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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Apr 09. 2019

도쿄에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가 오픈했다.

몇 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가도 마냥 행복한, 핑크빛 판타지아.

이맘때쯤 도쿄 나카메구로는 벚꽃 구경을 나온 인파로 절정이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모여들 일인가 싶다가도, 걸어서 2~30분 남짓 강가 양편에 벚꽃나무가 도열해, 만개 시기쯤 되어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한 꽃잎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 감탄하게 된다.


도쿄 벚꽃 명소를 꼽을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데는 이유가 있다.


저번주 나카메구로 강가의 모습. 미리 신청을 받아 등을 달아놓는데, 가게 이름에서부터 아이돌 자랑까지 온갖 게 다 적혀있다.
연한 갈색 건물과 핑크빛의 상성이 잘 맞아, 이런 장면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게 된다.


이런 나카메구로에 글쎄,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가 오픈했다. 미국 시애틀과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 중국 상하이에 이어 다섯번째 매장이라고.


사실 일본에서 스타벅스는 워낙 잘 먹히는 브랜드이다. 스타바(スタバ)라는 애칭을 붙여, 도토루 같은 일본 로컬 브랜드에 비해 고급진 이미지를 구축해놓고 있고 덕분에 시내 곳곳에서 매장도 쉽게 찾아볼 수 잇다.


이런 스타벅스의, 전 세계 다섯 개 밖에 없는 '특별한' 매장이 일본에 생겼다는 것, 벚꽃 프리미엄은 물론 그 외 계절에도 독보적인(특히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편)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는 동네인 나카메구로에 위치를 잡았다는 것 등등을 생각하면, 무척 붐빌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떻게 꾸며놨을까? 매장에서 로스팅을 직접 한다는데 과연 커피가 더 맛있는걸까?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 외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에서 보면 벚꽃나무의 핑크빛이 반사되어 보인다.


일요일 오전 7시, 모험을 떠났다.


설마 이 시간부터 핫플레이스에 가겠다고 줄 서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한 30분만 일찍 갈 것을. 매장 앞에 도착하자 이미 주변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정리권(整理券, 번호표와 비슷한 개념)을 뽑자 내 앞에 200팀 정도는 대기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그나마 매장 앞에 마냥 줄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니고, 번호표의 QR코드를 찍으면 실시간으로 몇 팀 남았는지 알려줘서 근처 어디에서든 기다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아침부터 강가 따라 산책도 다녀오고 카페 문 연 데 있나 기웃대기도 하며 나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궁금증도 해결했겠다 한동안은 가고픈 마음이 안 들 것 같지만 그래도 만의 하나 다음에 또 이런 도전을 하게 된다면, 애매하게 아침시간 말고 아예 다른 카페들 문 연 오후 나절을 선택해서, 다른 적당한 카페에서 시간 보내며 번호표 줄어드는 거 체크하다가 순서가 오면 스타벅스로 옮기든지 할 것 같다.


건물은 4층까지로, 2층부터는 각 층에 테라스 자리가 있다. 2층이나 4층은 높이가 애매하고, 3층이 딱 벚꽃나무와 비슷한 높이라 눈앞에 핑크빛 꽃잎이 카펫처럼 깔려있다.


어쨌든 대기 시스템이 놀라울 정도로 잘 갖춰져 있어 눈살 찌푸릴 일 없이 순조롭게 매장에 들어올 수 있었고, 매장 안에서도 그렇게까지 붐빈다는 느낌 없이 나름대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다만 1층의 스페셜 푸드나 커스터마이즈 요플레 쪽에는 줄이 무척 길어서, 그게 꼭 먹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좀 더 대기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냥 일반적인 커피와 푸드를 먹고 싶다면 상대적으로 줄이 짧은 3층이나 4층으로 가서 주문하면 된다.


3층 ARRIVIAMO BAR의 풍경. 여기 말고도 저녁이 되면 술 파는 스타벅스 매장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곳은 아예 본격적인 바를 표방하고 있다.


3층 기준으로 드립커피는 메뉴에 없고, 아메리카노 가격이 630엔부터 시작한다. 딱 2배 가격. 비싸긴 비싸구나 싶지만 뭐,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져 있는 거대한 로스팅 기계를 보고 있자면 그 돈 내는 게 그렇게 아깝지는 않게 느껴진다.


거대한 로스팅 기계의 일부.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구조물이 1층부터 4층까지를 관통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 쉭쉭 소리를 내며 원두에 뭔가 하고 있는 걸 확인시켜준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본 모습. 표면을 망치로 두드린 것 같은 질감은 최근 일본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고, 색상이 로즈골드라 바깥의 벚꽃 풍경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플레인 크로아상과, 크로아상 안에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티라미수, 그리고 아메리카노 두 잔. 오랜 기다림 끝에 손에 넣은 일요일 아침상이라 더욱 소중했다.


나뭇결이 사랑스러운 사각 원목 트레이에 담아준다. (이 트레이 분명 파는걸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1층 굿즈 코너에서 팔고 있다. 왼쪽의 S사이즈가 4,500엔. 첨 보는 순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비쌌지만 그냥 눈 딱 감고 사왔다.)


사실 푸드는 그렇게 맛있을거라는 기대를 안 했기에 딱 기대한만큼의 보통 맛이었고, 커피는 일반 스타벅스 매장에서 먹는 것보다는 맛있었던 것 같다. 맛은 뭐, 그냥 그 정도 감상이었다.


매장 한쪽 벽을 리저브 원두 카드들이 장식하고 있다. ROASTERY라든가 TOKYO 같은 글자를 중간에 넣어놓았다.


맛은 둘째치고, 이 곳에서 보낸 시간이 필자는 아주 즐거웠다.


필자는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카페 중 하나에 가야 한다면 스타벅스에 가는 편이었고(앱으로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고 별 모아서 빵 사먹는 재미가 있다), 일본에 와서는 도토루 같은 로컬 프랜차이즈 커피가 이렇게 맛없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맛없다는 걸 알고 웬만하면 '아는 맛'인 스타벅스에 가곤 했다. 어느 매장이든 대충 비슷한 인테리어와 편한 의자, 깨끗한 화장실도 내가 갖게 된 신뢰에 한 몫 했다.


스타벅스의 엄청난 열성팬이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자주 드나들다보니 스타벅스에서 내세우는 여러 서브브랜드(RESERVE COFFEE, TEAVANA 등)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 곳에서의 시간이 유독 재밌었던 것 같다. 그간 나랑 친하게 지냈던 스타벅스라는 친구의 여러 면모를 한 자리에 전시해놓고, 조금 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소소한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느낌이랄까?


3층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핑크 카펫. 몇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일 년에 딱 한 번 찾아오는 도쿄의 축제다.
테라스의 무드를 엿볼 수 있는 장면. 창 밖을 내다보도록 배치된 테이블 너머로 손에 닿을 듯 핑크빛이 펼쳐져 있다.


1층의 커피 체험코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여다 볼 엄두를 못 냈고, 2층의 TEAVANA 코너를 예로 들어본다.


여태까지 TEAVANA와 내 관계는 이랬다. 어느 날 카페인 섭취하기가 부담스러울 때 아무생각 없이 차를 시켰는데 그냥 차가 아니고 TEAVANA 란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먹다보니 이거 참 맛있네 라고 느끼게 되었는데, 같은 카모마일이라도 라벤더향이 살짝 섞여 카모마일 특유의 비린내가 덜하고, 녹차도 조금 더 끝맛이 시원한 느낌이다.


이 곳 리저브 로스터리에서는 이렇게 감각적으로 축적해 온 TEAVANA 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 더 구체적인 경험으로 바꿔볼 수 있다.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벽면 한쪽을 머그컵이 제각각의 방향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원두를 고르듯, 찻잎을 골라 그 자리에서 포장해주는 코너가 있다. 직접 각 찻잎의 향을 맡아보고 전문가에게 즉석에서 블렌딩 조언을 구할 수 있게 꾸며져있다.
티바나 굿즈들. 이세이 미야케, 이탈랴 등 각 분야 브랜드들과 콜라보한 제품들이 인상깊었다. 음, 무척 비쌌지만 말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흰 머그컵, 투명한 유리 항아리에 정갈히 담겨 시향을 기다리는 찻잎들, 머그컵에 쪼르륵 따라버리면 그만인 커피와는 달리 왠지 찻주전자며 찻잔까지 조금은 갖춰놓고 즐기고 싶은 마음을 살살 간지르는 듯한 굿즈 진열대까지. 2층 TEAVANA 컨셉 스토어를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 차를 마시는 데서 오는 우아한 그리고 사치로운 기분에 흠뻑 젖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나도 모르게 그 느낌이 스타벅스의 TEAVANA로 연결되는 순간 깜짝 놀란다.


내가 리저브 로스터리에 매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내가 사 먹는 TEAVANA의 배경은 일반 스타벅스 매장일 뿐인데. 왠지 이 곳을 경험하고 나간 후에는 기억력이 아직 남아있는 한동안만이라도, 차 한 모금에 리저브 로스터리의 사치로운 기분이 되살아날 것만 같다.


나에게 리저브 로스터리는 그런 장소였다.



이번주에 월요일부터 봄비가 내리면서 절정을 지난 벚꽃도 거의 떨어졌다. 아쉽지만 도쿄의 벚꽃 시즌은 이것으로 끝. 나카메구로가 워낙 벚꽃 이라는 키워드로 유명한 동네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스타벅스도 또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서 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을 장식할 것 같다.


벚꽃 시즌도 지나갔으니 슬슬 관심이 시들해졌으면 좋겠지만, 나처럼 한 김 식을때까지 기다려보려는 사람들도 있고, 또 전 세계 다섯 개 도시에밖에 없다는 희소성을 찾아 몰려드는 관광객도 있을테니, 앞으로도 당분간 이 곳 리저브 로스터리는 붐빌 게 분명하다. 그 기다림을 감수하고라도 또 한 번 가 볼 용기가 나려나.


다음을 기약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몇 시간을 기다려서 고생끝에 들어간 것 치고는 문턱을 넘자마자부터 내게 마냥 행복한 감정만 주었던 이 곳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올해 벚꽃 시즌의 마지막을 이 곳에서 장식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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