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날.이 최선일까?

학교급식을 생태전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by 햇귀쌤

“포천에 간다고?”

늦은 밤, 안부를 주고받던 대화방에 남긴 호기로운 이야기에 친구는 깜짝 놀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운전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안 된 생초보의 활동 범위가 항상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응, 이번엔 포천에서 실행 연수가 있어.”


교육과정에서 환경교육을 재구성해온 지 이십 년, 올해 여기저기 교육과정으로 풀어내는 환경교육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요청들이 많습니다. 평소에 근무지 바깥으로는 잘 나가지도 않는 저를 잘 아는 친구의 걱정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경기도는 참 넓기도 하지요. 하지만 환경교육을 한 번 제대로 해보시겠다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는데 거리가 멀다고 마다할 수는 없지 않나요?


“너 포천에 대해 아니?”


“음……. 이동갈비?”


잠시간의 망설임 끝에 건넨 짧은 대답에 대화창 너머 친구의 폭소가 들리는 듯합니다. 포천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는가를 물어보려던 친구의 의도와는 달리 머릿속 맛집 지도를 따라 포천 이동갈비를 외치는 제 대답이 우스웠던 모양입니다.


“포천 시내에서 보자고 하시던데?”


“아이고야, 그나마 다행이다.”


“포천이 그렇게 넓은가?”


포천을 작은 지역 정도로만 느끼고 있는 제게 친구의 물음은 신선했습니다.


“그럼! 의정부 학교로 들어오는 파프리카는 다 포천에서 생산된 거야.”


“포천에서 파프리카가?”


아삭아삭 씹는 식감이 일품인 파프리카.

선명한 색감을 자랑하며 탐스럽고도 매끈한 몸을 가진 파프리카.

즐겨 먹기는 하지만 그 생산지 중 하나가 포천일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의정부 관내 초등학교에서 영양교사로 근무 중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몰랐겠지요.

“옆 동네에서 오는 파프리카라니. 저절로 친환경이네!”


저절로 친환경 급식이라니요?

반사신경처럼 툭 던진 말을 스스로 곱씹다 보니 평소 가졌던 의구심이 문득 떠오릅니다.

친환경 재료를 쓰면 정말 친환경 급식이 되는 걸까요?


학교급식은 철저히 친환경 식재료를 씁니다. 같은 학교 공간에서 근무하지만 제가 아는 부분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식단 구성부터 계약, 납품, 조리, 배식, 후처리까지 급식의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은 영양교사의 몫입니다. 서로가 맡은 역할과 분야가 다르다 보니 관심을 갖는 것조차 망설여집니다. 그래서 더욱 물어보기가 어려웠던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누구에게 어떤 것을 인터뷰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싶을 정도로 정말 인터뷰하고 싶은 주제를 발견하게 되었네요.

친구에게 초등교사로서 영양교사에게 인터뷰할 거라 당당히 통보합니다. 낯 간지럽지만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니 친구도 진지하게 응해봅니다.


“안녕하세요, 영양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만 나누었을 뿐인데 폭소가 터집니다. 의도하지 않게 웃참 챌린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이젠 정말 진지하게 인터뷰 나눠볼까요?


“근무하는 학교가 그린스마트미래학교로 지정된다고 하던데요. 맞습니까?”


“네, 그린스마트미래학교로 지정됩니다.”


“그린스마트미래학교를 간단하게 정의 내려 주시죠.”


“학교 단위 공간개선 사업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한 미래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린스마트미래학교의 그린이 기후 위기 대응과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부분이라는 말씀이군요.”


“네,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잠시 그린스마트미래학교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지역마다 그린스마트미래학교상은 부르는 명칭이나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노후화된 학교 건물을 미래교육에 맞춰 탈바꿈하자는 성격이 강합니다. 하지만 굳이 그린이란 단어가 스마트 앞에 붙은 것은 미래 학교에서는 기후 위기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학교 환경이 경기도를 기준으로 2020 경기미래학교 보고서 내용에서 살펴보면 그린스마트미래학교는 친환경 녹색학교 부분에 기후환경변화 대응 교육을 강화하고 생태 치유 프로그램 운영하고 및 체험할 수 있는 친환경 교실, 생태체험처를 구축하며 학교숲을 조성하고 에너지 절약 및 태양광 시설을 갖추는 것 등을 내용에 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린스마트미래학교는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외관적인 부분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학교 급식 부분에 대한 내용이 없나요?”


“네, 아직 따로 자료를 받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양교사로서 그린스마트미래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학교 급식이 기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린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부분이라면 학교 급식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느 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식단 재료 선택부터 조리 방법, 잔반 처리 과정까지 급식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과정 모든 부분에서 그렇습니다. 너 예전에 나한테 물어봤었잖아, 기억 안 나?”

친구는 오래전 나의 질문을 기억해 냅니다.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학교 문화에 적응하고 따라주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교직계의 상도덕이라고 할까요? 문서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학교마다 가지고 있는 룰을 존중해 주는 겁니다. 사소하게는 학교 제판기 사용법부터 크게는 공문에 적힌 문구를 해석하는 기준까지 크게 문제 되지 않는 한 그 학교의 문화를 따릅니다. 그런데 학교를 옮기고 나서 이걸 정말 따라야 하나 싶은 부분이 제게 생긴 것입니다.


이전 학교에서는 급식 후 나오는 잔반 중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할 것들을 철저하게 분리배출하도록 했습니다. 딱딱한 등뼈와 조개껍질 등은 당연하고 질긴 과일 껍질도 분리배출하였습니다. 후식 중에서 꼬치와 포장지도 따로 배출, 포장지 중 비닐로 된 껍질과 플라스틱통도 따로 배출. 1학년 때부터 이런 배출법에 익숙한 아이들은 크게 잔소리하지 않아도 영양교사의 친절한 안내문에 따라 분리배출합니다.


그런 잔반 처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새 학교에서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으니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지가 궁금해진 겁니다. 잔반 처리를 하면서 나오는 뼈들을 분리배출을 하고 싶어도 분리배출할 수 있는 통이나 비닐봉지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준비를 깜빡하셨는지 염려하며 영양선생님께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물어보니,


“그냥 같이 버리시면 돼요.”


라고 합니다. 그제야 그렇게 버려도 의문을 갖는 것은 새로 온 사람들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후식 포장지가 재질에 따라 버려지지 못하고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려지는 것은 당연했겠죠?

그때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랬습니다.


“잔반 처리 규정이 따로 없어?”


“음... 그렇게 세부적인 것까지는 없어. 내가 신경 쓰는 만큼 하는 거야. 조리원님들도 좋아하진 않으시지. 귀찮으시니까.”


수백 명, 혹은 천 명도 넘는 아이들의 먹다 남긴 음식쓰레기를 처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이렇게 적나라한 답변을 들으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네, 저도 학교 급식 전 과정에서 그린스마트미래학교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급식을 준비하고 처리하는 모든 부분에 생태전환적 사고가 필요할 텐데, 쉽지 않은 일인 것도 사실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부분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친환경 식재료를 인근에서 구입하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단가에 맞추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죠. 지금처럼 물가상승률이 가파를 때는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친환경 식재료나 국내산 재료, 로컬푸드를 사용하게끔 거래처가 어느 정도 구성되어 있어요.”


“의정부 학교에 포천 파프리카가 들어오는 것처럼요?”


“네, 맞아요. 또 그날 예상했던 식재료가 모두 소진되지 않을 경우, 그 주 안에 남은 재료를 소진하기 위해 사소한 것들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버리는 양을 최대한 적게 하기 위해서예요. 온전히 제 판단과 노력이 필요하죠.”


“버려지는 재료가 없도록 식단을 조정하신다는 거지요?”


“이미 내보낸 식단을 조정하는 것은 많은 양해가 필요해요. 주문한 식재료를 마음대로 변경하는 것은 어렵지만, 양념을 만들어야 하는데 파가 많이 남았다면 부추 대신 파를 썰어 넣는 것은 가능합니다. 또 주문 변경이 가능한 시점이라면 원래 시켜야 하는 분량보다 덜 시키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복잡하군요.”


“조리법도 영향을 미치는데요, 예를 들어 튀김 요리에서 나오는 폐식용유가 많기도 하고 학생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가능한 전기오븐에서 구워서 내보내요. 하지만 학교에 대용량 전기오븐 갖춰져 있지 않거나 용량이 크지 않다면 급식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굽기보다는 튀겨야 할 수도 있어요.”


“급식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조리 방법도 선택해야 하시는군요!”


“네, 대용량의 음식을 일정한 시간에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건 조리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죠. 같은 이유로 냉동식품이라던가 소포장되거나 소분된 것들을 사야 할 때도 있어요.”


영양선생님의 선택에 따라 하루 급식을 준비하는 조리원 수고가 많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핫도그를 완제품으로 구매해서 튀겨 내놓기보다는 작은 소시지에 식빵을 둘러 구워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조리원들이 시간 내에 조리하기 어려워 냉동핫도그를 구매해 튀기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포도, 파인애플, 토마토 등 개별포장된 후식 과일 세트를 구매하면 따로 후식과일을 손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조리원들의 수고가 덜 든다고도 하였습니다. 한 입 과일이라도 포도면 포도, 토마토면 토마토를 껍질 째 먹여야 하기 때문에 잘 씻어야 하고, 사과, 배, 파인애플 등은 먹기 좋게 잘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통째로 구매하려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별 포장된 것을 구입하면 배식할 때 잘 나눠주기만 하면 되지만 벌크포장된 것을 구입하면 배식하기 위해 소분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학교에 천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배출할 핫도그 스틱과 과일통을 생각하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쓰레기양입니다.


요즘 먹을 만큼만 받기, 자율배식대, 지구를 위한 수다날(수요일은 다 먹는 날) 등 학교급식을 통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먹거리를 통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노력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학교 급식이 아이들에게 오기 전에도, 아이들의 손을 거친 후에도 친환경급식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도 끼니를 준비하는 사람의 작은 습관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달라집니다. 식재료의 구입처와 포장형태에 따라 같은 식단의 푸드 마일리지와 탄소발자국도 달라지겠지요. 그렇다면 급식을 준비하는 영양교사와 조리사님들은 수다날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를 매일 훨씬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시스템입니다. 학교 소재지에 따라 가장 적은 푸드 마일리지를 배출할 수 있는 구입처의 목록화, 같은 식단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대체 재료, 시간 내 조리를 가능하게 하는 조리도구, 가급적 쓰레기를 남기지 않도록 포장된 후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말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게끔 하는 규정이나 정책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의 노력에 맡기기에 우리는 기후 위기라 불리는 너무나 급박한 티핑포인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급식 전문가는 아닌지라 어떤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어떤 시스템이 가능한지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이런 문제 제기의 시작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탄소중립을 위한 급식시스템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적어도 교사의 시점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가 있다면 학생과 교사에게 공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야 진정한 수다날을 실천하기 위한 내면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이 지나간 자리, 우리 학교의 급식실 모습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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