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emo Jun 14. 2019

히말라야의 비경, 'Hidden Lake'를 찾아서-2

3일째 : 고레파니(ghoreapani)~데우랄리(deurali)~타다파니(tadapani)


오전 4시 롯지를 출발해서 푼힐에 다시 올랐다. 다소 구름 낀 하늘이지만 안나푸르나 산군과 멀리 마차푸차레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윽고 일출이 시작됐다. 해는 마차푸차레 등 뒤로 떠오르며 주변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붉은 기운은 안나푸르나 쪽까지 뻗쳐 장관을 연출했다. 그러나 잠시 후 구름이 가리기 시작하면서 정작 떠오른 태양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또 다울라기리 연봉 쪽은 짙은 구름에 아주 살짝만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일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임팩트가 있는 일출이었다. 구름이 많았던 만큼 하늘은 더 선홍색으로 물들었다.



고레파니 롯지로 돌아와 아침을 한 뒤  7시 반경 타다파니를 향해 출발했다. 오르막길이다. 첫 경유지인 데우랄리의 해발고도는 3180m. 푼힐 전망대와 비슷한 높이다. 가는 길에 계속 안나푸르나 남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멀리 다울라기리 봉우리도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데우랄리부터는 내리막이다. 거대한 협곡을 따라 걸으며 고도를 낮춰간다. 협곡을 다 내려와 꼭 탁족이라도 하고 싶은 장소가 나타났을 때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셀파 말로 45분. 그쯤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타다파니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다파니에 도착해서 잠시 갈등이 생겼다. 12시 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는데도 1시가 넘지 않았다. 하늘은 아직 맑은 상태. 조금 더 걸어 당초 예정했던 츄일레에서 숙박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멈출 것인가. 셀파는 어쩐지 이곳에서 1박하기를 추천하는 느낌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가 심상치 않은 전망을 가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츄일레는 여기서 2시간 거리이지만 내리막 길을 걸어 계곡 밑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내일 조금 더 서둘러 출발하면 되겠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타다파니에 짐을 풀었다.


이곳에서도 오전 내내 화창하다가 오후가 되면 폭우가 쏟아지는 패턴이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그런데 이번엔 우박이다. 우박도 스케일이 다른 것 같다. 눈앞에 안나푸르나 남봉 기슭에도 우박이 쏟이진듯 산이 신비한 색으로 변한다.



타다파니 롯지 이름은 ‘super view guest house’. 이곳 벽에 붙어있는 지도에서 들어보지 못한 지명들을 발견했다. 도바토, 코프라, 그리고 4400m 지점에 ‘Hidden Lake’란 곳까지 트레킹 코스가 이어져 있었다. 4400m에 호수라니...

 


롯지 사람들 얘기론 3년 전에 개척된 새 트레킹 코스란다. 저녁에는 ABC코스를 이미 다녀와서 히든 레이크 쪽으로 갈 예정이라는 60대 일본인 트레커 한 사람과도 어울리게 됐다. 그는 셰르파도 없이 혼자였고, 30일간을 예정하고 왔다고 한다.


4일째 : 타다파니(tadapani)~도바토(dobato)


오전 4시 절로 눈이 떠졌다. 가장 전망이 좋을 것 같은 방으로 잡았더니 창밖이 바로 절벽이어서 새벽 한기가 이불을 파고든다. 잠시 이불속에서 뒤척이다 커튼을 젖혔더니 눈이 번쩍 뜨였다. 어제 구름에 가려 살짝만 모습이 드러났던 안나푸르나 남봉뿐 아니라, 오른쪽으로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거대한 산군의 파노라마. 핸드폰을 들고나가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고 보니 2층 내 방에서 창문을 열고 찍는 것이 구도가 더 나을 것 같았다. 다시 올라가 1시간에 걸쳐 편안히 일출을 감상하면서 중요한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차푸차레 오른쪽으로 떠오른 태양은 순식간에 안나푸르나 하늘까지 붉게 물들였다. 네팔 사람들이 그렇게 신성시한다는 마차푸차레가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점점 더 많이 머금으면서 신비한 자태를 뽐낸다. 어제 잠시 갈등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여기서 머물길 잘했어. 아직 촉이 살아있네~



타다파니에서의 1박 선택을 평생 잊지 못할 일이 아침식사를 기다리면서 또 하나 일어났다. 셰르파와 어젯밤 만난 일본인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귀가 자꾸 그쪽으로 가고 있다. 내가 꼭 ABC로 가야 하나?


일단 4400m 고지에 ‘Hidden Lake’로 이름 붙여진 호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4400이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보다 오히려 더 높다. 게다가 ABC는 지난 지진의 영향으로 무너져내려 숙박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500m 아래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숙박하고 새벽길을 걸어 올라갈 예정이었다. 무엇보다도 ABC를 향해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촘롱까지 일단 500m나 고도를 낮췄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고레파니부터 온 길을 계산하면 700m를 내려가게 되는 것. 못마땅하던 차였다.


이번 여행에 정해진 코스는 없다. 출발하기 전 세운 계획대로 진행할 필요는 없다. 난 지금 혼자다. 자유다.


오전 7시경 길을 나섰다. 자연스럽게 타다파니에서 만난 일본인과 동행하게 됐다. 가와사키시에 산다는 68세 마부치(馬淵)씨. 은퇴하고 1년에 한두 차례 해외등반에 나선다고 한다. 히말라야는 처음이라는데 셰르파도 없이 30일 동안이나... 등산은 베테랑인 듯했다. 절대 나를 앞서지 않으며 내 페이스에 맞춰 쫓아온다. 오늘의 목적지는 도바토. 3426m에 자리 잡고 있다. 타다파니가 2680m이니 700m 이상 고도를 높여야 한다.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막연한 설렘은 이것이 잘한 선택이란 확신으로 바뀌었다. 오른쪽으로 안나푸르나 남봉을 계속 바라보면서 고도를 높여간다. 대체로 울창한 숲길이며, 가파른 오르막이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3000m를 넘어가니 이제껏 보지 못한 풍경들이 나타났다. 우선 네팔을 대표하는 꽃 랄리구라스가 이곳저곳에 화사하게 피어있다. 이런 높이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다니... 고도가 좀 더 올라가니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5월 초 한라산을 관음사 코스로 등반할 때 정상 부근에서 봤던 것과 닮은 풍경이다. 위도 차이 때문에 이런 고도 차이가 나나보다.

 


안나푸르나 남봉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멀리 마차푸차레도 시야에서 떠나질 않는다. 고도에 따라, 각도에 따라 각각 다 다른 모습이어서 울창한 숲 사이로 산봉우리들이 보일 때마다 멈춰서는 촬영 모드에 들어갔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이번에 다울라기리 봉우리가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다울라기리를 이렇게 선명하게 보기는 처음이다. 푼힐 전망대에서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더니, 고레파니에서 데우랄리로 이동할 때 뒤에서 신기루처럼 잠시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사라졌던 그 산이다.



11시 반경 도바토 롯지에 도착했다. 롯지 두세 개 정도가 산재해 있는 초소형 마을이다. 짐만 풀어놓고 30분 거리에 있다는 물데 전망대로 향했다. 동쪽에서부터 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서 언제 화이트 아웃이 될지 모르는 상황.


물데 전망대는 36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푼힐 전망대보다 500m가 높고, 히말라야 고산군에 더 가깝게 자리 잡고 있으니 풍광이 달랐다. 하지만 이미 고산군 쪽은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도바토로 올라오면서 그렇게 선명하게 보였던 다울라기리는 구름 뒤로 모습을 감췄다. 안나푸르나 1봉도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하다. 그 사이로 닐기리봉이 선명하게 모습을 뽐낸다. 고산군 반대쪽 내가 올라온 길과 모레 이동할 길은 탁 트인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유명하지 않은 이 전망대, 간이로 마련된듯한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그 길과 마을들을 내려다봤다.

 


다시 도바토 롯지에 도착해보니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어제 내린 우박 때문인 듯하다. 여기서 2박을 해야 하는데... 다음 숙박지는 아예 와이파이가 없다고 한다. 어제 오후 우박이 내린 후로 타다파니 롯지에서도 와이파이가 먹통이 된 것을 생각하면 나흘 밤을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지내야 하는 셈이다. 묘한 기분이다. 내일 보게 될 호수가 모든 것을 보상해줬으면...


또 하나 문제는 고산증이다. 고레파니에서 느꼈던 고산증세가 타다파니로 오면서 거의 사라진 줄 알았는데, 도바토에 도착하니 다시 나타난 것이다. 산에 들어온 지 나흘째여서 몸이 어느 정도 적응했겠거니 생각했는데 난감하다.


고산증세는 첫날 울레리에 도착하면서부터 나타났다. 2000m에 못 미치는 고도이기에 방심했던 게 화근이었다. 이른 저녁을 시켜놓고 맥주 한 병을 비우는 사이에도 음식이 나오지 않아 한 병을 더 마셨는데, 밤에 마치 만취 상태일 때처럼 머리가 아팠다. 맥주 2병에 이럴 리가 없는데... 출국 전에 처방을 받은 고산증 약을 복용했더니 견딜만했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고 고레파니에서도 두통 증세는 계속됐다. 이날 푼힐전망대까지 다녀왔으니 하루에 1200m 이상 고도를 높인 셈이다. 그날 저녁 고산증 약을 한알 더 복용했다.


그다음 날 머문 타다파니의 해발고도는 2680m. 500m 이상 낮춘 셈이다. 살만했다. 고레파니에선 자제했던 맥주도 한잔 마셨다. 그리고 도바토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좋은 컨디션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다시 고산증세를 느끼기 시작했다. 가슴에 신호가 오고, 머리가 묵직하다. 얼른 다시 약을 복용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히말라야의 비경, ‘Hidden Lake’를 찾아서-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