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내 일상을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고, 주말이면 어디 갈 데도 없이 답답하고, 어딜 가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강박적으로 챙기며 스트레스 받는다는 등등. 나쁘게 생각하면 끝도 없다. 반면 좋은 일은 정말 하나도 없을까?
순전히 내 마음을 위로하려고 써 본다. 코로나 시대에 찾은 소소한 행복.
테이크아웃 옵션이 많아졌다
재미있는 통계를 봤다. 2020년 2월 우버이츠 가맹점이 3천개였는데, 몇개월만에 2만개가 넘었다는 것이다. 우버이츠 옵션도 많아졌고, 집 근처 식당 중 테이크아웃 영업을 새로 시작한 곳들도 많아져서 요리하기 귀찮을 때 사먹을 수 있는 옵션이 아주 많아졌다.
테이크아웃을 한 번도 안 하던 가게들이 이번 기회로 새롭게 테이크아웃 간판을 내 건 경우도 많은데, 역시 만만한 건 카레인지 거리를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카레 냄새가 풍겨와서 좀 웃긴다. 물론 그 종류에 카레만 있는 건 아니어서 콧대높은 스시집에 이탈리안 레스토랑까지 선택범위가 아주 다양하다. 철판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오코노미야키 집이 테이크아웃을 시작했다고 했을 땐 좀 놀라기도 했다.
1인가구 입장에서 식당에 혼자 앉아 밥 먹기도 좀 민망하고, 그렇다고 딱 1인분씩 요리해서 먹고 치우기도 귀찮은데, 테이크아웃 해다 먹을 수 있는 메뉴 선택지가 넓어진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소비가 줄었다
사실 소비하고 싶어도 소비할 데가 없어서 하는수없이 줄어든 거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비가 줄었다. 많이.
한국은 백화점이든 쇼핑센터든 확진자 동선에 겹치지 않는 한 휴업은 하지 않고 유지했던 것 같다. 일본은 긴급사태 선언을 전후해서 웬만한 쇼핑몰들이 다 휴업상태다. 인테리어 가게인데 한켠에서 생활용품을 같이 판다든지, 뭐 이런 애매한 경우에는 각 가게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나는 생필품 가게다!"라고 주장하며 문 여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쇼핑을 하고 싶어도 쇼핑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된 건 사실이다.
생각해보니 이번 계절에는 옷 한 벌 새로 사지 않고 보냈다. 봄이 오면 신발을 하나쯤 사자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신발장 속에서 안 신던 운동화를 꺼내서 잘 신고 있다. 모양이 안 예뻐서 영 손이 안 갔던 신발이다. 지금이야 뭐, 산책을 직업처럼 산책만 하며 살고 있으니 편하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도 프로소비러로서 소비를 아주 쉴 수는 없어서 슈퍼를 자주 들락거리고 있다. 필요한 물건을 메모해두었다가 한꺼번에 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산책 갈 때 목적지(?)랄까 뭔가 보람이 있으면 좋으니까, 그때그때 생각나는 물건이 있으면 굳이 멀리까지 걸어가서 사가지고 오곤 한다. 오늘은 칫솔을 사고 내일은 건전지를 사고 이런 식이다. 실제로 긴급사태 선언 이후 슈퍼 매출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이거 참, 사람 마음이 다 똑같은가보다.
산책의 즐거움
아이폰에 하루 걸음수를 측정해주는 기능이 있다. 2019년 4월에 나는 평균 8,800보를 걸었고, 2020년 4월에는 6,047보를 걸었다. 내가 뭐 홈트레이닝을 따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평소에 하는 운동이라고 해 봐야 걷는 게 다인데 그 걸음수가 무려 30%나 줄었으니 걱정되는 일이다.
그래서 5월부터는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두번은 산책을 나간다. 츄리닝 차림에 에어팟 꽂고 설렁설렁 걸어다니는 것인데, 습관이 되니 의외로 좋은점이 많이 있다. 당장 우리 집 주변만 해도 맨날 다니는 지하철역 주변 외에는 별로 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특별한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다보니 안 가본 길들도 속속들이 가 보게 되었다. 골목에 숨은 식당을 발견하면 나중에 언젠가 가봐야지 혼자 찜해두기도 하고, 단독주택 담장 앞 잘 관리된 꽃밭을 보면 살짝 사진도 찍어보고, 그런 소소한 재미가 있다.
언어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어와 영어 외에 또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내가 일본에 있다보니 일본어로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이 있었다. 일본어도 아직 편하지 않은데 일본어로 외국어의 문법과 단어에 대해 설명을 들어야 한다니.
최근 코로나 여파로 Zoom, Skype 같은 화상회의에 대해 뉴스에도 많이 나오고, 업무적으로도 활용할 일이 생겨서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과외해주시는 선생님을 찾으면 어떨까?
다행히 숨고에 내가 배우고 싶은 외국어 선생님을 찾는 글을 올렸더니 열두분이나 견적을 보내주셨고, 그 중 한 선생님을 만나서 두 달 째 잘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평일 퇴근하고 Skype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오프라인 과외와 다르게 특정장소로 이동할 필요 없이 노트북만 켜면 되어서 편하다. 수업내용은 Google docs에 저장해주셔서 나중에 찾아보기도 좋고, Google docs에서 언어설정을 해 두면 스펠링 등을 자동으로 체크해줘서 공부하기에도 참 편하다.
언어 공부야말로 여러 의미로 이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도전하기 어려웠을 일 같다. 돌이켜보면 그 전에는 평일 퇴근 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시간 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야근을 하게 되기도 하고, 퇴근 후 회식이나 모임이 있기도 하고 등등. 어떤 이유로든 한 번 리듬이 깨지고 나면 왠지 해이해져서 습관을 만들기가 어렵다.
어렵게 시작했으니만큼, 앞으로도 여러 상황에 맞춰서 어떻게든 계속 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뭔가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졌다
일본에는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골든위크라는 장기연휴가 있다. 이번에는 휴가를 이틀만 내면 8~9일 정도 연속으로 쉴 수 있어서 작년 여름 무렵부터 이 기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공백을 공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엇으로든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이.
직장을 다니다보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 묶여있다. 여름휴가나 연휴를 맞으면 그 기회에 어떻게든 직장과는 거리가 먼 경험을 해야 할 것만 같다는, 그리고 조금 더 속마음을 덧붙이자면 그 경험을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전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 여행의 기억이 다 강박관념의 결과였다는 식으로 도매급으로 매도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각각의 여행이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고,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리고 여행지에서 충분히 행복감을 느꼈다. 그냥, 지금 와서 돌아보니 내 여행의 동기 중 어느 한 부분은 좀 비뚤어져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반성의 마음이 든다.
솔직히, 일본에 와서 매 해 골든위크와 연말연시 휴일은 숙제 같은 거였다. 그 긴긴 시간동안 일본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 공백이 너무 길게 느껴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비행기표를 사는 건 공백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의식이었다. 목적지가 유럽이 됐든, 한국이 됐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여행 계획이 다 취소되고 도쿄에 혼자 틀어박혀 보냈던 골든위크는 아주 특별했다. 왜 특별했느냐면, 특별한 일을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연휴 내내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커피 내려먹고, 창 밖의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바라보고, 읽고싶던 책을 읽다가, 넷플릭스로 드라마 보다가, 해질녘 산책 다녀오곤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편안하게 보내다보니 길 줄만 알았던 연휴가 금세 지나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당장 내 고국인 한국에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도. 더군다나 예전처럼 동남아로 유럽으로 휴일만 생겼다 하면 비행기 타고 휙휙 날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되든, 그 세상 속 나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휴일에 대해 그리고 여행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아무 계획도 없는 휴일을 지금보다는 덜 두려워하며, 때로는 과감하게 공백을 공백으로 두기로 하는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지.
어떤 일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다고 믿는 편이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이 글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행복은 나누면 더 커진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내가 찾은 소소한 행복을 조금 나눠가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