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삶을 시작하게 하는 작은 것들

마을 연계 환경교육, 학교 화단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다

by 햇귀쌤

2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생명 존중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비법이 있다. 그 시작은 ‘장면을 떠올리며 시를 읽기’ 시간이다. 교과서를 펼치고 큰소리로 읊는다.


“풀밭을 걸을 땐/ 발끝으로 걸어도/ 뒤꿈치로 걸어도/ 풀꽃에게 미안해// 풀밭을 걸을 땐/ 내 발이/ 아기 새 발이면/ 참 좋겠다”


'풀밭을 걸을 땐' 아기 새처럼 걷고 싶은 마음이 예쁘게 표현된 동시가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다


풀밭을 걸을 땐 발끝과 발뒤꿈치로 걸어도 풀꽃에게 미안한 글쓴이가 제 발이 아기 새 발이면 참 좋겠다며, 풀꽃을 밟고 싶지 않은 동심을 예쁘게도 표현했다. 다 읽고 나면 다양한 꽃사진을 보여준다.


“이 꽃친구의 이름은 뭘까?”

“개나리요!”


봄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생님이 보여주는 사진에는 어디선가 보았던 꽃들이 피어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봄을 대표하는 꽃들에 아이들은 신이 난다. 모두 친숙한 꽃이기 때문이다. 봄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한 번 ‘풀밭을 걸을 땐’이란 시를 읽는다.


“자, 우리 친구들도 나무들 사이 풀밭을 걸어본 경험이 있을까?”


시 속 글쓴이처럼 풀밭을 걸어본 경험, 그것도 맨발로 걸어본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는 서로 눈치 보기 바쁘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이 있을 리가.


“그럼 이렇게 풀밭을 걸을 때 풀꽃을 안 밟으려면 어떤 발을 가지고 있으면 좋을까?”


대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아이들은 저마다의 아기 새 발을 재잘거린다. 공기처럼 가벼운 발, 물방울발, 이쑤시개 발 등 작은 풀꽃을 밟지 않으려는 아이디어가 흐뭇하다.


자, 이제 교과서에서는 교실을 시 속 글쓴이처럼 걸어보잔다. 교실에서 사뿐사뿐 걷는 것은 선생님도 재미없다. 풀밭을 걸어본 경험이 있냐고 물어보면서도 미안했던 나는 아쉬운 대로 교정으로 아이들을 이끈다. 마침 교정에 노란 산수유가 봉긋 터져 나왔다. 이미 햇살이 길게 머무는 곳에는 작은 들풀들이 꽃을 피울 만발의 준비를 마쳤다.


수업 시간에 처음 바깥으로 나온 아이들은 신이 났다. 물론 시 속 화자처럼 발밑의 작은 생명을 밟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생애 처음 본다는 회양목의 연두빛 꽃을 관찰하는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오기 전 선생님의 당부나 본인들이 열변을 토했던 공기발, 물방울발은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눈에 걸리는 대로 잔소리를 하지만 이미 뭉개진 잎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름을 물어보겠다며 다 피어나지도 못한 꽃망울을 꺾어온 녀석이 올해는 한 명뿐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사실 나는 이미 모든 상황을 예상했다. 해마다 수업의 소재는 조금씩 다르고 교직 경력이 쌓여갈수록 예상되는 상황에 나름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첫 야외수업의 모습은 늘 비슷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다음에 또 그러면 야외수업은 없다’라는 폭풍 잔소리를 더했지만, 지금은 그저 ‘다음부터는 조금 더 조심해라’ 정도로 마무리된다. 다음은 조금 다를 것이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고자 하는 욕구를 누르고 스스로 발밑을 조심하게 만드는 것은 선생님의 잔소리가 아니다.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위대한 메시지도 아니다. 아이들을 변하게 하는 것은 제 일상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이름을 알게 되는 작은 꽃친구들이다.


첫 야외수업 후, 나는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준다. 학교 교정, 아이들의 등하굣길, 아파트 안팎 등 직접 찍어온 동영상에는 아이들의 삶이 담겨 있다. 장난치다 엄마에게 혼났던 놀이터, 친구랑 간식을 사 먹었던 가게 앞, 우산을 들고 학원 차를 기다렸던 곳, 매일 달려 다니는 길, 자전거 타다다 넘어졌던 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진다.


아이들이 익숙한 그곳을 클로즈업하면 양증 맞는 꽃이 피어있다. 하얀 냉이, 노란 꽃다지, 하트 잎이 사랑스러운 괭이밥, 돌돌 말린 꽃마리, 이름만 들어도 웃긴 개불알풀, 나팔을 닮은 들현호색, 보라색만 있는 줄 알았던 흰제비꽃 등 개나리, 벚꽃같이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봄꽃뿐만 아니라 제 새끼손톱 반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작은 봄꽃들이 그제야 제 아름다움을 뽐낸다.


미션이 내려졌다. 일주일 동안 등하굣길에 보이는 꽃 발견하기. 내가 준비해준 것은 초딩들 특유의 경쟁심에 붙을 붙일 스티커판 뿐이다. 스티커판에는 계절마다 아이들 곁에서 꽃을 피울 꽃들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꽃을 발견할 때마다 자랑스럽게 스티커를 붙이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운동장 수돗가 밑에 있는 흰민들레를 봤다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교실 책장에 있던 학급문고에 꽤 많은 식물도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기가 많아진 학급 도감이 동이 나면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나는 학부모님들과 소소한 일을 나누는 대화장 공책에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개인별 식물도감이 준비되면 좋습니다’라는 문구를 내보낸다. 쉬는 시간에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코로나 시대, 도감을 보기도 하고 등하굣길에 발견한 꽃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꽃친구를 배려하며 관찰하는 아이들, 이런 모습은 선생님의 잔소리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쯤되면 봄 통합교과 수업활동, 야외수업이 계속될수록 첫 수업처럼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 친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꽃을 꺾는 행동은 상상불가다. 그랬다가는 친구들이 난리가 난다.


“야, 거기는 안돼! 밑에 좀 잘 봐!”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작은 생명들을 배려하고 있다.

“선생님, 냉이 꺾으면 안 돼요!”

지난주까지는 꽃이 피었던 냉이의 주걱모양 같은 씨주머니를 잘라 보여주는 내게도 한소리를 한다. 그러면서 냉이의 씨주머니 관찰은 포기할 수 없는지 기웃거린다.


“씨앗이 영글면 오히려 그 씨앗을 멀리 뿌려주는 것도 좋아. 꽃이 씨앗 아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거든.”

나는 부러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긴 척 땅에 씨를 뿌려준다. 아이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씨주머니 관찰에 열을 올린다.


봄이 무르익어 민들레 머리가 여기저기 하얗게 되면 아이들은 더 신이 난다. 선생님이 그때쯤은 꺾어 날려도 괜찮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준데다가 자신이 민들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환경지킴이 활동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 머리가 된 민들레를 부는 방향은 보도블럭 쪽이 아니라 흙이 있는 화단이다. 우리 마을이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던 논밭에서 아파트가 가득한 신도시가 될 동안 씨앗을 날릴 맨땅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민들레 엄마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어디든 바람 따라 씨앗이 날아가 아기 민들레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옛날과는 다르게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이 가득한 우리 마을. 그런 우리 마을에서도 아기 민들레가 다음 해에 피어날 수 있도록 맨땅이 있는 곳으로 민들레 씨앗을 날려주는 것이다. 내년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씨앗을 날리는 재미가 덤인지 씨앗을 도울 수 있는 뿌듯함이 덤인지 아이들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배려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행동이다.


이쯤 되면 교실에는 아이들마다의 반려식물인 개운죽이 자라고 있고, 아이들의 집 주변에는 가족이 직접 심었든 이미 심어져 있던 것이든 가족과 함께 애칭을 붙여 돌봐주는 꽃과 나무가 있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심각한 환경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된 모든 것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방법을 찾아보게 한다.


아이들은 조금씩 제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작은 생명들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려고 노력하고,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마을의 크고 작은 환경 이야기에 관심을 두며, 그것을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공유하는 활동에 익숙해진다. 비로소 가을쯤 우리 마을의 변화를 제법 환경적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제 주변에서 발견한 작은 꽃 덕이다. 학교 화단의 작은 꽃들이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 매일 오가는 등하굣길, 내 가족이 사는 집 근처, 매일 노는 놀이터. 매일 오가며 만나는 주변의 작은 꽃들을 통해 스스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아이들, 그 행복이 이제는 마을로 번져가고, 언젠가 지구 전체를 뒤덮으며 지구 온도를 식혀갈 수 있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