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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Sep 17. 2018

기차 소리를 안주 삼아 니혼슈 한 잔

퇴근길 직장인들을 따라 나카메구로 철길 아래 골목길로

나카메구로(中目黒) 역에 종종 놀러간다. 도쿄의 부촌 세타가야구(世田谷区)에서 시내로 통근할 때 반드시 거쳐와야 할 환승역이다. 그 동네 사는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술 한 잔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잠깐 내렸다 가기에 딱이다. (일본 교통비가 비싸다지만 거의 대부분의 직장에서 집-회사 노선에 대한 정기권을 끊어주기 때문에, 정기권 구간 안에서는 얼마든지 내렸다 탈 수 있다.)


나카메구로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다이칸야마, 에비스, 메구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 걷는지에 따라 목적과 느낌이 다 달라진다. 봄에는 메구로강을 따라 메구로역까지 가는 게 좋겠고, 고급주택가와 세련된 편집샵을 둘러보고 싶다면 다이칸야마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겠고, 배가 좀 고프다면 에비스 쪽으로 걸으며 길 양쪽 돌아보며 맛집 골라가는 것도 좋겠다. 어느쪽이든 매력적인 동네다.


하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나카메구로에서 환승하는 직장인들이 한 숨 쉬어가는 곳이자, 땅값이 워낙 비싸 철길 주변은 물론 철길 아래 공간도 포기할 수 없어 식당으로 꾸며버린, 나카메구로 철길 아래 먹자골목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 위 철길 아래로 식당이 쭉 늘어서 있다.


나카메구로역에서 나와 맞은편에 츠타야서점을 바라보며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위 사진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초입은 프랜차이즈 식당이 몇몇 보여 좀 아닌 것 같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조금 더 들어가면 재미있는 가게가 많다. 스페인 요리 전문점, 교자 전문점, 밤에는 이자카야로 변신하는 우동 가게, 굴 요리 전문점, 야키니쿠 전문점, 캐쥬얼한 분위기의 스시집 등등.


지나가는 가게마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컨셉을 찾을 수 있다. 세련됐으면서도 정감이 있어 조금은 만만하게 들어가볼 수 있다. 초저녁에는 별로 붐비지 않아서 맛이 없나, 했던 가게도 8~9시 넘어서 지나가보면 빈 자리가 없다. 10시 넘어서는 1차를 마무리하고 2차 식당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야키토리나 타파스처럼 가벼운 메뉴 앞에 줄을 서 있기도 하다.


요즘은 한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여기를 꼭 데리고 간다. 도쿄타워나 긴자 거리는 언제든지 가볼 수 있지만, 철길 아래 식당에서 기차 소리 들으며 술 한 잔 하는 경험은 쉽사리 못 해볼 것 같아서다.


로바타 사토의 한쪽 벽면. 여러 종류의 니혼슈(日本酒)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동네 식당에 앉아서 술 한 잔 하면서 수다떨다 보면 수다와 수다 사이 잠깐의 침묵을 틈타 기차 소리가 파고들어온다. 운 나쁘면 덜컹덜컹 흔들리기까지. 지상철의 천국 도쿄에 와서 살다보니 기차 소리에 익숙해진 건 물론, 기차 소리를 좋아하게 되기까지 했다. 그러니 기차 소리를 들으면 괜시리 술 한 잔 더 하고 싶어지고. 더군다나 비 내리는 날은 특유의 정취가 조금 더 배가된다.


사실 나카메구로 철길 아래까지만 찾아와도, 적당히 사람들이 어느집에 많이 들어가는지를 스캔했다가 나도 따라들어가면 된다. 일본에는 맛집이 참 많고, 타베로그(食べログ)라는 맛집 정보 사이트에서 꽤나 신빙성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맛집을 찾아가기 위해 그 날의 동선을 바꿔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어디를 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디서 뭘 먹어도 대충 맛있을만한 장소를 찾는 게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나카메구로의 철길 아래 골목길처럼 말이다.


그래도 때로는 목적지가 정해져있는 편이 마음 편하니까 예약해서 가곤 하는 식당, 로바타 사토(炉端佐藤)를 소개한다.


가을 야채 모듬. 버섯과 대파, 그리고 왠지 무 같기도 한 이름모를 채소에 불향을 입혀 구워준다.
고등어 아부리. 뼈를 발라내고 등껍질을 벗긴 고등어를 꼬치에 꽂아 지푸라기를 태운 불에 살짝 그을려서 가져다준다. 살짝 물컹한 듯한 식감과 고등어의 진한 맛이 잘 어울리는 메뉴.


로바타를 굳이 번역하면 직화구이 정도로 할 수 있으려나? 고기나 해산물, 야채 등을 꼬치에 끼워서 직화로 굽는다. 재료의 성격에 따라 굽는방법도 다 다르다. 불향을 입혀 빠르게 구워야 하는 경우엔 지푸라기를 잔뜩 가져 와 화르륵 불쇼를 하며 구워주기도 하고, 천천히 잘 익혀야 하는 경우에는 거의 30분도 넘게 약불에 올려놓고 빙글빙글 돌려주기도 한다.


소고기 타다키. 겉면만 살짝 구운 상태라 속은 붉다.


4번이나 방문하는 동안 세 가지가 마음에 들었다. 재료가 하나같이 신선하고,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를 제안해주고, 다양한 일본술을 곁들일 수 있다. 여름에는 토마토와 가지 등을 구워주더니 이번에 가 보니 가을을 맞아 다양한 굴 요리를 제안하고 있었다.


다음은 일본술을 곧잘 제안해준다는 점이다.


일본에 왔으니 니혼슈를 먹어봐야 하지 않나, 라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니혼슈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어디서 주문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지역에서 만들었는지, 순수 쌀로만 만든건지, 쌀은 얼마나 깎아냈는지, 맛이나 향이 강한 편인지 등등에 따라 맛이 다 달라진다는데 이거 원, 먹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어떤맛을 좋아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갑갑했다.


이 곳에서 취급하는 일본술 종류. 일본 전역의 50가지가 넘는 술을 갖춰놓고 있다고 한다.
오른쪽 위가 니혼슈 맛의 사분면. 향과 맛의 강약에 따라 네 가지 색깔로 구분하고, 각각의 술에 적합한 온도를 적어뒀다.


위에서 두 번째 사진은 이 가게에서 니혼슈를 제안할 때 사용하는 표이다. 향과 맛의 강약에 따라 네 가지 색깔로 구분하고, 각각의 술에 적합한 온도를 적어뒀다. 필자는 향과 맛이 약해 산뜻한 느낌인 파란색을 좋아한다. 또 술은 역시 차갑게 마셔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본인의 취향을 이 정도만 알아둬도, 이자카야에 가서 이러이러한 니혼슈를 추천해달라고 말할 수 있다.


스태프 추천 메뉴. 주말에는 워낙 바빠서 지정된 술 종류를 내 오는 것 같지만, 평일에는 특정 스태프를 지명해서 어떠어떠한 술을 먹고 싶다고 설명하면 적당히 골라서 가져다준다.


초심자를 위한 시음 메뉴도 있다. 위 사진이 그것인데, 우리 테이블의 주문 등을 전담해주는 스태프를 지명해서 추천 3종을 가져다달라고 하면 위와 같이 가져다준다. 셋 다 마셔보고,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술을 골라 간단한 이유(목넘김이 좋았어요 향이 강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등)와 함께 알려주면 다음에는 뭘 마시는 게 좋겠다고 추천을 해 준다.



왼쪽 스테인리스 병에 니혼슈가 들어있다. 온도 보존을 위해 나무그릇에 얼음을 가득 담아주어, 술이 미지근해지는 일 없이 천천히 마실 수 있다. 다 먹고 나면 오른쪽 네임태그에 카드를 걸어놓도록 되어있다. 그 날 어떤어떤 종류의 니혼슈를 마셨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까망베르 치즈를 구워주는 메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식감에 치즈향이 은은하게 느껴져 맛있다.
가리비 구이. 소스가 조금 짜기는 하지만, 가리비를 워낙 부드럽게 구워주니 이만하면 괜찮다 싶다.

 

이 집 예약은 아래 타베로그 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고, 영어 메뉴판이 없다. 그래도 4명 이상을 제외하면 전부 다찌석으로 안내해주니 주방장이 지금 뭘 굽고있고, 옆 테이블에서는 뭘 시켜먹는지 등을 잘 스캔했다가 눈치껏 주문하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https://tabelog.com/tokyo/A1317/A131701/13202250/


왠지 기승 전 맛집추천으로 끝나버려서 좀 묘하지만, 어쨌든 철길 아래에서 술 한 잔은 도쿄에서 꼭 경험해 볼 만한 일 같다. 나카메구로 철길 아래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 포스팅을 써 보았지만 나카메구로 말고도 도쿄 여기저기에 철길 아래 식당은 많이 있다. 그 특유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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