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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May 19. 2019

여섯시, 디즈니의 밤이 시작되는 시간

맥주 한 잔 걸치고 동화 속 마을을 헤맨다. 어른들의 밤.

캔디처럼 씩씩한 여자 주인공, 우여곡절 끝에 쌀쌀맞은 부잣집 도련님과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어느 날 밤, 도련님은 캔디 퇴근시간에 맞춰 직장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목적지도 말하지 않고 어디론가 묵묵히 운전해 간다. 한참 가던 끝에 내린 곳은 폐장 후 놀이공원. 도련님이 손짓하자 캄캄하던 사방에 불이 켜진다. 감동한 캔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회전목마 앞에서 두 남녀는 입을 맞추고, 때맞춰 엔딩을 알리는 OST가 따라붙는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클리셰 범벅의 장면. 클리셰도 이런 클리셰가 없다고 웃어 넘기면 그만일지도 모르지만, 웃음기를 거두고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의미가 보인다.


보통 사람들에게 놀이공원은 사람 구경하러 가는 장소라는 것.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발하지만, 정작 가서는 놀이기구보다 사람이 더 많아 땡볕에 몇 시간씩 기다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하는수없이 놀이공원 안 식당에서 사람에 치이며 비싸고 맛없는 음식을 먹느라고, 정작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은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우리끼리 즐기는 놀이공원에서의 밤을 꿈꾸게 되는 게 아닐지.


인어공주 테마로 꾸며진 실내공간. 색감이며 구성을 보면, 도무지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애프터 식스' 입장권을 이용해 즐기는 도쿄 디즈니씨의 밤을 소개한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말 피크타임에 비해서는 훨씬 한산해 한결 여유롭게 디즈니의 밤을 즐길 수 있는데다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버터맥주와는 달리! 진짜! 알코올이 들어간 맥주까지 판다.


여섯시, 디즈니의 밤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도쿄에는 디즈니 테마파크가 두 곳 있다.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씨.


둘 다 입장료도 만만치 않고, 규모도 제법 커서 하루에 둘 다 구경하기는 만만치 않고 결국은 한 곳을 골라야 한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디즈니씨를 더 좋아한다.


자연환경(바다)을 활용해 항구 컨셉으로 만든 테마파크라 풍경이 무척 아름답고,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타겟으로 하고 있어 (디즈니랜드보다는) 스릴있는 놀이기구가 많다. 무엇보다 디즈니랜드와 달리 디즈니씨는 일본에만 있는 곳이라고 하니, 기왕 일본에서 디즈니에 온다면 디즈니씨에 가는편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


커다란 호수를 중심으로 공간이 나뉘어 있다. 은은한 조명이 호수에 반사되어 역시 카메라를 부르는 풍경!


디즈니씨는 입장권만 따로 팔지는 않고, 한국으로 치면 자유이용권에 해당되는 '원데이 패스포트'를 판다. 보통은 7,400엔이고 평일 저녁 6시부터 입장할 수 있는 '애프터 식스'는 4,200엔. 한국은 할인혜택이 워낙 많아 제값주고 들어가면 바보 된 기분이지만, 디즈니는 할인방법이 거의 없으니 그냥 티켓 사서 들어가면 된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속 편한 일이라고나 할까.


디즈니 테마파크의 입구와도 같은 동네인 마이하마(舞浜)가 도쿄역에서 급행열차로 15분 남짓 걸리니, 도쿄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하루 정도 큰 맘 먹고 퇴근후에 와볼 만한 거리다. 실제로 퇴근하고 케이요선에 타니 왠지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게 아닐까 싶은 그룹들이 종종 보인다. 얼핏 커리어우먼으로 보이는데 가방에 수줍게 디즈니 인형 키링을 매달고 있다거나. 마이하마 역에 내려서는 조금 더 대담하게, 가방 안에서 커다란 인형을 꺼내 끌어안고 가기도 한다.


이쯤 되면 나도 뭐 디즈니 굿즈 하나쯤 달고 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 뜬 자가 소수가 된다는, 뭐 그런 거려나.


마이하마역에만 내려도 "아, 이제 곧 디즈니씨에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역사풍경 속 스페이드 모양의 깜찍한 시계가 보인다.
마이하마 역에서 디즈니 테마파크를 순환하는 테마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누가 디즈니 아니랄까봐 손잡이에도 귀가 달렸다.


사실 디즈니씨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에 대해 필자가 적기는 좀 민망하다. 잘 알면 알 수록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깨알같은 포인트를 숨겨 둔 곳인만큼, 필자 같은 머글(?)로서는 디즈니의 방대한 세계관 중에서도 아주 일부만 맛보고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애프터 식스' 입장권을 이용해 들어갈 일이 있다면, 저녁식사를 굳이 바깥에서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놀이공원에 뭐 특별나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디즈니씨 정도면 다른 놀이공원에 비해 푸드류가 특색도 있고 맛도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알라딘, 인어공주, 토이스토리 등등 디즈니 캐릭터를 테마로 한 공간들이 나뉘어져 있고, 각 공간마다 공간의 특색에 맞는 푸드류를 판다. 같은 음식을 다른 장소에서 팔지 않는 게 포인트다. 먹고싶은 메뉴를 정해놓고 지도를 짚어가며 찾아갈 수도 있지만, 이 곳에서 3~4시간밖에는 보낼 수 없는 거니, 그냥 지나가다 눈에 띄는 곳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매점을 발견하면 "저도 저거 주세요!"를 시전하는 재미가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가는 길. 평소에는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게 기본이라는데, 이 날은 5분만에 탈 수 있었다.


다음은 들어가서 뭘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8시부터 야간 퍼레이드가 있기 때문에 그 시간 전후로 놀이기구 앞에 사람이 적어진다. 이 틈을 활용해 어트랙션을 타면 짧은 시간에 여러 어트랙션을 즐길 수 있지만, 역시 퍼레이드는 포기해야 한다. 연인끼리 온 거라면 느긋하게 퍼레이드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친구끼리 또는 여럿이서 왔다면 어트랙션과 어트랙션 사이를 뛰어다니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이 날 필자는 어트랙션 쪽을 선택했는데, 폐장시간인 10시 직전까지 디즈니씨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토이스토리>를 포함해서 5~6개 정도를 탈 수 있었다. 제일 오래 기다린 게 <토이스토리> 앞에서의 30분. 일행에 의하면 그 전날 비가 많이 왔던 덕분에 특별히 한산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 쏠쏠히 잘 놀 수 있었던 것 같다.


알라딘 테마의 회전목마. 사람이 없어서 손쉽게 지니를 차지할 수 있었다.


폐장시간이 10시였기 때문에, 10시가 되면 칼 같이 모든 시설이 멈추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마감 직전에 마지막 어트랙션에 줄 서기에 성공해서 타고 나오니 10시15분 정도. 다행히 기념품샵이 아직 영업하고 있어서 슬슬 둘러보다가 '더피' 인형을 하나 사 왔다.


디즈니씨처럼, 더피도 미국 디즈니가 아닌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테디베어 캐릭터다. 일본인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몽글몽글한 외모로 기념품샵 내에서의 지분이 상당하다. 중간 사이즈의 인형이 한화로 5만원 정도고, 계절마다 새로 출시되는 인형옷은 인형보다 더 비싼 가격을 자랑한다. 이 부분유료화의 나라 같으니. '애프터 식스'로 입장권 할인받고 들어갔다고 좋아했는데, 결국은 기념품샵에서 입장권보다 비싼 인형을 사 가지고 온 셈이 됐다.


얼굴도 미키모양, 발바닥도 미키모양, 엉덩이에도 미키모양 도장. 언뜻 그냥 테디베어 같은데 들여다볼 수록 디즈니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디테일에 반해 지갑을 열었다.


이렇게, 디즈니씨에서 하루를 이틀같이 보냈다.


도쿄에 잠깐 놀러온 여행객에게도 평일 저녁 '애프터 식스' 입장권을 활용해서 디즈니를 즐기는 게 추천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을 위한 놀이공원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결 한산한 분위기에서 멋진 야경에 둘러싸여 놀이공원에서의 밤을 즐기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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