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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수 Jan 29. 2020

한국 소설을 읽는 재미

2019년을 즐겁게 해 준 베스트셀러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해 보자.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특히 젊은 작가들 소설을 읽는 데 푹 빠졌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될 것을, 왜 그런지도 한 번 생각해본다.


음 아마도... 내 또래 사람들이 생각할 법한 이야기이기 떄문이 아닐까?

필자도 30대 초반을 맞이하면서, 30대 초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어느덧 또래 집단에 들어왔다.


심심풀이로 요즘 읽은 소설의 작가들이 각각 몇살인지 알아봤다.


<피프티 피플>의 정세랑 작가와 <내게 무해한 사람>의 최은영 작가가 84년생,

<일의 기쁨과 슬픔>의 장류진 작가가 86년생,

<대도시의 사랑법>의 박상영 작가가 88년생. 등등.


필자는 90년생, 대학교에는 09학번으로 입학했다. 정세랑 작가와 최은영 작가는 입학하자마자 동아리에서 만났던 03학번 대선배 언니들, 장류진 작가는 가끔 동아리방에 가면 만날 수 있던 05학번 언니, 박상영 작가는 '새터'에 와서 기껏 인사했더니 얼마 안 가 군대에 가 버린 07학번 오빠 정도가 아닌가. 말하자면 어찌어찌 상황만 잘 맞으면 같이 수업도 듣고 학교도 다녔을 법한 나이 차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god와 H.O.T 정도의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아이돌을 좋아하며 자랐고,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동안 비슷한 사회의 변화와 이슈를 접하며 머리가 굳어졌다. 아하. 그러니 이들 작가들이 써내려가는 소설 속 이야기들이 조금 더 공감이 잘 될 수 있었겠다.


20대 초반에 듣는 30대 초중반의 이야기와,

30대 초반에 듣는 30대 초중반의 이야기는 완전 다르게 느껴질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소설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2019년에 필자가 읽은 한국 소설을 다 늘어놓으려면 솔직히 끝도 없으니, 일단은 교보문고의 2019년 국내소설 베스트셀러 1위부터 20위까지를 펼쳐놓고 시작한다. 이걸 다 읽었다는 뜻은 아니고, 이 중에 필자가 읽은 책에 대해서만 이러쿵 저러쿵 감상평을 적어본다. 혹시 이 책 읽을까말까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결정에 참고가 되시기를.



1위,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이 책은 2019년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기는 하지만, 출간된지는 꽤 됐다. 필자는 2017년 3월에 읽었다. 그때도 82년생이면 01학번이니까 동아리 홈커밍 데이에서 얼굴 정도는 봤을수도 있겠다 라고 학번 기준으로 나와의 거리를 계산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다. 워낙 많이 이야기가 되어 버려서 내 얘기까지 얹기가 피곤하다고나 할까. 대신 3년 전 책을 읽고 썼던 감상문을 운 좋게 발견해 그 중 몇몇 문구만 옮겨본다.


맘의 맘에게 기대지 않고 워킹맘이 되는 건 진정 불가능한 일일까.

소설 속 김지영씨의 롤모델 격인 김은실 팀장마저도, 캥거루맘의 주머니에 자기 아이를 넣어두지 않고서는 김은실 팀장이 될 수 없다. 씁쓸한 이야기다.


내 아내 내 딸은 가장인 내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여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걸까?

김지영 씨를 담당한 정신과 의사의 태도가 인상깊었다. 그는 김지영 씨를 보며 자신의 아내를 떠올린다. 육아 때문에 일을 관두고 집에서 초등학교 산수문제를 풀며 즐거움을 찾는 게 안타깝다고 한다. 하지만 내 동료가 육아 때문에 1년 쉬겠다고 하면? 아 역시 이래서 여자는 안돼. 다음번엔 여자직원을 뽑아야겠어. 이런 이중적인 태도 놀랍지도 않다.


책을 읽다보면 왜 이상하게 배가 고픈지. 초코빵 한 입 베어먹고 우유 한 모금 머금고서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6위,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8위, <쇼코의 미소>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을 2018년 10월에 읽었다. 그렇게 최은영 작가를 처음 알게되고 벅찬 마음에 데뷔작인 <쇼코의 미소>를 조금 나중에 찾아읽었던 기억이다. <쇼코의 미소>가 2016년에 출간됐으니 두 작품 사이에 2년 남짓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 작가의 필력이 더 무르익은 것인지 굳이 비교하자면 <내게 무해한 사람>이 훨씬 좋았다.


MSN, 버디버디, 싸이월드 같은 말들 속 '그 여름'이 내 학창시절을 함께 소환하는 것 같아 두근댔다. 어른이라는 말이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계절들, 제3자는 알겠으나 당사자는 죽어도 모르는 마음.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상처주고 마는 순간들까지.


예민한 감수성으로 묘사해 낸 문장들에 때로는 멈칫하고 때로는 울컥하고 때로는 잠깐 멈춰 서 문장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평소에 책을 굉장히 빨리 읽어치우는 편인데 이 책은 오랜만에 꼭꼭 씹어가며 읽었고, 그 이후에도 이 책이 생각나는 날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최은영 작가님 사랑해요.



13위,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매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오면 꼭 사보는 편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 말고는 진짜진짜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작품은 없었고, 늘 대상보다 우수상 수상작을 더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특히 올해 대상 수상작인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게 보여서 오히려 소설로서의 매력은 적다고 느꼈다. 심사위원들이 대상 수상작을 선정할 때 최근 사회 이슈를 반영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게 아닐까? 그래도 희연(여성)과 정민(남성)의 관계를 놓고 한쪽 이야기만 하지 않고 양쪽 입장을 골고루 보여준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장강명 작가의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무난하게 좋았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착취구조, 약자끼리의 경쟁 등 사회 이슈에 관심 많은 요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의도가 너무 빤하지도 않고, 이야기도 맛깔나게 잘 짜여 있다.


하지만 수록 작품 중 제일제일 좋았던 건 최은영 작가의 <일 년>이었다. 3년차 선배와 인턴 직원이 과연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을까? 그게 될 듯 될 듯 결국은 잘 안 되는 게 세상사 아닌가. 선배와 인턴의 관계에 미묘한 균열이 발견되고, 한 번 발견된 균열이 좁혀질 줄 모르는 상황이 십분 공감됐다.


선배, 인턴이었던 적 없죠?


이 한 문장에 가슴이 푹 찔리는 기분, 그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툭 내뱉은 말들을 떠올리며, 그간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다희들이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최은영 작가님 사랑해요.



17위, <바깥은 여름> 김애란


최근에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누군가 내게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김애란이라고 답한다. 김애란 작가님 사랑해요. 일본에 있으면서도 <바깥은 여름>이 출간되자마자 구해서 읽었다. <비행운>도 충분히 좋았는데 <바깥은 여름>도 역시나 너무 좋았다. 아이고 세상에.


가령 <건너편>은 삭막한 노량진 공시촌에서 잠시 피어났다 금세 사그라들고 만 사랑 이야기다. 김애란 작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먹을 것에 대한 문장에 담긴 심상이 풍부하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아니 대체, 설렁 끓인 된장국 이라는 표현을 생각해내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도화는 이수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꽃냄새, 바람 냄새가 아닌 습기 찬 식당을 가득 메운 압도적인 밥냄새, 설렁 끓인 된장국과 깍두기 냄새를 떠올리곤 했다.


두 사람은 20대에 만났지만, 청량함 대신 밥 냄새로 서로를 기억한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30대가 되어서는 흰색 플라스틱 식판에 받아 먹는 단체급식 대신 나물 반찬을 먹는다. 김애란의 소설에서는 그 변화를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놀라운 관찰력과 표현력으로 한 문장만에 이해시켜준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숯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 소설집에서는 어느 작품을 제일 좋아한다고 짚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든 작품이 다 좋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려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해 본다.



19위, <피프티 피플> 정세랑


400쪽이 채 안 되는 책에 50명이나 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겠다니, 신선하고 또 신기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E-Book으로 읽었는데, 한 챕터 한 챕터가 짧아 지하철 타고 가며 가볍게 읽기 좋았다. 동영상이 10분을 넘어가면 조회수가 확 떨어진다는 유튜브 시대에 딱 맞는 형태가 아닌가.


그뿐 아니다. 작가가 참 심혈을 기울여 쌓아올린 이야기라는 게 느껴진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어디선가 익숙한 사람 이름이 등장해 어라? 하고 앞 챕터를 뒤져보면 그 사람이랑 그 사람이랑 관련이 있다는 게 밝혀지고, 심지어는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쯤이면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던 50명을 한 곳에 모으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독자는 여태 정세랑 작가의 손바닥에 놀아났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도 기분나쁘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 후룸라이더인 줄 알았는데, 눈 뜨니 롤러코스터 위에서 신나게 활강하는 스릴이랄까.


이 쯤 되니 대체 정세랑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좀 읽어보고 싶다. 생각보다 꽤 작품이 많아서 어느 작품부터 읽어야할지 고민중이다.





소설에 대해 쓰니 재밌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한국 소설들. 흐흐.


그러고보니 올해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발간 안 되는 것인가. 최은영, 김금희, 이기호 등 수상이 예정된 작가들이 저작권 문제로 연이어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하긴. 내가 너무 사랑하는 김애란 작가의 <침묵의 미래>도 2013년에 이상문학상을 받고 4년이 지난 2017년에야 비로소 단행본에 수록이 되어야 했으니. 계약조건이 너무 과하기는 하다.


어쨌든, 독자인 내 입장에서야 어떻게 결론이 나든 잘 정리가 되어서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들을 읽을수만 있게 되면 좋겠다. 아, 얼른 주말이 와서 맘 놓고 책 읽을 시간이 나기를 바란다.


생각보다도 훨씬 길어진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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