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육아기
안드로이드 OS 업데이트로 인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만든 보안제품에 골치아픈 문제가 생긴 날이었다. 모바일 앱의 보안을 책임지는 제품이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사의 앱도 함께 영향을 받는 상황이었다. 나는 제품 개발부서를 총괄하고 있었기에 이를 대응하느라 하루종일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등학교 3학년 첫째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의 사범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 예린이가 학원에 와서 운동을 안 하고 구석에서 3시간째 계속 울고 있어서요~ 집에 가고 싶냐고 물어도 안 가겠다고 하면서 계속 울기만 하네요. 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걱정이 되어 전화를 드렸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
갑자기 마음속에 불안이 엄습해 왔다. 항상 차분하고 모범생이던 아이의 성향상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범의 목소리에 혹시나 집에서 아이를 학대한 건 아닌가 라는 의심섞인 우려도 느껴졌다.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 해야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사범에게 잠깐만 아이를 데리고 있어 달라 양해를 구하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학원에 도착하니, 아이는 거의 실신 상태였다. 학원의 훈련장 구석에 힘없이 뒤돌아 누워 있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고, 얼마동안 울었는지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아이의 표정은 마치 상처받은 짐승 같았다.
집에 가자 예린아~ 왜 이러고 있어?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아이는 처음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더니, 결국 포기한 듯 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버티는 아이를 끌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예린이는 태권도 학원 사건 이후 거의 일주일간 아침 저녁으로 계속 울기만 했다. 사람의 눈에서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눈물이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아이가 왜 이럴까? 왜 이렇게까지 슬퍼할까?
짐작이 가는 사건이 있긴 했다. 아이를 어렸을때부터 키워주신 엄마, 즉 아이의 외할머니가 갑자기 멀리 이사를 가게 된 사건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저녁 식사를 챙겨주는 것 외에 큰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다. 엄마도 손주들의 육아를 오랫동안 하셨기 때문에 이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셨으면 했다.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니 부모인 우리 부부의 육아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무래도 보육보다는 교육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의 복잡한 생각을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아이를 무시한 이 결정이 예린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고 폭력이었는지 알게 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린이는 울고 또 울었다. 학교에서도 울고 학원에서도 울었다. 도저히 내 선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에 도움을 청했고, 심리 상담을 권유받았다. 처음에 심리상담을 받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선뜻 시작 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를 보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린이 심리상담으로 유명한 서울의 한 센터를 소개받고 상담을 시작했다.
약 2시간에 걸린 첫 상담 결과 , 상담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아 우울증입니다!
네? 우울증이요? 아이가 무슨 우울증에 걸리나요 ?
네~ 아이도 충분히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린이의 경우엔, 아주 오래전부터 쌓아온 감정이 폭발한 거라 현재 조금 심각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회복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어머님과 같이 아이가 노력한다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는 태어난지 4개월만에 엄마인 나와 생이별을 했다.
예린이를 낳은 뒤 회사에서는 나에게 충분한 육아휴직을 제공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바쁘게 일만 하던 일중독자였고, 그 무렵 수원에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이웃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몸과 마음은 육아로 눈코뜰새 없었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단 둘이 집에 있어야 하는 단조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항상 많은 사람들과 북적대고 다양한 일과 변화를 즐기던 나로서는, 조금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결국 아이가 태어난지 4개월이 되던 차,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다행히 부산에 계신 시댁 어르신들이 아이가 어린이집 갈 수 있을 때까지는 맡아 길러 주시겠다고 했다. 남편과 의논 후 회사에 복귀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태어난지 4개월만에 나와 남편을 떠나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아이는 생후 18개월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예린이가 생후 18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이 태어난 뒤 예린이는 다시 우리 부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데 예린이가 부산에서 지낼 때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다. 근처에 사는 아이 할머니의 언니인, 이모할머니었다. 그 분은 홀로 외롭게 사는 분이었는데, 본인의 모든 정성과 사랑을 아이에게 다 쏟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이모할머니를 본인의 할머니보다 더 좋아하고 따랐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런 아이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 동생도 태어났으니 이젠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렇게 또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태어난지 18개월만에,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고 사랑했던 이모 할머니와의 생 이별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다시 수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를 낳은 뒤 나는 약 7개월 만에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다.
IT엔지니어였던 나는 야근과 해외 출장이 잦았다. 공무원인 남편은 나보다 퇴근 후 여유가 있고 휴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혼자 두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많았고, 너무 무리한 나머지 몸살이 나기를 반복 했다. 남편은 내가 셋째를 낳은 뒤 해외 출장을 가는 악몽까지 꾸며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친정엄마에게 SOS를 보냈다. 결국 아이가 네 살이 된 무렵부터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예린이는 외할머니를 너무 좋아했다. 할머니가 직접 손뜨개로 만들어주는 목도리와 모자를 좋아했고, 날마다 예쁘게 땋아주고 빗어주는 헤어 스타일을 자랑스러워했다. 외할머니와 함께 발레 수업도 가고, 수영장도 함께 갔다. 외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기 때문에 매일 진수성찬으로 아이를 대접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무럭 무럭 커갔다.
그런데....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떠나 버렸다.
예린이의 마음이 마침내 무너졌다. 아이는 지금까지 이미 두 번의 이별을 겪고 이를 견뎌왔다. 세번째 이별은 가장 아픈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약 6개월 간 심리상담을 받았다.
아이만의 상담인 것으로 알고 갔지만, 알고 보니 엄마인 나에 대한 상담이 그 중 절반은 되었다. 매주 아이는 소아 전담 전문가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고, 그와 별도로 다른 분이 나와 상담을 했다.
상담사는 내가 아이를 키워온 과정과, 나의 부모 그리고 나의 조부모까지~ 기억이 있는 모든 가족 상황에 대한 조사를 했다. 어떤 의도와 상황으로 나의 엄마가 나를 키웠는지, 그리고 내가 내 아이를 키웠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아이의 감정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아이를 귀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나는 그 상황에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상담 시간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가장 아이에게 미안한 것은, 감정과 인격이 있는 아이를 마치 물건처럼 취급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힘들고 외롭다고, 4개월짜리 젖먹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을 18개월과 10살에 다시 반복하게 했다. 아이가 그 상황에서 겪었을 당황스러움, 상실감,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모를거라고~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가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상담사 말대로 아이는 금방 회복되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인지~ 6개월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명랑하고 쾌활해졌다. 상담사 말로는 만약 아이가 제때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그 아픔이 생각보다 오래 갔을 거라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 갖고 가는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잘 받은 케이스라 회복도 빠르다 했다. 너무 다행이었다.
귀염뽀짝 중3이 된 지금의 예린이를 보면 상담 받았던 그 때가 아련하다. 나만 보면 졸리고 배고프다고 투털대고~ 사달라는 건 어찌나 그리도 많은지~ 내가 조금 무관심한듯 하면, 본인에게 관심을 안 가져준다 징징대며 울기도 한다. 또 조금만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깔깔거리고 뒤로 넘어가는 아이를 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싶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나를 떠난다. 아이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어 올해 3월이면 집을 떠나 살게 된다. 물론 주말마다 집에 오기 때문에 영영 떠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이렇게 나는 아이와의 이별을 연습한다.
아이가 커가며, 나도 함께 큰다. 아이를 키우며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지도 배운다.
이 귀한 생명을 품고 키워내며 떠나 보내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아마도 올해는 예린이가 아닌 내가 한바탕 눈물바람으로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박혀 3시간씩 아무말 없이 울며 청승을 떨고 있진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