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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Oct 19. 2019

운동이 너무 싫을 땐 무슨 운동을 해야 하죠?

운동과 담 쌓고 살아 온 30대,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운동과 담 쌓고 지낸 지난날들


헬스장 1년 회원권 끊었다가 열 번도 못 가고 중도해지 신청하러 갔다가 생각보다 적은 환불액에 놀라며 깔끔하게 돈 날린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나요?


누군가 나에게 취미를 물으면 독서, 영화 보기, 맛집탐방, 미술관 다니기, 비가오나 눈이오나 할 수 있는 실내 활동만 줄줄 읊었다. 평생을 '인도어파'로 살았으나 불편함은 없었다. 운동 안하는 게 뭐 어때서, 자차 없는 뚜벅이가 놀러 다니려면 얼마나 많이 걸어야 하는데!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지하철역 환승구간에서 환승구간까지 부지런히 걸으면 이게 다 운동이지 뭐. 이렇게 운동과 담 쌓고 잘 지냈다.



그런데, 혼자인 시간이 너무 많아


그런데, 해외에서 혼자 살다보니 이것 참 혼자인 시간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던 때는 심심하면 휙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예매해 보고 혼자 할 일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이 있다보니 선택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이다.


주말에 하루종일 집에 있느니 큰 맘 먹지 않고도 휙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운동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운동이 꼭 하고싶다거나 필요해서가 아니라, 언어가 좀 부족해도 몸으로 하는 일이니 괜찮지 않겠어? 라는 취지로.


그렇게 처음 시작한 운동이 가압(加圧) 트레이닝이었다.



30분만 운동하면 2시간 운동한 효과가 있다고?


가압, 압력을 가한다는 뜻이다.


운동의 내용 자체는 트레이너와 함께 30분 정도 간단한 맨손운동을 하는 것인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팔다리에 압박밴드를 연결해서 피가 잘 안 통하는 상태에서 하는 게 포인트다. 그 상태로 30분만 운동하면 2시간 운동한 효과가 있단다. 뭐랬더라, 피가 더 빨리 돌아서 근육이 더 빨리 붙는다나?


당연히 그 말을 100%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1) 1대1로 트레이너가 붙어서 자세를 잡아준다는 점, 2) 딱 30분만 하면 되니 제아무리 운동을 워낙 싫어하는 나라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 때문에 12회치를 등록했다.


분명 바깥의 배너에는 1회 30분에 4만원 정도라고 적혀있었는데, 뭐라뭐라 복잡한 이야기를 하며 결제내역 보여준 걸 보니 거의 1회에 10만원이 넘어가네. 밖에 적힌 요금은 '체험권'으로 처음에만 특별히 적용되는 거라 패키지 요금은 더 비싸고, 거기에 입회비와 사무수수료가 따로 붙고 등등. 아니 이것들이 미쳤나. 부족한 내 일본어로는 환불해달라고 할 용기도 없고 해서 속는 셈 치고 그냥 열심히 다녀보기로 했다.


가압을 하면 성장호르몬이 보통의 290배가 더 분비되어 운동 효과도 4배로 늘어난단다 (이미지 출처는 Kaatsu Omotesando 홈페이지)


그 후 약 3개월에 걸쳐서 12회 수업을 다 받았다. 1주일에 한 번 꼴. 평일 저녁시간이나 주말은 예약 잡기가 어려워서 1~2주일 전에는 시간 예약을 해야 했다. 내가 다닌 학원은 예약현황을 종이로 관리했기 때문에, 예약을 바꾸려면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외국어로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전화로 뭐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다.) 그나마도 하루 전에 취소해놓지 않으면 1회치가 그대로 차감되었다.


갑자기 다른 약속이 생겼거나 생리를 시작하는 등 수업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 있더라도 꾸역꾸역 시간 맞춰 가야한다는 점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운동 자체도 뭐, 그냥 그랬다.


기구 없이 맨손운동 하는 건데도 엄청 힘들긴 했다만, 가압 트레이닝의 핵심인 압력밴드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번거롭고 아프기만 하던데 이게 정말 건강에 좋은걸까? 그리고 근력운동이니 일주일에 2~3회는 가야 할 것 같은데, 1회치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꾹 참고 일주일에 1회만 가다보니 갈 때마다 근육통만 심하고 정작 근육이 붙는 것 같지는 않았다.



헬스장, '인싸'가 아니라 미안해


가압 트레이닝 기간이 끝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집 앞 헬스장에 등록했다. 나름 비싼 체인점이라 내부에 골프연습장과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헬스장 등록하는 데만도 비용이 꽤 들었기 때문에 개인PT까지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시설이 좋고 집에서 가까우니까 자주 가서 운동할 수 있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일단 그 지긋지긋한 사전 예약의 늪에서 벗어난다는 점이 기뻤다.


내가 다닌 헬스장은 처음 간 회원에게 30분 정도 운동기구 사용법을 알려주고 운동루틴을 정해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새로운 루틴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해도 된다'고 했다. 엥, '말해도 된다'는 뭐야. 말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이번에도 딱 3개월만 등록하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맨 처음 가니 키 큰 청년이 등장해서는 나 같은 초보자가 3~40분 정도 할 수 있는 근력운동 루틴을 적어줬다. 순서와 중량까지 딱 정해져 있어서 처음 한 달 정도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가서 시키는대로 운동했다. 근력운동을 다 하고는 넷플릭스 보며 러닝머신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거나, 시간이 맞으면 복싱이나 체조 같은 부대 프로그램을 들으러 가거나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매번 같은 순서와 패턴으로 운동하는 게 지루해졌다. 새로운 기구도 써 보고 싶은데 첨에 나 가르쳐줬던 키 큰 청년은 타이밍이 안 맞는지 잘 보이지 않고, 어쩌다가 보이는 날도 다른 회원을 가르쳐주고 있거나 해서 말 걸기가 어려웠다. 나 새로운 운동 해 보고 싶어 가르쳐줘! 라는 말이 왜 그렇게 입 밖으로 안 나오던 건지.


그러던 중에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가 집에 왔다 가고, 골든위크(4월 말부터 5월 초 일본의 연휴로, 올해는 10일 정도 쉬었다) 기간에 나도 1주일 넘는 기간 여행을 다녀오면서 어영부영 두 번째 달은 헬스장에 거의 가보지 못하고 가 버렸다. 말하자면 운동 패턴이 끊겼다.


그리 되어버리니 헬스장도 내 길이 아닌가보다 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키 큰 청년에게 말 걸기도 더 망설여지게 되어 세 번째 달은 그냥 그렇게 가네마네 하다가 아깝게 흘러가고 말았다.



요가와의 첫 만남


헬스장을 그만둘때쯤 회사 근처 요가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일본에는 프랜차이즈 요가학원이 많이 있다. 내가 등록한 요가학원은 꽤 큰 체인이라 도쿄에만 13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전 지점을 이용할 수 있는 요금 플랜을 끊어놓으면 전국 어느 지점이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내 경우에는 회사에서는 도보 5~10분 거리에 2개, 집에서는 지하철 한두 정거장 거리에 2개 지점이 있어서 총 4개 지점 중 원하는 곳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평일에는 회사 근처가, 주말에는 집 근처가 편한데 둘 다 선택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예약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지점별 시간표를 확인해, 원하는 클래스를 신청하는 방식이었다. 가끔 인기 많은 수업은 일찍 마감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당일 예약해도 무리 없는 정도다. 또 당일 취소시 약간의 패널티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취소가 가능하긴 했다. 무엇보다 그때그때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운동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 근데 몸이 정말 뻣뻣한데. 유연성이 없어도 요가 할 수 있는 건가요? 상담 선생님을 붙들고 온갖 걱정을 쏟아내니 다 괜찮다고 한다. 요가는 내 몸을 관찰하고 내 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움직이면 되는 거라나? 그냥 하는 말 같았지만, 그조차도 요가학원의 릴랙스~ 한 분위기에서 들으니 왠지 그런가 싶었다. 아 네 등록할게요.


요가는 가격 면에서도 여태까지 전전했던 운동중에 제일 저렴했다. 1개월 단위로 갱신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아니다 싶으면 바로 관두지 뭐. 그렇게 요가를 시작했다.




겪어봐야 아는 요가의 맛


실은 어제 자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TV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허지웅이 나왔는데, 평일 오후 요가학원에 가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요가를 한다. 요가학원에 다녀보니 저 장면이 이해가 된다. 맞아맞아. 평일 저녁이나 주말반은 상대적으로 '나랑 비슷한' 직장인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삐걱삐걱 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일 오후는 양 극단으로 나뉜다. 전문가에 준하는 요기(Yoggy)들이 기상천외한 동작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임산부나 출산 직후의 엄마들을 위해 쉬엄쉬엄 하거나 한다.


그리고는 허지웅과 한혜진이 요가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거 참 너무나 공감이 된다. TV 속으로 들어가 두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는 없으니 브런치에라도 글을 써 보기로 했다.


가압 트레이닝과 헬스장 사이에 4~5개월 정도 쉬엄쉬엄, 그리고 새로운 학원에 등록한 후로 6개월 정도 꾸준히 해서 도합 1년 정도 요가를 하고 있다. 아직도 유연성 부족으로 무릎을 접어가며 어설프게 동작을 따라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 속도에 맞춰 기본 자세들을 착착 해낼 수는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해도해도 잘 안 되는 게 속상해서 가기 싫었는데, 기본 자세들이 어느정도 몸에 익으니 이제는 시간만 나면 가고싶다. 시도때도 없이 요가학원 스케줄을 확인하는 요즘이다.


뭐가, 왜 좋냐면 글쎄요.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그 무엇인가가 있다. 몸은 개운하고 마음은 충만해지는 것.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고, 끝날 때 사바사나 자세로 가만히 누워서 눈 감고 호흡하는 등 요가만의 리츄얼(Ritual)을 마치고 나면 왠지 오늘 하루도 충실하게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외에도 이유는 많지만 글로 적는다고 와 닿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말을 아낀다. 요가의 맛은 정말 겪어봐야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요가하러 간다. 운동 뭐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요가 라고 대답하면 요가도 운동인가요? 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운동과 담 쌓고 살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이렇게 자발적으로 운동하러 - 운동이라는 말이 안 어울린다면 몸을 움직이러 간다고 해도 좋다 -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요가에 감사한다.


운동은 여전히 싫지만, 요가는 좋다.

앞으로도 꾸준히 요가하며 내 몸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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