 2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로만 추려본다.



(1)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


도쿄의 목욕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 주말만 되면 신주쿠에서 출발하는 로망스카(신주쿠에서 하코네유모토를 연결하는 특급전차)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신주쿠에서 하코네유모토역까지 로망스카로 1시간 40분쯤 소요된다. 리스트에서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곳. 기차 타고 가다보면 산 중턱에 유독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마을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하코네다. 천연 온천이 풍족하게 나오는 곳이라 물이 좋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관광지라 당일치기 온천 시설도 아주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필자가 참 좋아하는 하코네의 당일치기 온천인 텐잔온천(天山温泉) 앞 시냇물이 흐르는 풍경. 역에서 내려 온천까지 이동하는 길조차 아름답다니.


(2) 아타미(熱海)


도쿄에서 토카이도 신칸센으로 50분만에 갈 수 있다. 바다와 접해있어서 바다를 보며 온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메리트이지만, 관광지로 개발된 지 좀 오래된 곳이라서인지 전체적으로 시설이 낡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자는 이즈고원을 여행하면서 잠시 지나간 게 전부고 직접 가본 적은 없다.


(3) 이즈고원(伊豆高原)


사실 자주 언급되는 곳은 아니지만, 순전히 DHC 아카자와 온천을 소개하기 위해 슬쩍 끼워넣어 본다. 도쿄와 시즈오카 사이 뿔처럼 돋아있는 이즈반도의 초입쯤에 위치한 지역으로, 아타미에서 슈퍼뷰 오도리코라는 특급열차로 환승해서 40분 정도를 더 가면 나온다. 이즈반도로만 가도 꽤나 시골이라 아래 사진에서처럼 전차가 굉장히 낡았다. 그래도 창 밖으로 탁 트인 태평양의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어 심심할 틈 없는 여정이다.


이즈반도로 가는 일반열차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닷가 마을 풍경.


DHC 아카자와 온천은 우리가 잘 아는 화장품 회사 DHC에서 운영하는 온천으로, 당일치기 시설이 아주 크고 무엇보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노천탕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는 곳이다. 어메니티가 전부 DHC라 궁금했던 화장품들을 골라가며 써볼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장점. 필자는 우연히 해질녘쯤에 맞춰 이 곳을 찾았는데, 그 날 하늘도 맑아서 바다 너머로 하늘이 천천히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몸을 덥힐 수 있었다.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픈 경험.


당연히 노천탕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그 때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기가 어렵지만,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들이 꽤 사실과 근접한 편인 듯 하니 참고해주시면 좋겠다.


https://www.izuakazawa.jp/daytrip/hotspring/





2. 당일치기 온천 이용 매너


일본 온천을 이용해본 적이 없던 필자에게는 이용 매너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한국 공중목욕탕과 비슷한 부분도,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어쨌든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받지 않고 무난하게 온천을 즐기기 위해 몇 가지만 기억해두자. 매너를 중시하는 일본인들 답게 아래 적은 내용 이외에도 주의할 게 한 박스는 있지만 일단은 이 정도만.


(1) 몸을 깨끗하게 씻고 들어간다


깨끗하게 씻는다는 의미에는 물론 화장도 포함된다. 썬크림을 포함해 화장은 말끔히 지우고, 비누를 묻혀 몸을 구석구석 씻고 들어간다.


(2) 수건을 물에 담그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일본 사람들도 잘 안 지키는 경우가 있는 듯. 하지만 보기에는 깨끗하더라도 수건에 먼지가 붙어있는 등 사람에 따라 불쾌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에 수건을 물에 담그지 않는 편이 좋다. 사우나 이용을 위해 수건을 적셔야 한다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샤워실로 돌아가 적시는 것이 매너있는 행동이라고 한다.


(3) (여성의 경우) 머리를 잘 정리하고 들어간다


머리끈으로 묶어주거나, 샤워캡 또는 타월을 이용해 고정하는 등 머리는 잘 정리하고 들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는 의미도 물론 있지만 머리가 물에 닿거나 하면 본인도 불편할 수 있으니 꼭 신경쓸 것.


(4) 좋은 자리를 너무 오래 차지하지 않는다


노천탕에 가 보면 누구나 탐내는 자리가 있다. 한 10분만 있어봐도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주변이 돌로 되어있는 경우, 유독 등 부분이 평평한 돌이 있어 의자처럼 앉을 수 있는 경우가 대표적. 이런 자리를 차지하면 물론 기분이 좋겠지만,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대 10~15분 정도만 즐기고 자리를 비켜주는 편이 좋다.


(5) 물장구를 치거나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아이를 데리고 온천에 온 경우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물을 만나 신난 기분으로 가볍게 팔을 젓는 것 정도는 물론 괜찮지만,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거나 물장구를 치는 행동은 당연히 NG.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몸을 크게 움직이거나 해서 물을 튀기게 될 때가 있는데, 어김없이 묘한 시선이 느껴지므로 조심하는 편이 좋다. 적당한 목소리로 친구와 대화하는 것 정도는 좋지만 박장대소를 해 가며 큰 소리로 떠들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하자.





3. 당일치기 온천 이용 노하우


마지막은 당일치기 온천 이용 노하우. 필자도 온천을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노하우라고 해 봤자 아주 일반적인 내용들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당일치기 온천이 처음인 분들을 위해 몇 가지만 적어본다.



(1) 언제, 어디로 갈 것인가


당일치기의 특성상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사람에 치이다보면 온천이고 뭐고 전혀 릴랙스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도쿄 도심에 있다는 온천에는 아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도쿄 도심에서 온천물이 나오는 게 아니니 천연온천도 아닐 것이고, 1시간 넘는 이동시간을 내기 어려운 관광객들이 몰려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정적으로는 전체적인 계획이 조금 틀어지더라도 오전 일찍 또는 오후 늦게 가는편을 택하는 편이다. 체감상 12시 이후부터 4시 정도가 제일 붐비는 시간 같다. 이 시간을 피하면 평소에 사람 많은 온천에서도 나름대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하코네 같은 유명한 온천지역에는 당일치기 전용 온천이 있기도 하지만, 료칸에 딸린 온천 일부를 낮시간에 일반에 개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운영시간을 잘 확인하는 것도 중요. 오전 일찍이나 저녁 시간에는 숙박객에게만 오픈되어 자칫 허탕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코네유모토역에 내려서 만날 수 있는 풍경. 이 날 날씨가 조금 흐리기도 했지만, 마을 전체가 흰 연기에 가득 찬 것 같은 온천마을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2) 당일치기 온천, 어떻게 골라야 하나요?


해당 지역의 평균적인 입욕료에 비해 너무 싸지는 않은지, 구글맵 평점이 너무 낮지는 않은지 등을 고려해서 적당히 고른다. 그 중에서도 몇 가지 중시하는 포인트를 소개해본다.


1) 노천탕이 있는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노천탕 이외의 온천은 수증기로 가득찬 욕탕 공기가 너무 답답해서 즐기지를 못한다. 그래서 당일치기 온천도 반드시 노천탕이 있는 온천으로 고른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노천탕이 여러 종류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이럴때는 감사합니다 떙큐 하고 고른다. 한 곳에만 주구장창 들어가 있는 것보다는 여러 탕에 번갈아가며 들어가는 게 조금 더 시간을 오래 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


2) 휴게공간이 충분한가

아, 이거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가루이자와 호시노리조트에 딸린 당일치기 온천인 톤보노유(トンボの湯)의 경우 시설은 나쁘지 않았지만 휴게공간이 아예 없었다. 온천을 하고나면 노곤노곤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 날 일정을 1~2시간 정도 비워놓고, 온천 시설 안의 다다미방에서 책이나 읽다가 늘어지게 낮잠자고 나오는 게 삶의 낙이거늘 그 시간을 갖지 못해서 온천을 하고도 하루종일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점 때문에 당일치기 온천을 고를때는 너무 작은 곳보다는 사람 많을 걸 감안하더라도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 나을 수 있다.


온천에서 나와서는 그 날 컨디션에 따라 자판기에서 병에 든 우유나 캔맥주를 뽑아놓고, 햇빛 받으며 책이나 읽다 한 잠 자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3) 근처에 먹을만한 식당이 있는가

이 부분도 꼭 따져봐야 한다. 필자는 모르는 지역에 갔을 때 타베로그 평점을 조회해보고 가능하면 3.5 이상, 정 안 되면 3.2~3 이상인 식당을 찾는 편이다. 하지만 온천에 가면 그런 거 없다. 그냥 적당히 사람 많고 적당히 먹을만한 식당에서 적당한 음식을 먹으며 졸고싶은 마음뿐이다.

사람마다 여행스타일이 워낙 다르니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필자는 친구들이 놀러오면 적어도 온천가는 날만은 일정을 루즈하게 잡아달라고 말한다. 온천하고 나와서 급히 어딘가로 이동하기보다는, 다다미방이든 식당이든 적당한 곳에서 한 박자 쉬어가야 온천에서의 경험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온천 시설 안에 으레 하나쯤은 딸려있는 소바집. 맛은 중간이상만 하면 된다. 온천하고 나면 맛집을 찾아 멀리 떠나고 싶은 의지가 왠지 사라지기 떄문.


(3) 온천물이 너무 뜨거운데 어떻게 몇 시간씩 들어가 있나요?


이것도 온천알못인 필자가 너무너무 궁금했던 부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부도 불고 숨도 막히는데 어떻게 몇 시간씩 즐기는지. 알고보니 실제로 뜨거운 물에 연속으로 들어가 있는 시간은 15~20분 정도고, 탕 바깥의 나무로 된 의자에 앉거나 누워서 몸을 식히는 거였다.


겨울에는 오히려 너무 추워서 탕 밖에 오래 있기가 어렵지만, 여름에 온천을 찾으면 탕 안에서 잠시 몸을 덥히고 탕 밖으로 나와 햇빛을 쬐며 몸을 말리는 게 또 다른 묘미다.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또 언제 자연속에 알몸으로 나와 햇빛에 몸을 말릴 수 있겠는가. 그 사실을 생각하면 새삼스럽게 행복감이 밀려든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다보면 한시간 반이고 두시간이고 시간이 훅훅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의 하코네. 자연이 빚어내는 초록색만큼 예쁜 색깔이 없는 것 같다.


필자가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알게 된 당일치기 온천의 세계.


료칸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괜찮은 곳 예약하려면 최소 '인당' 15~20만원 이상은 줘야 하니 한 번 가기가 부담스러운데, 당일치기 온천은 비싼데로 골라도 입욕료가 1~2만원 선에서 해결되어 편히 다녀오기에 좋다.


어쨌든 한국에서 여행으로 오는 경우에 일정에 온천을 넣으려면 최소 반나절 이상, 현실적으로는 하루를 통째로 할애해야 하므로 쉽사리 결정하기가 어렵겠지만, 그래도 일본에 왔으면 한 번쯤 해볼만한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 설레는 경험에 이 포스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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