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특별한 칠순 잔치 2021/10/07~09
나의 엄마인 박*희 여사는 8남매의 둘째 딸로 ‘1952년 11월 1일’ 태어났다. 즉, 2021년은 엄마의 칠순이 되는 해이다. 올해가 시작되자 나는 문득 2년 전 큰이모의 칠순 잔치가 떠올랐다. 큰이모는 나를 포함한 일가 친척 모두를 부여에 있는 롯데리조트에 초대했다. 이모는 2박 3일 동안 리조트 시설뿐 아니라 진수성찬을 모두에게 제공했다. 잔치를 즐겼지만 나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2년 뒤가 벌써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큰일이다! 칠순잔치…! 이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구나!”
엄마와 나는 올해 초부터 칠순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히 나누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행사를 한다는 것이 불투명했기에 명확한 계획을 세우기 힘들었다. 결국 7월이 되자 엄마가 큰 결심을 하듯 말씀하셨다.
“무슨 잔치를 하니~ 이런 시국에? 나는 그냥 형제들끼리만 여행 가련다. 다들 전라도 지역에 살아서 부산은 자세히 본 적이 없으니, 부산 여행하게 숙박하고 렌트카 정도만 예약해다오! 날짜는 10월 초로~ “
엄마의 큰 결심 덕분에 칠순 잔치는 이렇게 8남매 그들만의 특별한 여행으로 바뀌었다.
8남매들끼리만 가는 여행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다들 나이 대에 비해 건강한 편이시지만, 젊은 사람들처럼 자유여행을 다니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최대한 편안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부터 폭풍 검색이 시작되었다. 호텔 예약 플랫폼과 AirBNB를 시간 날 때마다 뒤졌다. 가장 큰 난관은 8명이라는 인원이었다. 8명 정도의 인원이 한꺼번에 숙박을 할 만한 좋은 숙소를 찾기 힘들었다. 이런 숙소는 주로 젊은 청년들이 MT 가는 공간들이 주로 많았기에,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2인씩 나누어 호텔에 숙박하는게 어떻겠냐 엄마에게 물었지만, 다들 불편해할 것 같다고 싫어하셨다.
여러 날의 검색 끝에 드디어 AirBNB 플랫폼에서 적당한 곳을 찾았다. 해운대 백사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팔레드 시즈’라는 70평의 콘도였다. 가장 후기가 많고 평점이 높은 호스트를 찾아 예약을 했다. 부산 최고의 휴양지인 해운대 근처의 콘도임을 감안하면 하룻밤 비용이 약 40만원 정도로 내 예상보다는 저렴했다. 8명이 한꺼번에 묵기에 아주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렌터카가 남았다.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종류의 승합차들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여행하는 부산 지역을 렌터카만 예약해서는 쾌적한 여행을 다니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은 누가 할 것인가? 여행지는 누가 검색할까? 또, 맛집 검색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물론 8남매 중 비교적 젊은 두 명의 삼촌들이 있으니 그들이 열심히 알아보겠지만, 너무 고생스러운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지 가이드가 포함된 승합차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막상 그렇게 찾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장시간의 검색 끝에 ‘부산기장준투어’라는 곳을 찾았다.
이곳은 고객 맞춤형 현지 가이드와 맛집 추천은 기본이고, 고객이 원하는 곳에서의 픽업과 드롭다운을 모두 해주는 곳이었다. 또한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투어를 시작하고 끝내도록 배려해 주었다. 모든 동선이 편하고 단순해야 하는 어르신들에게는 딱이었다.
게다가 ‘연예인 밴’으로 유명한 쏠라티리무진이라니! 나는 구경도 못해본 억대의 쏠라티리무진을 태워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나는 23세에 이른 취업을 했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야 했다. IMF로 파산 지경인 가정 상황에서 취업을 했기에 서울의 반지하 월세 방조차 마련할 돈이 없었다. 이때 서울 변두리에 살고 있는 큰이모 가족이 나를 함께 살도록 받아주었다. 그 당시를 기억하면 큰이모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모네 가족 4명은 작은 월셋방에 살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까지 받아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큰이모는 기꺼이 나를 재워주고 먹여줬다. 만약 큰이모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이겨냈을까?
2008년은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던 해였다. 다른 일이 더해지지 않아도 이 두 가지 상황만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그런데 그 해에 엄마가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으셨다. S/W 엔지니어였던 나는 그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밤을 새며 일하는 도중 엄마가 수술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앞에 캄캄했다.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눈물만 흘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 때 구세주와 같이 간호사인 막내 이모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모는 근처의 실력 있는 대학 병원과 그 분야의 권위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수술 이후 항암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시기에는 넷째 이모가 기꺼이 본인 집에 엄마를 모셨고 간병을 해주셨다. 넷째 이모는 전라도 광주 변두리에서 축산업을 하고 계신 부농이라 꽤 큰 집을 갖고 계셔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엄마와 나는 어떻게 그 힘든 세월을 살아냈을까?
수많은 조카들이 있음에도, 자식처럼 생각하고 나를 아껴주었던 삼촌들~ 졸업식 입학식을 챙겨주고 크고 작은 선물을 주셨던 셋째 이모~ 지금까지도 매년 김장김치와 햅쌀을 보내주시는 넷째 이모~좋은 식재료나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챙겨서 가져가라 부르는 근처 사시는 다섯째 이모~
그들이 없이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오고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지만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그들에게 크고 작은 빚을 지며 살고 있다.
여행을 준비하며, 그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격려가 드라마의 장면들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평소에 전하고 싶었던 감사의 마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꼭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을 알기에, 최고의 여행이 되었으면 했다.
분명 여행은 8명만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행이 시작된 첫날 오전 갑자기 8남매 중 다섯 째인 큰 삼촌이 카카오톡 그룹방을 만들고 17명 조카들을 모두 소환했다. 갑작스런 집합에 처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는 모두 사촌 관계이기는 하나, 사는 지역이나 나이대가 매우 다양했다. 가장 나이 많은 이가 사십 대 중반부터 시작해 가장 젊은 이는 20대 초반이었다. 아주 가끔 가족행사에서 얼굴은 보지만 목례 정도만 할 뿐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은 사촌들도 있었다. 다들 이런 조합으로 모여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어색함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금방 그 어색함은 눈 녹듯이 없어졌다. 본인의 엄마아빠 사진이 실시간으로 멋진 배경과 함께 올라오니 다들 신이 났다.
“우리엄마가 제일 미인이네~”
“울 엄마는 왜 자꾸 눈을 감는 거야~ 졸린가보네~ ”
“예쁜 옷 사줬는데 안 입고 왜 저런걸 입고 나간거야~ 속상해 진짜~ ”
“울 엄마 창백한 얼굴 보소~ 케이블카 타고 겁 먹었나 보네~ ㅋㅋㅋ”
큰삼촌은 투어 장소가 바뀔 때마다 사진을 계속 공유해 주셨다. 첫째 날은 “태종대->송도해수욕장->국제시장->용두산공원->해운대 유람선투어”를 하셨다. 둘째 날은 오륙도 스카이워크와 기장 지역 해변을 중심으로 드라마 배경지와 바닷가 절경들을 주로 구경 다니셨다.
카카오톡 그룹창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며 2박 3일동안 신나게 실시간으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다 함께 여행을 간 것만 같은 신비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IT 기술을 이용한 메타버스 여행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간을 초월해 다 함께 여행하는 이 신기한 기분이란~
여행을 직접 간 사람은 8명이지만, 그것을 함께 즐긴 이는 17명이 더해져 총 25명이었다. 즉 이 여행은 25명이 함께 한 여행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여행을 관전하며 진정한 여행이란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즐거워하고 공유’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여행을 가기 위해 계획하고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이유는 뭘까? 이런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하고 추억을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큰삼촌이 카톡 그룹창에 실시간 사진 공유를 해준 덕분에 엄마의 칠순 여행이 특별한 여행으로 바뀌었다. 이 여행은 원래 8남매인 그들만 즐거웠을 여행이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들의 자녀까지 함께 웃고 즐긴 ‘신비한 여행’이 된 것이다.
8남매는 이번 여행이 끝난 뒤, 함께 여행 다니기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여행계’를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8남매 모두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하나라도 아프다면 ? 그중 하나라도 먼저 이 세상을 떠난다면 ?’
다들 나이대가 높은 편이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들이 함께 했던 순간들이 더욱 귀하고 유일하게 느껴진다.
‘8남매의 신비한 여행’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쭉~ 이어지기를…
건강하게 재미난 추억과 행복한 시간들 많이 만드시기를…
8남매의 막내가 칠순이 되는 그날까지!! 다들 즐겁게 여행 다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