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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딜라이트 Feb 08. 2022

워킹맘의 생존전략 제1부

가족의 식사편

나는 17년차 워킹맘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을 시작해 현재는 신규 사업 기획과 해외사업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일을 시작 한지는 20년이 넘었지만, 두 아이를 낳고 기른지는 약 17년 정도가 되었다.

첫째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는 시댁과 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의 육아는 온전히 우리 부부 몫이었다. 그 과정속에서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특히 아이가 아파서 돌봐야 할 때나 부부 둘다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일 때가 참 힘들었다. 내가 해외 출장이 잦은 것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니체가 그랬던가?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리 부부는 그 시간을 견뎌내며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여 더 강해졌다.

어떻게 지금까지 워킹맘인 내가 생존해 왔는지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내가 뭐 대단한 기술이나 전략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가끔 감정적이 되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해 죄책감에 휩싸이거나 생활에 필요한 정보부족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군분투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온 시간에 묻어 있는 흔적이 ‘누군가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시원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펜을 들어본다.


요리의 아름다움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2018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포레스트'다.

이 영화는 서울에 올라와 '시험도,취업도,연애도' 모두 그저 그렇거나 실패하여 지칠대로 지친 혜원(김태리)이 시골 고향집으로 내려와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살아간다는 평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혜원이 시골의 사계절을 지나며 보여주는 시원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이 작품을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봤었는데 뷰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물론 김태리라는 여배우가 아름다운 것도 한몫 했지만, 임순례 감독이 만들어가는 장면 장면이 정말 머릿속에 사진찍어 외우고 싶을만큼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혜원이 제철 농산물로 만들어 가는 맛있는 요리들이었다.

달걀과 설탕으로 정성을 다해 시간을 들여 만들어가는 디저트 ‘크렘브륄레’
마늘과 마른 고추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 고추기름으로 볶은 스트레스 폭파용 ‘고추기름 떡볶이’
제철 밤을 정성스럽게 하나 하나 까고, 설탕으로 오랜 시간 밤알을 졸여 만드는 ‘밤조림’

보는 내내 그 정성과 맛깔스런 빛깔에 반해 영화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신선하고 정성스런 요리를 날마다 해 먹으며 주인공 혜원은 점점 몸과 마음을 회복해 갔다. 그리고 더욱 성숙해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 음식은 저렇게 시간을 들이고 정성들여서 만드는 거야~ 저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 지는 거지~

하지만 나의 현실은 이런 혜원의 상황과는 정 반대였다. 나를 들여다 보니 이 영화의 첫 장면의 혜원이 떠올랐다. 삭막한 도시 속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떼우고, 살기 위해 창자를 채우는 것이지 '음식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사는 그런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가장 큰 고민이었던 “식사 준비”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고민이 되는 문제는 뭘까? 나의 경우는 “가족의 식사" 준비였다. 한참 크는 아이들은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먹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는 강박에 항상 시달렸다. 나의 친정 어머니는 요리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요리를 할 때에는 정성을 다해야 그 음식에 맛과 영양이 깃드는 거라고 나를 가르쳤다. 그런 어머니었기에 내가 아이들 먹거리 준비하는 것을 보면 자주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 식단 관리는 커녕, 나 조차 제대로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7: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고, 아무리 일찍 퇴근 하고 집에 도착해도 밤 8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주말에 미리 장을 봐 놨다고 해도 퇴근을 한 뒤 요리를 해서 저녁을 차리면 9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 되었다. 정상적으로 아이들의 식사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계란과 김이 메인 메뉴가 된지는 오래였다. 대충 식사를 떼우거나 페스트푸드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가끔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오는 구호물품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매일의 건강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남편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의논한 끝에 반찬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엔 별의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고민을 했다.

반찬 업체들은 과연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할까 ? 
중국산 고춧가루나 소금을 쓰는 건 아닐까 ? 

하지만 내 정신건강과 여유를 위해서 아웃소싱 서비스를 믿고 맡기기로 했다. 내가 이 세상 모든일을 다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약 3개의 업체를 이용해봤는데, 가격대(15,000 ~ 18,000원) 와 구성(2~3개의 반찬, 1개의 메인 요리, 국)이 모두 비슷했다. 나한테 맞는 스타일의 반찬을 찾는데만 거의 1년 이상이 걸렸다. 나는 C업체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이용한 반찬 서비스 종류들  

H업체 : 3개의 반찬과 1개의 국, 메인요리 1개로 구성됨. 새벽에 배달되어 아침을 먹을 수 있어 좋았으나, 음식량이 소량이고 맛은 적당히 좋았음. 가격은 가장 저렴했으나 날마다 보냉 종이박스에 반찬을 넣어 택배처럼 배달해 주는게 마음이 불편했음. 한달 배달을 받고 나니, 업체 박스가 산처럼 쌓여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든다는 죄책감이 들었음. 결국 3달 후 중단.

Y업체 : 집 근처의 반찬가게를 알게 되어 이용하기 시작함. 반복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용기에 반찬을 담아 정감이 가고 좋았으나, 음식 종류수가 한정적이었음. 1년 정도 서비스 받고 나니 너무 지겨워 더 이상 반찬을 먹기 힘들 정도가 되었음. 결국 이용을 중단.

C업체 :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식단을 한달 전에 미리 알려줘서 내가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줌. 지역별로 지점이 있기 때문에 당일 만든 신선한 반찬을 점심 시간 이후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배달해 줌. 가격대는 가장 비쌌지만 반찬의 양이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상 먹기에 충분한 양이라 만족스러웠음. 배달백도 수거형태로 진행되어 쓰레기가 안 생기니 죄책감이 덜 들어 마음이 편했음.


결국 C업체에 안착을 하고 2년간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일단 식사 준비를 위한 시간(장보기, 요리하기)스트레스를 ZERO로 만들어 준 것이 가장 큰 만족감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준비한 요리를 가족들과 함께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잠을 줄이고,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더 희생한다면, 나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될까? 일단 엄마인 내가 건강하고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엄마가 우울하고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날마다 먹는다 한들 과연 가족들이 행복할까?

그래도 주말은 가끔씩

나와 가족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타협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요리를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매 주말은 아니지만, 여유가 생기면 남편과 함께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재료를 고른 뒤 사랑과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해서 가족을 대접한다. 가끔 하는 거라서 매번 레시피를 잊어버리는게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요리 할 때마다 열심히 웹서핑을 해야 하고 서툴러 힘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나 친정엄마의 말대로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는 입만 즐겁게 하는게 아니라,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웃고 떠들며 사랑하는 가족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이 세상에 있을까?

그래서 가끔씩은 서툴지만 가족을 위한 식사를 나는 준비한다. 어설프지만 내 마음과 정성을 다 담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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