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캠피싱은 왜 일어나는가?
얼마 전 우연히 TV를 보다 굉장히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인천에 사는 13살 아이가 몸캠피싱 협박에 시달리다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15살도 아니고 18살도 아닌, 13살이 몸캠피싱을 당했다니! 몇 년 전 대학생이 몸캠피싱 협박으로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엄청 놀랐었는데, 어떻게 13살 어린아이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몸캠피싱이란 매우 교묘한 사기 방식이다. 범죄자는 호감이 가는 여성이라며 피해자에게 접근해 마음을 먼저 무장해제시킨다. 이후 단계적으로 피해자를 유혹하여 노출하기 부끄러운 신체 일부를 보여달라 요구한다. 피해자는 이미 형성된 관계를 깨기 싫어 순순히 이를 따른다. 이런 돈독한 관계 설정을 위해 범죄자는 사전에 치밀하게 피해자의 마음을 산다. 범죄자는 사전에 몸캠 협박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한 뒤, 피해자의 영상을 녹화한다. 녹화를 마치고 충분한 자료를 확보한 직후 범죄자는 돌변한다. 영상으로 협박하는 악마로 변신하는 것이다.
범죄자의 협박 방식은 가혹하다. 이미 확보한 피해자의 민망한 영상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보내겠다고 지속적으로 협박을 한다. 이는 몸캠 협박 앱을 통해 피해자의 연락처와 문자 내용 등을 이미 해킹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영상을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하고, 실제로 유포하기도 한다. 이는 민감한 사춘기의 13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13살 아이한테 빼앗을 것이 뭐가 어디 있다고 이런 짓을 벌였을까?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범죄자들이 몸캠피싱 사기를 벌이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노리는 대상은 사실 어린아이가 아니라, 협박했을 때 지불 가능성이 높은 남성들이다. 몸캠피싱 피해 총액은 2016년에 몇 천만 원 수준이던 것이, 2019년 에는 55억을 넘어섰다. 아마도 실제 피해액은 이 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다. 55억이란 숫자는 수사기관에 보고된 공식 피해액만 집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피해자가 급증하여 그 피해액은 훨씬 많아지는 추세다.
범죄자들은 모두 IT기술에 능통한 블랙해커들일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최근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다크웹 추적 서비스 내에서는 심심치 않게 몸캠 협박 앱을 판매한다는 글을 볼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공개하기 힘들지만, 범죄자들은 IT기술이 없이도 관련 정보를 습득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몸캠피싱 피해자들은 외롭고 마음 둘 데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란 감정적인 동물이 아니던가. 마음이 허하면 이성이 동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외롭고 공허한 가운데 아름다운 이방인이 보낸 몇 마디 말이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그 따뜻한 말 몇 마디를 받고 응하다 보면 순식간에 범죄자에게 말려들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쉽게 당할 수 있다. 범죄자는 마치 디지털 그루밍하듯이 아이들을 길들여 장악한다. 아이들은 어리고 마음이 약하다 보니 범죄자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 수 있다. 아이들은 결국 가스 라이팅 당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순순히 본인의 영상이나 신체의 일부 사진을 범죄자에게 제공하는 이유다.
굳이 몸캠피싱을 당하지 않아도 피해자들이 스스로 본인의 신체를 노출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SNS를 통한 포스팅이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십 대인지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갖고 있다. 가끔 아이들의 계정을 통해 십 대들의 일상을 엿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조금은 우려스러운 생각이 든다. 십 대 아이들이 본인의 신체 일부 사진을 자랑스럽게 포스팅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살, 분홍빛 도는 예쁜 입술, 아직 아기 같은 손, 매끈한 허리, 쭉쭉 뻗은 다리~ 내가 봐도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다양한 사진 필터 앱들이 있으니, 포즈도 다양하고 재미있다.
이렇게 노출된 사진들을 나는 엄마의 눈으로 사랑스럽게 보지만, 누군가는 음흉한 눈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 ?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악용될 우려가 있는 포즈의 사진을 의심없이 포스팅한다. 신체 사진을 누군가에게 공유하는 것에 대한 민감성도 떨어지는것 같다.
이런 신체 노출을 더욱 과감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가 아이의 사진을 포스팅하는 경우다. 부모는 아이의 목욕하는 모습이나, 오동포동한 엉덩이가 너무 귀여워 '수위 높은 노출 사진'을 별생각 없이 SNS에 올린다. 유아기 부모의 경우는 더욱 과감하다. 주요 성기 부분만 하트나 별 모양으로 가린 알몸 사진들을 수시로 자랑스럽게 올린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사진들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범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별생각 없이 올린 우리 아이의 알몸 사진이, N번방 사건을 통해 알려졌던 아동 성매매 사이트의 홍보용 썸네일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는 종종 일어난다.
아이의 사진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배제하고서라도, 자기 결정권이 없는 아이의 사진을 함부로 노출하는 것은 아동 인권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까지 조심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IT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개인의 정보 공개에 더욱더 주의해야 한다.
가급적 신체가 노출된 사진을 포스팅하거나, 자기 결정권이 없는 아이의 노출 사진은 올리지 말자. 영상으로 협박하고 장난치는 악마들이 어딘가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이를 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