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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ug 19. 2018

지금 키요스미시라카와에 가 보아야 할 이유

도심 밖 창고 밀집지에서 출발한 카페거리, 도쿄의 소호(SOHO)로.

키요스미시라카와(清澄白河)라는 이름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건 2015년 2월, 당시에도 이미 핫했던 블루보틀 커피(Blue Bottle Coffee) 미국 외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이 곳에 지점을 내기로 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외국계 브랜드들이 아시아 첫 지점을 일본, 그것도 도쿄에 내는 건 그다지 드문일이 아니지만 보통은 긴자나 아오야마 같은 도심 한복판에 내지 않나? 도쿄역에서 도쿄 스카이트리로 가는 길목 어디쯤, 키요스미시라카와라는 지명조차 2003년 이 곳에 도에이오에도선 라인을 증설하면서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도심에서는 조금 떨어진 이 곳에 왜?


에도시대부터 보존되어 온 일본식 정원인 키요스미 정원의 호숫가 풍경.


키요스미시라카와는 원래, 수운(水運) 물류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하긴 지금이야 트럭에 짐을 실어 육로로 옮기곤 하지만 트럭이 없던 시절에는 마차보다야 배로 옮기는 편이 빠르고 비용도 덜 들었을 것 같다. 오늘날 도쿄 도심을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는 수도고속도로(首都高)의 노선 중 상당부분은 과거 운하가 있던 자리를 들어내어 도로로 만든 거라는데, 그 자리가 운하였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과연 도쿄에서 수상운송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졌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 이후로 수로보다는 육로를 통한 운송 비중이 커지면서, 키요스미시라카와 지역의 물류창고가 비어가기 시작했다고. 사실 이 기회를 먼저 포착한 것은 예술계였다고 한다. 일본 건물들은 층고가 낮기로 유명한데, 창고는 물건을 쌓을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층고가 아주 높다. 이 공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 미술 전시에 딱 좋은 조건이다.


지금은 리노베이션 중으로 2019년 3월까지 휴관이지만, 모리(森) 계열의 도쿄도현대미술관이 이 곳 키요스미시라카와에 위치해 있는 데에도 그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키요스미시라카와 인근의 카페 지도. 출처는 구루나비.


그 다음에 빈 창고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 바로 커피업계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원두 로스팅과 서빙을 한 장소에서 하려면 층고가 높아야 하나보다. 골목골목에 개인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블루보틀이 이 거리를 알아보고 이 곳에 지점을 내기로 했다는 것.


블루보틀커피 키요스미 지점의 모습. 한켠을 원두창고처럼 꾸며놓았다.


도쿄에는 블루보틀커피 지점이 여럿 있는데 각 지점마다 나름대로 특색있게 꾸며놓았다. 필자는 그간 주택가 한 구석에 위치해 있고 통유리로 된 가게 앞에 나무와 풀로 꾸며진 소박한 공터가 있는 롯본기 지점을 제일 좋아했는데, 키요스미 지점도 (더 붐빈다는 점을 제외하면) 꽤나 마음에 든다.


필자는 하필 오봉야스미 기간에 방문하는 바람에, 빈 속을 채울 밥집을 찾지 못해 블루보틀 커피만 찍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지만, 위 지도를 참고해서 저마다 풍부한 스토리를 담고있는 카페를 돌아다니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것 같다. 블루보틀 외에는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로스터리 커피 전문점 올프레스 에스프레소(Allpress Espresso), 창고를 리모델링해 러프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후카다소 카페(Fukadaso Cafe), 가게 정원이 10명도 안 되어보이는 작은 카페 어라이즈 커피 앤 로스터즈(Arise Coffee & Roasters) 등이 유명한 것 같다.


목적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참 정겹다. 조금은 낡은 듯 생활감이 느껴지는 주택가 건물들. 도쿄의 시타마치(下町, 서민거리) 정서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야네센(야나카/네즈/센다기 일대를 가리키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키요스미 정원 안쪽의 정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참 좋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키요스미 정원이다.


이 곳은 원래 19세기 후반 미쓰비시 그룹 창업주가 귀빈을 접대하기 위해 저택과 함께 지은 정원이라고 한다. 20세기 들어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저택이 소실되고, 정원만이라도 일반에 공개할 수 있도록 도쿄도에 기부해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가 보기 전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도심 한복판에서 너무나 차분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나 감격했다. 입장료도 150엔밖에 안 하고,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일본 전통 양산(日傘, 히가사)을 공짜로 대여해주기까지 한다.



고층건물이 많은 동네는 아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고층건물들 사이에 혼자 비현실적인 평화로움을 자랑하는 이 곳 정원. 가만히 앉아 새소리를 듣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구경하고, 돌다리를 건너 자라와 인사하다보면 키요스미시라카와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완성되는 기분이 든다. 바쁜 일정에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지하철역 바로 앞이니 잠깐이라도 들렀다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에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있는 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금 딱 조용하고 특색있는 이 곳 거리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이 알려질수록 지금의 모습을 잃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더욱, 도쿄에서 지금 꼭 가 보아야 할 장소로 소개해본다.


@ 링크는 또 다른 도쿄의 시타마치인 야네센(야나기/네즈/센다기)에 대한 연관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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